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갈비찜과 곱창. 대구의 식탁을 상징하는 몇 개의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다른 대구의 맛을 들여다보았다. 파인 다이닝의 코스 요리부터 프랑스식 파티세리와 커피까지. 대구의 맛을 찾아 떠난 여행.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와 궤도를 함께해온 커피명가. 최근에 문을 연 로스팅 공장인 라 핀카에서는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를 맛볼 수 있다.

스물아홉이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대구에 가본 적 없었지만 대구는 늘 곁에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대구에서 전학 온 앞집 친구에게 대구 사투리를 배웠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친구와 동기들로부터 강남 8학군 뺨치는 대구 수성구의 교육열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뿐인가. 해운대에 센텀시티가 생기기 전에는 부산 사람들이 쇼핑을 하기 위해 서울이 아니라 대구백화점, 일명 대백으로 가곤 했다는 이야기, 매년 성대하게 열리는 오페라 축제 등은 대구라는 도시의 풍요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결정적인 것은 갖가지 키워드로 레스토랑을 검색할 때마다 검색에 걸리곤 하던 대구의 레스토랑들이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미즈컨 테이너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샐러드 파스타를 먹고, 서울의 번화가에 자리를 잡는 서가앤쿡을 보면서 대구의 레스토랑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래서 대구로 떠났다. 오랫동안 흘깃거려온 도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1 클래식한 분위기의 더 키친 노이는 다양한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 팬프라이한 뇨키와 직접 훈제한 베이컨. 2 르 코르동 블루 런던을 졸업한 공태호 셰프는 정통 조리법을 따른 음식을 만든다. 트항뜨트와 33의 크렘 브륄레와 양파 수프, 크로크 마담.

대구의 셰프들

코스 요리를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 파인 다이닝의 기본 정의다. 그리고 지난해, 서울에서 활약하던 셰프들이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나란히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김상환 셰프의 ‘삐에뜨라’로 향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이자 와인과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취급하는 논현동 와인 북 카페를 오랫동안 지킨 그였다. “레스토랑을 열기 전에 대구에 자주 내려왔어요. 대구의 레스토랑들이 어떤지 보려고요. 요리 철학은 똑같아요.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고 소금과 후추로만 간할 것,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을 잊지 말자는 거죠.”

 

메뉴판은 풍성하다. 샐러드와 파스타, 피자, 리소토 같은 친근한 이탤리언 메뉴부터 직접 내린 착즙 주스와 디저트류까지 고르게 판매한다. 코스 요리는 전날 예약한 경우에만 맛볼 수 있는데 총 6코스에 5만8천원으로 정해져 있다. “서울이냐 대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탤리언 요리를 만드는 한국인 셰프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철 식재료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고 있어요.”

 

여름철에 안티파스티로 선보인 닭가슴살 롤은 이런 김성환 셰프의 의욕이 드러난 메뉴다. 삼계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롤은 닭가슴살에 수삼,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를 넣어 만든 메뉴로 식재료의 식감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다. 봄에는 마산 앞바다에 나는 미더덕을 봉골레 파스타에 넣고, 바질 대신 달래로 페스토 소스를 만든다. 9월에는 철을 맞은 농어로 카르파치오를 선보일 예정이다. 삐에뜨라는 9월 말, 잠시 문을 닫고 중구의 근대문화 거리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와인 북 카페에서의 경험을 살려 스파클링 와인부터 디저트 와인까지, 와인 리스트도 보강할 예정이다. “요리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문화가 이제 막 대구에서도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상화 시인의 자택을 비롯해 대구의 중요한 관광명소로 몇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근대문화 거리에 이탤리언 요리가 어떻게 녹아들지, 기대해도 좋겠다.

 

수성구 황금동에 자리한 장원영 셰프의 ‘더 키친 노이’는 조금 더 묵직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황금동은 서울에 비교하자면 청담동 같은 곳 이에요. 대구의 기관장들이나 의사, 법조계 사람들이 이 근처에 모여 살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원영 셰프의 경력은 흥미롭다. 어릴 때부터 맛에 예민했던 그는 서울의 대학에 진학한 이후 ‘미식가천국’ 이라는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며 곳곳의 맛집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운영진까지 했을 정도니까 엄청나게 열심히 활동한 거죠.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갔는데 생각하던 것과 참 달랐어요. 결국 요리 경험이 전혀 없는 채로 이탈리아로 가서 ICIF에 입학했죠.” 이후 뚜또베네, 그라노 등 서울의 대표적인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며 이력을 쌓아온 그가 대구에 내려온 이유는 그만의 레스토랑을 갖고 싶어서다.

 

“서가앤쿡이나 미즈컨테이너의 사례를 봐도 그렇고, 대구에서 성공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100퍼센트 성공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제 오 픈한 지 7개월이 되었는데 만만치 않아요.” 단품으로 선보이는 파스타 메뉴에는 다양한 면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손이 많이 가지만 라비올리와 뇨키를 메뉴판에 올린 것도 이 때문.

 

“제 목표는 커피와 와인을 빼고는 모두 직접 만들자는 거예요. 베이컨은 물론 소스와 디저트까지 직접 만들죠.” 코스 요리의 진수는 디너 시간에 맛볼 수 있다. 기본 코스는 5코스, 셰프의 테이스팅 메뉴는 9코스로 이뤄져 있으며, 셰프의 테이스팅 메뉴를 맛보고 싶다면 예약은 필수다.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기념해 대구를 찾은 장 샤오강이 식사를 한 곳도 바로 더 키친 노이다.



