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새로 올리고, 다리를 새로 짓지 않아도 서울은 늘 변화 중이다. 오래된 한옥이 가게로 변모하고 있는 종로구 익선동과 동대문, 재개발 이슈와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빈틈을 모색 중인 서대문구 아현동 일대까지. 낯설고 생경한 서울을 찾아서.

 

CHA_0652

벽화로 꾸며진 소금길은 이대역과 가깝다.

CHA_0619

음악, 또는 음악가와 관련된 서적을 취급하는 초원서점.

아현동 
서울 한복판에 300여 평의 유휴공간이 있다. 애오개역 5번 출구 바로 앞, 아현동 행화탕 이 야기다. 1976년에 지은 이 오래된 목욕탕의 이 름은 스윗소로우의 노래 ‘아현동’ 가사에도 등 장한다. “그때도 손님이 없던 행화탕에 가면 우 린 수영을 했지”라는 가사는 행화탕 말고도 십 수 년 전 아현동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그때도 손님이 없었다는 행화탕이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재개발이 결정된 2011년의 일. 목욕탕 건물과 주인 일가가 살던 집과 마당까지, 꽤 넓은 공간이 지난 5월 서울문화재단의 ‘2016 복작 복작 예술로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도시와 주민, 공간을 두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었던 10인의 활동가 모임, ‘육일삼일일’이 이 공간의 운영자다. 그림 그리기, 동네 해설 탐방 등 주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데, 30년 넘게 아현동에 살아온 사람부터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인다. 행화탕은 재개발이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 아현동에 스며든 풍경 중 하나일 뿐, 새 아파트와 오랫동안 동네를 지켜온 집과 가게가 뒤섞인 광경은 이 일대에서 꽤 흔하게 목격된다. 아현동과 맞닿은 염리동도 마찬가지다. 염리동의 명소 ‘을밀대’가 대흥역 쪽 염리동이라면, 어둡고 좁은 골목을 알록달록한 산책길로 둔갑시킨 ‘소금길’은 이대역 쪽 염리동이다. 경사를 자랑하는 소금길에는 작은 책방이 세 개나 자리해 있는데 성격도 조금씩 다르다.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일단 멈춤’은 여행책 전문 서점이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오래된 동네 풍경, 저렴한 월세, 산책로로 조성된 소금길, 게다가 이대역에서 5분 거리에 불과한 역세권!” ‘일단 멈춤’의 주인이 밝힌 염리동에 책방을 차린 이유다. 다양한 술을 판매하는 ‘퇴근길 술한잔’, 그리고 음악 관련 서적과 뮤지션이 쓴 책을 가져다둔 ‘초원서점’이 그 다음이다. 그 사이사이에는 역시 새로 생긴 작은 카페들이 자리한다. 을밀대 맞은편 길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등장한다. 카페와 옷가게, 네일숍 등이 가득한 공덕파크 자이 단지는 그냥 아파트 상가로 생각하기에는 꽤 근사한 가게가 많다! 경의중앙선이 정비되면서 없어진 기찻길은 공원으로 꾸며졌고, 매주 토요일에는 ‘공유지 난장’에서 주최하는 플리마켓이 펼쳐진다. 서울의 대조적인 풍경을 음미하고 싶다면 아현동으로 향할 것. 곧 사라질 풍경과 새로운 것들이 뒤섞인 곳으로.

 

CHA_0732

공덕파크 자이 상가에 입점한 디저트숍, 누아네.

누아네 공덕파크 자이 단지에 올해 초 들어선 카페 겸 디저트숍으로 르코르동블루 디저트 과정을 수료한 대표가 운영 중이다. 바닥 타일과 녹색으로 일부 벽을 칠한 인테리어가 눈을 끈다. ‘블랑’이 가장 인기 있는 케이크다.

 

CHA_0685

공유지 난장. 뒤편으로 공덕역 오거리에 밀집된 고층건물들이 보인다.

IMG_3759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행화탕. 공간은 2년 뒤 완전히 철거된다.

CHA_0745

평양냉면 명소인 을밀대. 대흥역 2번 출구와 가깝다.

머스타드 지난 5월 소금길에 새로이 등장한 카페. 시바견 ‘도순이’가 카페의 마스코트다. 작고 깔끔한 공간이지만 커피맛도 훌륭하다. 바로 옆에 자리한 책방 ‘퇴근후 술한잔’의 주인이 인스타그램에 제보한 바에 따르면 김동영 작가가 자주 찾는다고.

을밀대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면서 대기 시간은 더욱 길어졌지만 염리동까지 와서 들르지 않으면 섭섭하다. 오후 2시와 5시 사이에 들르면 대기 없이 입장할 수도 있다. 만두가 없는 대신 수육, 녹두전, 홍어를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