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팬츠가 바지 자락을 펄럭이며 실루엣의 변화를 가져왔다. 정형화된 여성미에서 벗어난 평면적인 옷차림이 모던한 멋과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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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을 열었다. 팬츠만 입는 터라 팬츠가 한가득이다. 구석에는 초라한 행색으로 스키니 팬츠가 걸려 있다. 한때 국민 팬츠로 스타일을 책임졌던 그 팬츠 말이다. 스키니 팬츠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스키니’의 반대 이름인 ‘와이드’ 팬츠! 아마도 많은 여자의 옷장 풍경이 이럴지도 모르겠다. 트렌드를 넘어 베이식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와이드 팬츠가 다채로운 형태로 변주되어 여자들의 실루엣에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얼마 전 세린느가 2017년 리조트 컬렉션을 공개하자마자 인스타그램 뉴스피드에는 긍정의 코멘트와 함께 세린느의 룩북 사진을 리포스트하는 피드가 빈번하게 올라왔다. 이러한 애정 공세를 받은 건 발렌시아가의 2017년 리조트 룩북도 마찬가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두 디자이너, 세린느의 피비 파일로와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헐렁한 멋을 모던하고 쿨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들의 디자인 철학은 팬츠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와이드 팬츠로 표현되었다. 특히 세린느의 피비 파일로는 팬츠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그녀가 정의하는 베이식한 팬츠 룩을 ‘ Five Perfect Trousers’ 캡슐 컬렉션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다섯 가지 스타일로 함축된 팬츠 룩에는 와이드 팬츠도 포함되어 있다. 그후로도 와이드 팬츠는 세린느 런웨이를 쭉 휩쓸며, L‘ess is More’를 추구하는 세리니즘(Celine-isms)의 훌륭한 디자인 재료가 되었다. “옷을 통해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고 싶지않아요. 섹슈얼한 이미지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으니까요. 저는 여자들이 세린느를 입었을 때 확고한 자신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피비 바일로의 신념을 보여주듯 그녀는 와이드 팬츠의 변주를 통해 강인하고 우아한 매력을 선보였다. 그녀가 이번 리조트 컬렉션에서 선보인 와이드 팬츠는 슬라우치 팬츠를 응용한 디자인.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한 벌로 세트를 이루는 근사한 슈트 룩은 남자들도 탐낼 만큼 남성적이다. 반면, 뎀나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처럼 와이드 팬츠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별화된 미학을 발휘했다. 극대화된 와이드 팬츠로 과감함을 드러낸 것. 신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길이는 헴라인이 바닥에 닿으면서 형태의 변형을 가져왔고, 풍성한 볼륨감은 오버사이즈 톱과 매치되어 XXL 실루엣을 완성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동시대적인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패션 판타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와이드 팬츠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와이드 팬츠의 멋을 제대로 살리려면 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자신만의 스타일링 노하우가 필요하다. 평균 신장보다 작지만 와이드 팬츠를 멋지게 소화하는 <얼루어> 패션 디렉터 남지현의 팁은 이렇다. “체구가 작은 사람은 하이웨이스트의 와이드 팬츠가 가장 잘 어울려요. 이때 허리선부터 엉덩이까지 밀착된 팬츠를 입어야 다리가 더 길어 보이죠. 신는 신발을 정해두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에요. 신발에 따라 팬츠의 실루엣이 달라지거든요. 길이가 긴 와이드 팬츠를 입을 때는 헴라인이 굽 끝에 닿을 듯 말 듯한 하이힐을 신어야 해요. 아슬아슬한 매력을 남겨두는 거죠. 톱은 몸에 딱 맞는 스타일을 선택해 균형을 맞추고, 바지의 허리선까지 오는 톱을 매치하면 움직임에 따라 허리가 살짝 드러나 섹슈얼한 매력을 살릴 수 있어요 .”올리비아 팔레르모도 작은 체형을 고려해 와이드 팬츠를 입을 때 이와 같은 스타일링 법칙을 응용한다.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팬츠와 하이힐, 몸에 꼭 맞는 톱, 이 세 가지 조건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완벽한 와이드 팬츠 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가 큰 사람에게는 조금 다른 스타일링이 적용된다. 베로니카 헤일브루너는 큰 체형을 고려해 드레스업 스타일보다는 드레스다운 스타일로 와이드 팬츠를 소화한다. 가장 기본적인 공식은 와이드 팬츠와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것. 하이힐은 거대한 몸집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이다. 제인 마치의 정재인 대표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와이드 팬츠 자체만으로도 큰 키가 강조되기 때문에 스니커즈를 활용해요. 하이웨이스트보다는 골반에 걸쳐지는 팬츠가 안정적인 신체 비율을 완성하죠. 치렁치렁한 톱은 몸을 거대해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에 지양해요. 톱은 몸에 딱 맞는 걸 선호하고, 톱을 팬츠 안에 넣어 입는 것보다 팬츠 밖으로 꺼내 입는 게 자연스러워요. 아우터는 짧은 재킷을 선택해 와이드 팬츠의 형태감을 살리면 더욱 멋스러워 보여요.”

오버사이즈 패션이 패션계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된 지금, 와이드 팬츠는 필수불가결한 아이템이 분명하다. 그러니 베이식한 패션 영역으로 넘어온 와이드 팬츠의 변주를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바지 속에 가려진 몸이 은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볼륨이 주는 강렬함은 평범한 룩을 특별하게 만들어 당신의 걸음걸이를 자유롭고 돋보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