1 주택을 개조한 트항뜨트와 33의 실내는 액자와 책, 그리고 레고가 가득하다. 2, 6, 7 지난봄 범어사거리에 등장한 파티세리 숍 고메 드 파리 16은 대구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다. 3 파이 앤 크로셰의 파이와 크로셰 작품. 4 가방을 만들 수 있는 방법과 재료가 든 키트는 파이 앤 크로셰 블로그에서 판매한다. 5 삐에뜨라의 한우 안심 스테이크. 양송이 버섯과 마늘로 장식했다.

트항뜨트와 33에서 만난 프랑스의 맛

경북예고가 있고 음악학원과 미술학원 등이 밀집한 대명동은 대구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오래전 홍대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만난 곳은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삼십삼’, 프랑스어로는 ‘트항 뜨트와’가 된다. 공태호 오너셰프는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한 이후 창고처럼 쓰던 주택을 개조해 지금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동안 모아온 레고와 플레이모빌로 구석구석 꾸민 공간은 카페 같아 보이지만 ‘트항뜨트와 33’ 은 제대로 된 프랑스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런던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다가 함께 아파트를 나눠 쓰던 친구들과 어울려 요리하는 재미에 빠진 공태호 셰프는 르 코르동 블루 런던에서 요리를 배우며 진로를 바꿨다. 오랫동안 식당을 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맛도 한몫했다.

 

“프랑스 요리의 핵심 중 하나는 육수라고 볼 수 있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정해진 방식을 따라 제대로 만들어요.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요리사로서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 같은 거죠." 메뉴 역시 기본에 충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로크 무슈와 비슷하지만 달걀이 올라가는 크로크 마담은 세계적인 프렌치 레스토랑, 르 부숑에서 근무하던 시절 눈여겨본 플레이팅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프랑스 요리 중 기본 중의 기본으로 꼽히는 양파 수프는 12시간 이상 끓여낸 육수에 그뤼에르 치즈, 양파와 버터를 넣고 끓여내는데, 뜨겁고 진한 치즈와 육수의 맛이 혀를 감싸 안는다. 그 맛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트항뜨트와 33의 프렌치 쿠킹 클래스에 신청해 보길!

 

대구와 빵의 관계 

빵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빵집 순례를 떠나도 좋을 정도로 대구는 풍부한 베이커리 문화를 갖고 있다. 대전 성심당의 튀김 고로케, 군산 이성당의 단팥빵과 버금가는 명성의 마약빵을 판매하는 곳으로 이름난 삼송베이 커리가 있는가 하면 르배, 안데르센, 엘오븐 등 베이커리 카페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봄 범어사거리에 등장한 파티세리 숍, ‘고메 드 파리 16’의 등장은 센세이셔널하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 푸른색 벽과 황금빛 테두리를 친 액자의 어울림이 화려한 이곳은 각종 발효빵과 디저트, 음료를 고르게 맛볼 수 있다. 고메 드 파리 16의 정반대 지점에 선 파이전문점이 있다면 바로 ‘파이 앤 크로셰’다. 이름 그대로 수제 파이와 크로셰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가게의 분위기는 ‘정갈하다’는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바로 파이 앤 크로셰의 모녀 이야기다. 제빵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 카페를 들락거리던 둘째 딸이 어릴 때부터 먹던 엄마의 파이 레시피를 카페에 올린 것이 파이 앤 크로셰의 시작이었다. “엄마의 파이 레시피에 대한 호응이 뜨거웠어요. 완전한 수제 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으로 주문 요청도 받게 됐죠.” 취재 소식을 듣고 울산에서 올라온 셋째 딸 이정원 씨의 말이다. 성우였던 엄마 전혜경 대표는 “내 맘대로 만들었을 뿐인데…”라며 수줍게 웃었다. 대체 어떤 레시피이길래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된 걸까? 파이를 한입 베어 문 뒤에야 정답을 찾았다. 시럽에 사과를 졸인 콤포트 대신 생사과를 그대로 사용한 애플파이는 새콤달콤한 사과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잘게 간 호두를 ‘왕창’ 넣은 호두 파이는 입안 가득 부서졌다. 달면서도 고소한, 요리 잘하는 친구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 같은 맛이었다. 네 자매가 각자의 길을 가기 전까지, 대구에서 오래 산 모녀에게 대구에 이토록 다양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구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해요. 새로 뭐가 생겼거나, 어떤 것이 인기를 끌면 체험해보려 하고 주머니를 여는 데 인색하지 않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대구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 중 하나가 ‘83 그릴 바이 애슐리’다. 우방타워를 이랜드가 인수해서 새롭게 꾸민 83타워 꼭대기에 자리한 83 그릴 바이 애슐리는 이름 그대로 무려 83층에 위치하고 있다! 360도로 천천히 회전하는 공간에서 대구의 야경을 감상하며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연인들을 위한 레스토랑이자 와인바다. 하지만 대구의 베이커리 마니아들은 이곳을 낮에 찾는다. 디저트와 애프터눈티 세트를 맛보기 위해서!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83 그릴 바이 애슐리의 디저트 세트는 그야말로 단것의 향연이다. 샌드위치나 토스트는 완전히 제하고 생초콜릿, 마카롱, 쿠키, 무스, 몽블랑, 케이크 등 디저트로만 3단 트레이를 가득 채웠다! 모든 디저트는 매장에서 두 명의 파티시에가 직접 만들며, 세트에는 로네펠트 티가 포함되어 있다. 83타워의 모양을 살린 트레이도 귀엽다. 83 그릴 바이 애슐리는 이랜드에서 처음 선보인 파인 다이닝이기도 하다. 박성수 회장과 박상경 부회장이 전 세계 경매장을 찾아 다니며 모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컬렉션도 볼 수 있는데, 고전 영화의 소품을 포스터와 함께 되짚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촬영할 당시 오드리 헵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의 사인부터 그레이스 켈리의 자필편지, 그리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나탈리 우드의 극중 의상이 컬렉션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