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눈이 내리던 날, 누군가는 카메라를 꺼내 들었고 누군가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날, 그들이 보고 듣고 삼켰던 사사로운 경험이 모여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면을 만들어냈다.

1994년 12월, 길음동 | 변화하는 서울을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하기 위해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길음동 한옥 마을에 들어가 산 적이 있다. 매일 창밖으로 보이던, 그러나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들. - 안세권(미디어작가)

2006년 1월,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 촬영을 하러 선유도로 가는 길이었다. 눈 때문에 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차에서 내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걷다가 멈춰 서야 했던 그 찰나. - 표기식(사진작가)

2010년 1월, 그의 아파트 옥상 |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겨 아침 일찍 카메라를 들고 꽁꽁 언 발로 찾아갔다. 그 사람의 아파트 옥상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 하시시박(사진작가)


홍대 앞에서 폭설에 고립된다면 그게 최고의 인생


책갈피에서 눈이 쏟아지는 소설들을 꽤 좋아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제일 유명하지만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도 만만찮다. 이제하의 소설을 읽은 뒤로는 나도 꼭 한 번은 폭설에 고립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소망을 이루자면, 폭설이 내린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한 채 어떤 곳에 있어야만 하는데 살아보니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이 되어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여간 부럽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는 일본 니가타에 1미터가 넘는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한참 윤대녕의 <눈의 여행자>를 읽을 무렵이었는데, 배경이 마침 니가타였다. 우연의 일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아 바로 그날 저녁, 동네 오뎅집에서 윤대녕 선배를 만났다. 소설 속에서 뛰어나온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하도 신기해서 선배에게 소리쳤다. “오늘 눈이 1미터나 왔다는데요?” 밑도 끝도 없는 말이라 윤대녕 선배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니가타에 눈이 1미터나 왔대요.” 내가 덧붙였다. 그러곤 그런 곳을 다녀와서 소설을 썼다니 너무나 부럽다고 떠들어댔다.

폭설을 경험한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윤대녕 선배와 마찬가지로 동네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김훈 선생은 겨울만 되면 홋카이도에 갔을 때의 일화를 말씀하시곤 한다. “겨우내 눈이 몇 미터씩 쌓이지.” 거기까지는 나도 ‘아마 그렇겠지요’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계속되는 말씀이란 “그래서 사람들은 땅굴처럼 눈을 파면서 술집을 찾아 다니지. 그 굴을 따라가다 보면 한쪽에 등불이 켜 있는데, 거기가 바로 술집이야. 술집으로 들어가면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사미센을 치면서 정종을 팔아.” 거기까지 들으면 좀 의아해진다. “사미센을 친다고요?” “그렇지, 사미센을.” 천연덕스럽게 선생은 말한다. 등빛을 따라 눈 동굴을 지나가면 기모노를 입고 사미센을 치면서 정종을 파는 일본 여자가 있다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지만, 어쨌거나 난 폭설에 약한 남자다. 선생의 말을 무조건 믿기로 했다. “정말 부럽습니다, 선생님. 저도 죽기 전에 그 술집에 갈 수 있을까요? 절 당장 거기로 데려가주세요.” 물론 아직까지 난 눈 동굴을 지나면 눈 때문에 밤의 바닥이 환할 그 술집에 가보지 못했다. 덕분에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은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그중에서도 폭설에 고립되는 일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식으로 말해서 긴급하고도 중요한 할 일이었다. 작년에 <7번국도 Revisited>라는 책을 출간한 뒤, 독자들과 만나는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그 책은 13년 전인 1997년에 출간한 <7번국도>라는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쓴 소설이었다. 스물여섯 살에 자전거로 7번국도를 여행한 경험을 소설로 쓴 것이었는데, 다 쓰고 나니까 스물일곱 살이 끝나 있었다.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미미해서 크게 실망한 나머지 소설 같은 건 그만 쓰자고 생각하고 스물여덟 살 부터 잡지사를 다녔다.

