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의 세계는 차근차근 변화 중이다. 그리고 이 변화하는 풍경의 중심에는 숙박 앱이 존재한다. 검색부터 결제, 그리고 포인트 적립과 할인까지 한번에 해결해주는 마법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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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모텔가이드’라는 것이 있었다. 2001년 오픈한 이 웹사이트는 지역별 모텔 리스트와 새로 생긴 모텔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사진 후기를 공유하던 곳으로 이 사이트를 처음 알게 된 건 2007년. 당시 나는 군대에 간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오면 뭘 할지 살뜰한 데이트 코스를 짜던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쾌적한 모텔을 찾는 것 역시 내가 자청한 임무 중 하나였다. 남자친구와 좀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모텔가이드’는 모텔 초보자인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됐다. 서울 어느 지역에 모텔이 밀집되어 있는지, 숙박료와 대실료는 얼마인지 등 모두 그때 알게 된 지식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다시 잘 곳 없는 남자친구를 만나 모텔을 알아봐야 했을 때, 모텔의 지형도는 꽤 달라져 있었다. 스마트폰의 탄생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시대에 맞춰 ‘모텔가이드’에서도 앱인 ‘모가’를 출시하긴 했지만 대세는 ‘야놀자’였다. 위치 검색 기능으로 주변의 모텔을 검색하고, 전화를 걸어 객실 상황까지 확인할 수 있다니, 신세계였다. 모텔에 갈 일이 없어도, 또 어디에 새로운 모텔이 문을 열었는지 궁금해 앱을 확인했다. ‘모텔 얌’, ‘호텔 야자’ 등 자체 프랜차이즈 모텔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그렇게 검색해서 찾아간 모텔 프런트에서 앱을 인증하고 현금 결제를 하면 가격을 할인해주곤 했던 것도 어느덧 2~3년 전의 일. 호텔을 특가로 예약 및 결제할 수 있는 앱이 등장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모텔은 자연스레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모텔의 세계가 또 한번 뒤집혔다. 버스정류장의 광고판과 SNS를 모텔 예약 앱이 뒤덮은 거다. 유병재와 신동엽을 모델로 내세운 ‘여기어때’였다. 검색과 예약은 물론, 결제까지 바로 가능하다니 세상에,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모텔, 그 놀라운 진화
사실 한국에서 ‘모텔’의 정의는 모호하다. 예전 같으면 무슨무슨 ‘장’이나, ‘여관’의 이름을 달았을 것 같은 곳들도 있고, 간판만 호텔인 곳도 있다. 단어의 어감은 굳이 나누자면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여기어때’가 모텔 대신 ‘중소형 호텔’이라는 표현을 권장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사실 모텔로서는 좀 억울한 면이다. 안 좋은 이미지에 일조한 대실이나 불륜은 특급 호텔에서도 얼마든지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한국의 모텔은 가격 대비 최고의 만족도를 자랑하는 숙박업체다. 5만원에서 7만원 정도면 널찍한 침대와 샤워부스(때로는 욕조까지,) TV, 그리고 컴퓨터와 에어컨이 있는 숙소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신촌 근처의 모텔 입구에서는 외국어로 된 여행 안내서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체크인이 오후 9시 정도로 늦다는 것만 감수하면 된다. 다른 숙박업소와 모텔을 구분 짓는 건 이거다. 모텔 객실에는 컴퓨터나 셋톱 박스가 설치된 TV가 있으며, 반드시 ‘콘돔’이 있다. 모텔을 제외한 그 어떤 숙소도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이건 모텔의 두 가지 속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면서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거나 섹스를 하는 곳. 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

잠만 자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공간으로서 모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모텔 예약 앱은 바로 여기에 주안점을 둔다. ‘여기어때’의 주제별 숙소 검색 카테고리만 보면 깜짝 놀란다. 파티룸, 빔 프로젝터, 3D TV, 게임기, 당구대, 안마의자 등 ‘모텔에 이런 것까지 있어?’ 싶은 게 잔뜩이다. 거울룸이나 무인텔, 노천탕, 욕실 TV 등 커플들이 혹할 것 같은 요소까지 합하면 앱에서 제공하는 테마는 총 22개. 과연 이런 업소가 있긴 할까? 싶어 ‘하늘뷰’ 카테고리를 클릭해봤더니 역삼동과 여의도에 위치한 창밖이 보이는 모텔이 등장했다. 말로만 듣던 그 옛날 러브 호텔처럼 천장이 열리는 방을 기대한 터라 다소 실망했지만 꽤 솔깃한 선택지다. 업소별 혜택도 즐비하다. 오후 1 시 이전에 입실하면 대실 시간을 연장해주는 ‘무한대실’이라는 것도 있다.

저녁 시간 즈음, 회사에서 ‘여기어때’에 접속했더니 곧바로 회사 주변에 자리한 업체 세 곳이 떴다. 심지어 그중 한 곳은 오후 10시에 입실할 경우 택시비를 5천원 지급한단다. 객실가는 5만원. 사진을 보니 내부도 깔끔해서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한다면, 혼자서라도 들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입실 시간에 따라 체크아웃 시간을 최대 네 시간까지 연장해주는 곳도 꽤 많았다. 이토록 다양한 혜택이 존재하니, 사용자들은 여러 가지 앱을 번갈아 비교해가며 사용한다. 여자친구와 만난 지 6개월 되는 A의 스마트폰을 보니 여기어때, 야놀자 뿐만 아니라 호텔타임, 데일리서비스까지. 총 네 개의 숙박 앱이 깔려 있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앱이 제안하는 다양한 큐레이션이다. 지역별이나 신축 업소 카테고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구 풍등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등 여행을 떠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숙소를 정리해놓은 것이다. 사실 호텔이 많지 않은 지방에서는 모텔만큼 쉬운 대안을 찾기 어렵다. 모텔 청소부로 커리어를 시작한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는 창립기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텔이나 펜션을 이용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여행 역시 숙박지 중심일 수밖에 없어요. 모텔은 지역의 맛집이나 축제 중심의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정말 모텔이 여행의 새로운 방법까지 제안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모텔이 연인들의 새로운 놀이터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자 살지 않는 한, 둘만의 시간을 보낼 공간을 도무지 찾기 힘든 한국의 수많은 커플들에게 다양한 모텔 앱이 등장한 시대가 온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적어도, 10여 년 전에 ‘모가’에서 후기를 뒤적이던 대학생 시절의 나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