시작은 어렵다. 더군다나 세상의 편견, 억압과 싸우며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대와 국경, 인종을 초월해 그 어렵다는 시작의 테이프를 끊은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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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
한국 최초의 여성장관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초대 내각 때 상공부(현재 산업자원부)를 맡았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매우 드물던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또한 임영신은 한국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 지구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됐으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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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 영화 <청연> 탓에 박경원이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제에 부역한 박경원과 달리 권기옥은 극일 정신을 강조하며, 생전에 전 재산을 털어 서울대와 항공대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생전에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수식어를 불쾌해했다. 그녀가 비행기를 탄 이유는 타이틀 욕심이 나서가 아닌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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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노무현 정부 시절 37대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전 총리는 사상 첫 여성 총리다. 한명숙 전 총리는 국회의원, 장관 등 요직을 맡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부 초대 장관, 환경부 장관을 맡았다. 외유내강의 여성 리더로 손꼽히지만 지난 2015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되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실형을 살게 된 첫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지금도 이 재판은 정략적이고, 정치적인 판결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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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이혼 고백장’이라는 글로 이혼의 과정과 경험을 담아 당대 파문을 일으킨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조선과 일본에서 개최하는 미술대회에서 모두 상을 받으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지기도 했지만, 진보적인 여성관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일본 유학생 출신인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하며, 결혼 조건으로 ‘평생 자신만을 사랑해줄 것,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것,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함께 살지 않도록 해줄 것, 그리고 첫사랑인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남편의 불륜을 알고, 이혼한 후 더욱 그림에 몰입했다. 그녀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재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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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여성,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이중 차별을 받았던 독일 음악 작곡계의 거목. 그녀는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작곡계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물꼬를 튼 주인공이다. 94년 브레멘 예술대학교에 동양인으로는 물론 여성으로 처음 작곡과 주임 교수로 임명되었고, 이후 부총장까지 지냈다. 또한 여성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1978년 스위스 보스빌 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이후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 등 여러 페스티벌에서 곡을 위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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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옥
1988년 한국 여성 최초로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 오르고, 한국 여성 산악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지현옥 대장. 평생 산을 사랑했던 그녀는 1998년 세계 여성 최초로 가셔브룸 II봉을 여성 단독으로 무산소 등정하는 등 끊임없는 도전을 했다. 이듬해 엄홍길 대장과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 중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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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옥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연출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촬영 당시, 감독이 출산한 직후라 아기를 업고 현장에서 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6개월 동안 촬영하며 장비 수급이나 녹음 장비를 대여할 때 감독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1950년대 남성 중심의 영화 현장에서 영화를 만든 개척자인 그녀는 지난 4월 미국 LA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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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1952년 고등고시에 합격해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 이태영 박사는 변호사가 된 이후부터 줄곧 남녀평등 실현과 가족제도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 여성의 법적 위치와 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봉건적 가부장제와 군사문화에 억압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가족법 개정운동을 펼치는 데에 앞장섰다. 몇 년간의 운동으로 호주의 권리의무 대폭 축소, 친족 범위 조정, 이혼한 여성의 재산분할 청구권 신설 등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