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게, 아름답게 <1>
체육인에게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2017년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시상식장에 우뚝 선 선수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대상을 받은 클라이머 김자인 선수와 전설적 농구선수로 이제는 지도자가 되어 지도자상을 받은 전주원 선수를 만났다. 강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이야기.

터틀넥은 마시모두띠(Massimo Dutti). 스커트는 CH 캐롤리나 헤레라(CH Carolina Herrera). 귀고리는 로제도르(Roseedor). 반지는 모니카비나더(Monicavinader).
전주원 | THE COACH
전주원은 여자 농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역대 최고의 가드였으며, 여느 선수들이 은퇴하는 시기를 훌쩍 넘기는 20년간 코트를 지켰다. 몸담아온 두 구단이 모두 그녀의 등 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남겼기에, 치열한 프로스포츠계에서 두 번의 영구 결번을 가진 선수는 그녀가 유일하다. 은퇴 후 코치가 되어 아산 우리은행 위비팀을 이끌고 있는 전주원은 지난 2017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에서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촬영을 하면서 본 그녀의 손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선수 시절에 많은 상을 받았지만 지도자로서의 상은 처음이죠?
네. 보통 지도자 상은 감독님들이 받지, 코치가 받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도자로서 잘해서라기보다, 더 열심히 해서 여자 지도자로서 후배들의 길을 넓히라는 의미로 감사히 받았어요. 스포츠계에 여성 지도자가 많지 않잖아요. 더 열심히 해서 후배들에게 좋은 길이 될 수 있게 해야죠.
지도자로서 받은 상은 또 어떤 느낌인가요?
지도자로 받기가 사실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선수는 내가 잘하면 되는데, 지도자는 한마디로 조정과 매니지먼트를 잘해야 하는 거니까요. 선수들이 제 맘처럼 움직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도 선수들이 잘해주면 지도자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고 내가 선수로 뛸 때보다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쑥스러워서 ‘큰 상 아니에요’ 하고 주변에 말했지만, 상을 받는다는 건 참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거든요. .
훈련 강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몸 관리를 하고 있죠?
아직은 일하고 있으니까 많이 먹은 날은 많이 운동 하고, 운동하기 싫으면 조금 먹고 그래요. 맛있는 거 좋아해서…. 많이 먹지만 그러면 운동을 많이 하죠.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걷고요, 웨이트는 요즘에는 시즌이라 바빠서 많이 못하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해요. 선수들처럼 무게로는 안 하고 맨몸으로 해요. 상체보다 하체 운동을 많이 하고요.
선수 시절의 루틴을 계속 이어가고 있나요?
저는 원래 징크스나 루틴을 잘 안 만들어요. 그걸 하다가 못하면 답답하고 불안할까봐. 하지만 선수 때나 지금이나 경기 나가기 전에 샤워하는 건 항상 해요.
여자 농구계 최고의 가드로 불렸어요. 흔히 가드를 ‘코트 위의 사령관’이라고 해요. 그런 포지션의 경험이 지금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가드가 코트 위에서는 지시를 많이 하잖아요. 경기도 풀어가고 다른 선수를 보듬어 안아야 하고요. 선수 때는 고참을 좀 오래 했어요. 그런 경험과 습관이 코치로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저도 가드가 대장인 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시키는 대로 선배들도 움직였거든요.(웃음)
감독과 선수 사이, 코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선수와 감독님의 중간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선수에게 감독님은 어렵고, 감독님은 선수에게 전할 수 없는 내용이 있어요. 그걸 서로서로 잘 잘 이해시키고, 선수들의 뜻을 감독에게 여과를 통해 잘 전달하는 역할이요. 저 없이 서로 직접 이야기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가 가운데서 그 역할을 잘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코치가 되면서 마음가짐이 어떻게 변했나요?
