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의 쿠션 팩트를 뒤집어보면 다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유는 뭘까? 쿠션의 원조격인 국내 브랜드들은 어떤 방어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까? 나날이 치열해지는 쿠션 팩트 시장을 둘러싼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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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쿠션 팩트 춘추 전국 시대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쿠션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국내 브랜드로 한정되던 쿠션 시장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카테고 이며(이는 기존 제품의 소비층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번 구입하면 최소 6개월은 사용하는 파운데이션과 같은 기존 베이스 제품과 달리 2~3개월에 한 번씩 새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빠른 소진 효과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베이스 제품에 비해 절대 판매량이 높다. 자주 구입하게 되는 아이템이라 그만큼 새로운 브랜드로 갈아타기도 쉽다. 한마디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시장인 셈이다. 차별화를 위해 협업으로 소비자의 호기심을 끌고, 제형과 사용감을 세분화해 쿠션 팩트의 라인업을 늘려가는 한국 브랜드들과 더불어 글로벌 브랜드의 추격까지 더해지며, 지금 쿠션 팩트 시장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후발 주자인 글로벌 브랜드의 쿠션 전략 올해는 쿠션 시장의 2막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글로벌 브랜드들의 쿠션 출시가 줄을 이었다. 작년 랑콤을 시작으로, 올해 초 바비 브라운, 맥, 비오템, 에스티 로더, 입생로랑, 슈에무라 등이 쿠션 팩트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포부가 대단하다. 일단 기존 쿠션 팩트의 아쉬움을 보완했음을 내세운다. 이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기존 쿠션의 다소 떨어지는 커버력이다. 맥, 에스티 로더, 입생로랑, 슈에무라 등이 모두 파운데이션 못지않은 탄탄한 커버력을 소구했다. 맥은 농밀한 커버력과 윤기로 쿠션 팩트 하나만으로 파운데이션 못지않은 피부 표현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내세웠고, 에스티 로더는 커버력으로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더블웨어 파운데이션의 이미지를 쿠션 팩트에 입혔다. 이는 기존의 쿠션 팩트 소비자층 외에도, 커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쿠션 팩트를 사용하지 않던 30~40대 이상의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각자 브랜드의 색깔을 투영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입생로랑은 리필 없이 7만5천원으로 가격을 책정하며 최고가 쿠션 팩트임을 공공연히 밝혔다. 럭셔리한 이미지를 강조해 희소성의 매력을 어필한 것이다. 비오템은 보습에 강한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탁월한 보습력을 앞세운 제품을 내놓았다. 지방시는 로고 모양으로 포뮬러가 올라오는, 패셔너블한 터치가 더해진 쿠션 팩트를 출시했다.

시장의 성장은 기술 진보를 가져온다 물론, 포뮬러나 디자인 등 1차원적인 변화뿐만은 아니다. 쿠션 제조 기술 자체에도 각자의 개성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슈에무라의 쿠션 팩트는 퍼프가 색다르다. 포뮬러를 흡수시키지 않고 내뱉는 기존 퍼프와 달리 한올 한올 결이 살아 있는 소재로, 외형상으로만 보자면 일반 파우더 팩트의 퍼프와 유사하다. 기존 퍼프는 포뮬러가 한번에 잔뜩 묻어나서 양 조절이 불편하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것으로, 팡팡 두드리며 사용하는 대신 톡톡 스치듯 가볍게 비벼 바르기를 권한다. 그래야 퍼프의 결 사이에 포뮬러가 끼지 않고, 결의 끝에만 묻어나 낭비 없이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쿠션이면서도 파우더 팩트 못지않은 밀착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비 브라운은 기존 쿠션의 위생 문제를 집중 보완했다. 포뮬러가 적셔져 있지 않은 깨끗한 스펀지 상태로 판매하고, 소비자가 사용하기 직전에 쿠션 속 캡슐을 터트려 사용하는 방식이다. 처음 사용할 때는 작은 점처럼 적셔져 있던 스펀지의 영역이 사용할수록 점점 넓어진다. 덕분에 다른 쿠션 팩트에 비해 위생적일 뿐 아니라, 제품을 보다 신선하게 사용할 수 있다. 쿠션 팩트를 사용하면 처음에는 촉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스펀지가 건조해지는 단점도 커버할 수 있다. 지난해 글로벌 브랜드 중 처음으로 쿠션 팩트를 내놓은 랑콤은 올해 4월, 벌써 2세대 쿠션을 출시한다. 이중 네트가 진화의 핵심으로, 밑에는 섬유가 정교하게 얽혀 있는 섬유 스펀지를 놓고 그 위에 섬세한 그물막 같은 네트를 다시 얹었다. 더 세밀해진 섬유 스펀지는 포뮬러가 쉽게 공기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네트는 내용물이 적당량만 묻어나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쿠션을 응용해 랑콤만의 새로운 기술을 더한 셈이다.

