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탈리아 장수 마을의 비결로 밝혀지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아온 파바콩. 역사적으로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셰프들도 찬사를 보내는 파바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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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콩(작두콩)만큼 싱그러운 녹색이 또 있을까. 선홍빛 일몰이나 푸른 바닷빛처럼 파바콩의 녹색빛은 자연이 선물하는 가장 아름다운 컬러 중 하나다. 수많은 셰프가 길쭉한 꼬투리에서 수고스럽게 파바콩을 빼내 자신의 요리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파바콩은 완두콩과도 다르고 아스파라거스의 녹색 줄기와도 다른 뭔가가 있다. 아티초크나 산딸기보다 생기 넘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계절 ‘봄’을 알리는 반가운 전령사다.

“계절 요리를 선보이는 우리에게 파바콩은 신호탄이에요. 봄 요리를 축복하는 싱그러운 재료죠.” 2016년 뉴욕 소호에 레스토랑 킹(King)을 오픈한 셰프 클레어 드 보어(Clare de Boer)가 말한다. 파바콩은 3월과 4월 초에 걸친 몇 주 동안만 수확되는데, 잘 익은 건 생으로 요리하고 껍질과 줄기 역시 즙과 장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페코리노 치즈와 곁들여 내는 건 로마 스타일이다).

하지만 셰프들이 파바콩에 열광하는 것에 비해 일반 가정에서 파바콩을 조리해 먹는 경우는 드물다. 특별한 지식이 없는 한 파바콩은 별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파머스 마켓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다란 꼬투리에 둘러싸인 콩은 ‘숨겨진 보석’이라는 힌트를 전혀 주지 않는다. 더욱이 수확량도 극도로 적은 데다가, 파바콩 1파운드를 구입해봤자 꼬투리에서 빼내면 1컵 분량밖에 나오지 않는다. 거기다가 쓴맛을 내는 속껍질을 다 벗겨내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감내해야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30~60초간 끓는 물에 데친 후 얼음물에 담갔다가 속껍질을 벗겨내는 것. 껍질까지 다 벗겨낸 콩은 손톱만 한 크기이고, 그래도 가만히 바라보면 묘한 만족감마저 느껴진다.

미국인들의 의식 속엔 파바콩이 꽤 악명 높은 스토리와 함께 기억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셰프이자 베이커 낸시 실버턴(Nancy Silverton)은 캠퍼닐 레스토랑의 초창기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수요일, 파머스 마켓에서 그녀는 당시 낯선 재료 중 하나였던 파바콩을 발견했다. “어느 날 파바콩을 잔뜩 들고 들어오다가 손님과 마주쳤는데 그녀는 앤터니 홉킨스와 함께 앉아 있었죠. ‘낸시, 오늘 마켓에서 가장 큰 수확이 뭐였나요?’ 그녀의 물음엔 난 ‘올해 갓 수확한 싱싱한 파바콩이요!’라고 답했어요. 앤터니는 잠시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는데 뭔가가 잘못된 듯한 생각이 들었죠.” 낸시는 당시 인기 있었던 대중 문화를 잘 몰랐고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를 떠올리지 못했다(극 중 렉터는 약간의 파바콩을 곁들여 키안티 와인과 함께, 인구조사원의 간을 먹는다).

실버턴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후 다양한 파바콩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치스파카(Chi Spacca) 레스토랑에서 그녀는 꼬투리가 작은 파바콩을 튀겨 통째로 먹을 수 있게 내놓는다. 또 오스테리아 모차(Osteria Mozza)에선 뇨키나 샐러드(완두콩, 아스파라거스와 함께)에 곁들인다. 알고 보면 파바콩은 유럽과 아시아에선 고대부터 재배되어온 콩과식물이다. ‘브로드빈(일본 와사비 과자로 애용된다)’이라고 알려진 이 콩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항해하고 돌아오기 전까진 유럽의 유일한 콩이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파바콩은 그만큼 구전되는 설화나 스토리도 많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집트의 사제들은 파바콩을 바라보는 것을 금지했고, 초창기 로마인들은 콩 꼬투리에 죽은 자의 영혼이 갇힌다고 믿었다고 한다. 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선 파바콩을 땅 위로 던져 그 패턴을 해석해 점을 쳤다. 이 콩의 상징성은 무척 강해서 심지어는 오랫동안 천연강장제나 최음제로 효과가 있다고 믿어졌다. 사실 그런 효능은 없고 누구에게나 다 유익한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4억 명이 고통받는 유전질환인 G6PD 결핍증이나 잠두중독증의 경우, 파바콩을 섭취하면 빈혈이 심각한 상태로 악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바콩은 정말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훌륭한 식재료다. 1978년 <베지터블 북(Vegetable Book)>에서 제인 그릭슨(Jane Grigson)은 파바콩을 두고서 ‘고기가 없는 걸 사과할 필요가 없는 재료!’라고 적었다. 특유의 달콤쌉싸래한 맛과 풀내음 때문에 파바콩은 육류와 잘 어울린다. 프랑스인은 베이컨에, 이탈리아인은 구안치알레(돼지 볼깃살로 염장 숙성한 것)에 곁들여 먹는다. 아님 구운 양고기 슬라이스에 버터와 민트를 얹은 후 파바콩을 올려 먹어도 끝내준다.

하지만 역시 가정식 요리로 가장 간편한 방법은 파바콩 퓌레다. 모든 요리에 어울리고 활용도는 끝이 없다! 로즈메리 잎을 넣고 데친 콩을 다시 올리브 오일에 볶은 후 믹서에 간다(취향에 따라 거칠거나 미세하게). 그런 다음 민트, 레몬, 페코리노 치즈를 넣어 리구리아 해안식 소스로 활용하거나, 이탈리아 고춧가루나 벌꿀을 넣어 풍미를 더해도 좋다. 잼처럼 토스트나 파이 위에 얹거나 좀 더 기분을 내려면 싱싱한 연어 요리에 소스처럼 뿌린 후 펜넬, 딜 등의 허브를 장식해도 좋다.

“파바콩 퓌레는 만능에 가까워요” <식스 시즌(Six Seasons)>의 저자이자 포틀랜드 아바 진스(Ava Gene’s)의 셰프 조수아 맥파든(Joshua McFadden)은 퓌레보다는 식감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는 부드러운 스크램블드 에그나 곡물 샐러드에 잔뜩 뿌리거나 전통적인 파바콩의 친구인 치즈와 살라미와 곁들이길 좋아한다. “파바콩은 긴 겨울 내내 여러분을 기다리게 만들어요. 그래서인지 이 기다림 끝에 나타나는 싱그러움이 더더욱 반갑게 느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