선수 시절에는 내가 농구를 잘하냐, 못하냐느만 신경 쓰면 되었죠. 하지만 코치는 한두 명의 선수가 아니라 모든 선수를 다 봐야 하고, 감독님도 잘 보필해야 하고 여러 가지를 해야 하죠. 코치가 6년째지만 아직도 실수를 하고 부족한 게 많아요. 후배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도 해야 하는데, 어렵지만 꼭 해야 하죠. 당근이냐 채찍이냐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
농구는 보기에도 재미있고, 하기에도 재미있는 스포츠죠. 저도 고등학생 때 체육 수업에서 자유투 실기 시험을 본 적이 있어요. 연습하니까 잘 되고, 계속 하고 싶었는데 여자가 농구를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더군요. 운동장의 농구 코트나 축구 코트는 남학생들의 차지니까요.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재능을 찾지 못할 수도 있죠. 저도 처음에 농구 센스가 있는 줄 모르고 시작했어요. 노출 빈도도 높아야 하고, 그러면서 관심을 갖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관심을 갖다 보면 ‘재미있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찾아야 해요. 저도 처음 시작할 때, 뽑힌 애들 중에 키도 제일 작았어요. 운동 신경도 없고요. 하다 보니까 잘하게 된 거예요.
여러 기록이 있지만, 선수 생활을 가장 오래 한 여성 농구 선수로도 첫째, 둘째를 다투잖아요. 그사이 출산도 하셨는데, 복귀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결혼하고 은퇴하려고 했었죠. 또 아기를 낳고 다시 복귀할 때는 정말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잘했다 싶었어요. 오히려 아이 낳고 나서 저는 계속 우승만 했어요. 전투력이 최고조였어요. 똑같이 못해도 ‘출산 전에는 컨디션이 안 좋구나’ 할 텐데 아이 낳고 오면 ‘나이 먹고, 아이도 낳고, 왜 운동했어?’라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아기 낳고 농구를 더 잘했죠. .
의지만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우선 몸이 달라지지 않나요? 임신을 했을 때도 하루에 엄청 걸었죠. 체조와 스트레칭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보니 관절도 안 아프고 몸이 금방 돌아왔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게 마흔까지 하게 되었어요. ‘애한테 그것도 못해주면서 그렇게 하려고 농구했냐’ 하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서 제 스스로 자극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왜 농구를 계속 했나요?
즐거웠거든요. 정말 좋았어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부담도 없고요. ‘나는 올해가 마지막이야. 더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어. 그러니까 즐겁게 열심히 하자’라고 늘 생각하다 보니 마흔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 서른넷쯤, 출산 후 복귀해서 ‘1~2년만 더 할 거예요’ 했는데 마흔까지 한 거예요. 그런데 단장님이 ‘이젠 편하게 코치를 해라, 그동안 고생했다’라고 하셔서 코치를 했죠. 누군가가 멈춰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그때 그 단장님이 저를 멈춰주지 않았으면 마흔 두세 살까지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코치로서 지키고 싶은 소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걸 왜 못하냐?’라고 말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선수의 눈에서 바라봐 주자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해서 선수의 눈에서 바라보려고 해요. 가끔 이벤트로 올스타전에서 뛸 때가 있는데, 재미있어요. 하하. 진짜 재미있어요.
선수들은 늘 땀을 흘려요. 어떤 뷰티 루틴을 가지고 있나요?
저도 20대 초반에는 머리가 타 들어갈 정도로 뭘 해본 적도 있고 그런데 하면 안 되겠다고 빨리 깨우쳤어요. 경기 중에는 슈트를 입어야 하니까 BB크림에 눈썹만 해요. 서른 넘어서부터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기 시작했는데, 진작 바를걸 그랬다고 후회해요. 선수 시절에는 경기 하면 땀 나니까 기초 화장도 안 했어요. 은퇴하고 저도 점은 뺐네요.(웃음) 아이크림도 바르고요.
코치로서는 어떤 꿈을 꾸시나요?
주변에서는 제가 감독이 되길 원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마음보다 내가 그동안 배운 걸 후배들에게 다 가르쳐주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그런 말 있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지만 즐기기엔 너무 힘들어요. 그럴수록 본인 스스로 작은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해요. 프로 선수니까 돈을 목표로 한다면 전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목표가 뭐든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잘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는 20분을 뛸 거야’ 하는 식의 작은 목표를 통해 농구를 더 발전적으로 하길 바라요.
선수 시절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무엇이었나?
다 민망해요. 미녀, 천재 가드 뭐 이런데. 왜 저한테 이런 별명을 줄까요? ‘여자 허재’ 뭐 이런 거는 손발이 다 오그라들어요. ‘코트 위의 마돈나’도 있었어요. 저는 역시 ‘코트 위의 사령탑’이 제일 좋아요.
농구가 정말 즐거웠거든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부담도 없고요‘. 나는 올해가 마지막이야. 더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어. 그러니까 즐겁게 열심히 하자’라고 늘 생각하다 보니 마흔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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