쿠션 팩트는 왜 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나?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쿠션 팩트들이 대부분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거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조 노하우를 갖춘 공장 설비가 아직 한국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해외에서 제조된 쿠션 팩트도 조만간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미, 에스티 로더의 쿠션 팩트는 한국이 아닌 일본의 제조사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K-뷰티 열풍의 영향으로 쿠션 팩트가 유행하고 있지만,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잠시의 ‘유행’일 뿐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아직 쿠션 팩트의 시장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다. 한마디로, 쿠션을 제조할 설비를 갖추기 위한 투자 비용 대비 수익 효과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중이라는 의미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쿠션 팩트 출시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거의 모든 브랜드가 아직 유럽이나 미국 등의 시장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만 쿠션 팩트를 내놓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반응을 보고 그 외 국가에서의 출시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쿠션 종주국 한국의 자세 한국 브랜드들도 긴장하고 있다. 쿠션 팩트를 처음 발명한 아이오페와 비비 쿠션으로 아시아 시장을 석권한 라네즈 등 쿠션 팩트의 종주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쿠션 관련 TFT 팀을 운영하고 있다. 쿠션 팩트의 원조사로서 새로운 시장 개척 및 글로벌 브랜드들의 거센 추격에 대한 방어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다. 담당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쿠션에 전혀 새로운 콘셉트를 더한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국의 제조사들이 기존 한국 브랜드들과의 쿠션 팩트 제조 경험을 글로벌 브랜드 제품에 적용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글로벌 브랜드의 쿠션 제작을 꺼리는 국내 화장품 제조사도 늘고 있다. 기존의 쿠션 팩트 제조 물량을 없애겠다는 한국 브랜드들의 으름장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아직 몇천, 몇만 개 생산에 그치는 글로벌 브랜드보다는, 막대한 해외 수출까지 확보한 국내 브랜드와의 협업이 보다 이익인 것이 당연하니까. 한국 제조사에 편중되어 있던 글로벌 브랜드의 쿠션 제조가 앞으로 어떤 양상을 띠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아모레퍼시픽과의 기술 MOU 체결로 화제를 모았던 디올 역시 곧 쿠션 팩트를 내놓는다. 특이하게도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3월 1일부터 먼저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는 제품 입고 절차가 까다로운 규정상 불가피하게 론칭을 미뤘지만, 한국 판매가 늦춰진 이유는 전혀 다르다. 쿠션 종주국인 한국 시장에 있어서는 보다 철저한 마케팅 전략을 내세워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완벽 무장을 갖추고 출격하겠다는 의지다. 내년에는 럭셔리 코스메틱 브랜드의 대명사인 모 브랜드에서도 쿠션 팩트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자자하다. 과연, 쿠션 팩트는 아시아에서의 열풍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세계 여자들의 메이크업 루틴을 변화시키며 당당히 메인 카테고리에 입성할 수 있을까? 치열한 쿠션 팩트 시장의 열기가 1년 뒤, 10년 뒤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