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든, 화장이든 ‘멋’의 기본은 TPO에 맞추는 일이다. 그렇다면, 수영장에서 화장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물음에 대한 조언.



대학생 시절에 만난 어떤 남자는 자기는 새 여자친구를 사귀면 어떻게든 수영장에 가자고 해서 민낯을 확인한다고 했다. 타고난 미모뿐만 아니라 안경을 쓸 수 없는 수영장에서는 그녀의 시력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2세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도 여자들은 다들 비난의 함성을 올렸는데, 이제 그런 남자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게 됐다. 그 사이 수많은 워터프루프 화장품과 일회용 콘택트렌즈, 라식 수술 따위가 생겨났으니까. 7월, 야외수영장이 일제히 개장하면서 평소 수영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데이트 겸 피서로 수영장을 찾는다. 수영장 이용을 포함한 호텔 서머 패키지는 ‘예약 전쟁’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몸매도 몸매지만 여자들의 또 하나 걱정거리는 얼굴이다. “그동안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로 원천봉쇄했던 모공과 여드름 자국은 어떡하지!”, “그나마 피부는 화장하면 되지. 난 눈썹이 3분의 1토막이야. 이거 지우면 남친이 못 알아본다고!” 수영장 갈 일에 걱정이 가득한 여자들의 수다다. 그래서 여름이면 워터프루프 화장에 대한 문답이 오가고, 각 화장품 브랜드가 일제히 내놓는 ‘서머 메이크업 컬렉션’에 관심이 쏠린다. 수영장에서도 결코 아름다움은 포기할 수 없다는 열망이, 뙤약볕 아래 자동차 보닛처럼 이글이글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수영장에서는 과연 어디까지 화장품을 발라도 되는 걸까? 자외선 차단제에는 워터프루프 타입이 있고, 세계적으로 자외선으로부터의 피부 보호에 주의를 기울이는 분위기라 발라도 된다(워터프루프 기능은 식약청 주관하에 실험으로 검증된다. ‘내수성’은 물에 한 시간, ‘지속내수성’은 두 시간 정도 들락거리는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피부와 색조화장이다. 사실 요즘은 실리콘 오일을 활용한 워터프루프 제품이 대부분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베이스부터 마스카라까지 번짐조차 없이 하루 종일 화장을 유지할 수도 있다. 여자 연예인들은 얼굴에 물벼락을 맞는 TV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속눈썹 하나 처지지 않고 생생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워터프루프 화장이라도 반짝이는 립글로스, 짙은 마스카라와 아이섀도는 같은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에게 편하지 않다. 실제로 바닷가를 재현한 대형 야외 물놀이장에 한 무리의 이십대 초반 여자들이 진한 화장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시끄러워서였는지, 주위 사람들 시선은 곱지 못했다. “수영장에 화보 촬영하러 왔나? 저러려면 전세를 내든지” 하며 마땅찮아 했다.

화장은 개인의 자유고, 워터프루프 화장이면 남들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도 않지만. ‘수영장에서의 공중도덕을 해치지 않는 화장’이란 심리적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화장을 좀 즐겨 하는 편이라 남편 친구들(주로 외국인들이다)이 부인이나 여자친구들과 짝을 지어 휴가를 갔을 때 그냥 화장을 한 채 풀 밖 파라솔 아래만 있은 적이 있다 .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며 조금 붉은 입술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 하나가 “Hey! Vampire!” 하면서 장난처럼 물을 튕겼다. 간접적이나마 수영장이란 TPO에 적합하지 않은 차림, 태도란 뜻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수영장에서 적절한 화장이란 뭘까? 해마다 그 해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이 모델로 나서는 ‘캐리비안 베이’ 광고를 해답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작년에 캐리비안 베이 모델이 된 미쓰에이의 수지를 보면 연한 브라운 계열로 할 것 다 했으면서 마치 안 한 듯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도 자신 있고, 남들도 뭐랄 사람 하나 없는 수준이다. 핵심은 목과 전혀 차이 나지 않는 얼굴 색. 그래야 화장한 티가 나지 않으면서 건강해 보인다. 눈썹과 아이라인은 워터프루프 펜슬이나 착색되는 틴트 타입으로 그리고, 입술은 본래 색과 최대한 비슷한 틴트 립밤이나 글로스로 살짝 진하게만 한다. 오션월드 모델인 씨스타는 거의 풀 메이크업을 했는데, 그래도 입술은 립글로스 대신 틴트로 물들이고, 아이라인은 잘 안 보이도록 짧고 가늘게 그렸다. 진짜 바닷가라면 ‘ 글로우’가 핵심이다. 특히 서양인들은 색조 화장보다는 브론저나 셀프 태너로 얼굴까지 황금빛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얼굴 윤곽이 입체적이기 때문에 피부가 가무잡잡해지면 잡티도 훨씬 덜 보이고 섹시하기 때문이다. 말리부 비치에 자주 출현하는 패리스 힐튼은 멀리서 보면 맨얼굴인데 광대뼈, 팔다리 등이 은은하게 빛나면서 눈도 깊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심지어 인조 속눈썹까지 붙인 풀 메이크업일 때가 많다. 선탠한 몸에 시머 밤을 바르고 눈엔 갈색이나 회색 섀도로 음영을 주었으며, 눈썹은 정교하게 모양을 살렸다. 전체적으로 한 톤만 써 강약을 주는 방법이다. 수영복 하면 떠오르는 모델, 제시카 고메즈의 화장법도 모범답안이다. 물에 젖은 듯한 효과를 주는 오일 타입의 보디 제품을 몸 전체에 바르고, 얼굴은 컨실러로 다크 서클 등 약점을 커버하고, 아이라인 아래위를 가늘고 또렷하게 그렸으며, 도톰한 입술에 가라앉은 핑크 립밤을 발라 생기 있는 맨얼굴처럼 보이게 한다. 실내 풀에만 있을 거라면 화장이 훨씬 연해야 한다. 피부는 잡티와 다크 서클만 컨실러로 티 나지 않게 가리고, 입술과 눈썹이 흐린 사람은 하루 종일 유지되는 틴트 타입 제품으로 살짝 물들인다. 아이라인도 생략하거나 속눈썹 선 위에 점 찍듯 바를것. 조금만 꼬리를 빼도 화장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보일 듯 말 듯 자연스러운 워터프루프 화장을 한다고 해도, 그 화장을 풀 바로 옆에서 고치면 소용이 없다. 앞서 말했듯 공중의 ‘심리적 검열’ 따위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 끊어지려고 하는 눈썹, 파래진 입술은 귀찮더라도 로커룸에 가서 원상복구하고 다시 신나게 놀 준비가 된 것처럼 뛰어나올 것. – 이선배(작가 &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