그 밤에 나는 “인생은 너무나 길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에요.” 그런 말도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13년 전에만 해도 나는 2010년이 되어서도 내가 소설을 계속 쓰리라는 걸, 더구나 <7번국도>를 다시 써서 출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렇게 독자들과 대화를 하리라는 걸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인생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길다. 그러고 보니 예측한 대로 삶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늘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나올 때부터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근처 맥주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다음과 같다.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이 중에서 두 개만 동그라미를 칠 수 있어도 대단한 행운인데(몇 년 전 홋카이도 오타루에 갔을 때, 나는 다섯 개에다 모두 동그라미를 칠 수 있었다) 그날은 네 개까지 가능했다. 새벽까지 눈에 두 번 동그라미를 칠 만큼 많은 눈이 내렸고 서울의 교통은 마비됐다. 결국 나는 홍대 앞에서 폭설에 고립되는 행운을 맞은 것이다. 진짜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진짜 인생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뜻하지 않은 폭설이라면 최고의 인생이리라. – 김연수(소설가)

2011년 1월, 창고 스튜디오 | 창밖으로 날리는 눈을 보며 낮부터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 초점을 흩트려 눈을 담았다. 눈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 안형준(사진작가)


첫눈


모든 기억에는 눈이 내린다. 그날 삼청동. 아득함과 서늘함의 사이로 난 골목 한 끝에 나는 있었다. 겨울 오전. 기척도 없이 혼자서 백지의 입김을 흘리며.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이따금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다 마른 낙엽의 어색함이 나뒹구는 계절. 서둘러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이 살피는 공중은 멈춰 있었고 나는 그런 공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점이 하나 있었다. 분명히, 까마득한 한 점은 움직이지 않았다. 새일지도 몰라. 나는 중얼거렸다. 시간은 정지했고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내가 서 있었는지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가까운 곳에 벤치가 하나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 더.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마치 누군가 노크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니, 정 말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을까. 혹시, 당신이던가. 당신.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기억이 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 그날의 심정처럼. 잠시 아찔해졌던 나는 쳐들었던 고개를 내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몸 속 깊숙이 들어왔다가 사라져버렸다. 혹시, 이렇게 자꾸자꾸 숨을 쉬다가 보면 이 계절의 온도와 내가 같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은데. 순간. 이마에 차갑고 흐릿하게 닿던 것. 기억이 났어. 눈이었다. 그때 내가 기다리던 것. 점점이 눈앞을 메우던 침묵의 파편. 늘 두근거리게 하는. 아니야. 나는 깜짝 놀랐고, 한동안 그 우연한 광경을 그저 넋 잃고 바라보고 있었으니, 눈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웅장한 고요의 풍경은 나와 벤치와 좀 더 떨어진 벤치 위로 천천히, 분명히 내려앉고 있었으니 나는 춥고 또 춥지 않기도 했었다. 갑자기,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눈은 내려와 제 몸을 녹였다. 세상 모든 근처에 조용히. 어쩜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기억이 나는 걸까. 일분 일초까지. 나는 젖어가는 코트 주머니 속에서 무표정한 손을 꺼내 그 눈을 받아내려고 했다. 손과는 다르게 나는 슬쩍 웃었던 것도 같아. 사실 그저 까마득한 그 시간을 견디려고 했던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당신을. 그래.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저히 올 것 같지 않은 당신을. 매번 봐도 볼 때마다 기꺼운 눈 같은 당신을. 손으로 받아낸 조용한 눈 몇 송이를 쥐고 주머니 속에 넣었지. 그럼 당신이 올 것 같았어. 당신을 위한 첫눈. 그 최초의 기억. 그렇게 눈은 점점 짙어졌지. 바람의 기척을 따라. 하지만, 바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그냥 폭설의 복판에 서서 당신의 모든 곳을 상상 하고 있었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여전히 당신은 오지 않고, 복판을 둘러싼 사방은 멈췄어. 당신도 알고 있듯, 나는 악보 위 잘못 찍힌 음표 같은 사람. 늘 서툴고 외로워서 점점 하얗게 되어가고 있었어. 손에 쥔 눈송이가 내 모든 것을 탈색시키고 있었던 거야. 아이처럼 울고 싶었어. 그게 아니라면, 그런 적막 앞에서 나 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는 지금도 모르겠어. 시간은 멈춘 게 아니라 한꺼번에 지나간 거야. 내가 순식간에 전생을 살아버린 거야. 왜 기억 위로 눈이 내리는 건지. 나는 통증의 예감을 지우려고 두 눈을 감았는데. 사박사박 당신이 오는 소리가 들려. 그렇게 듣고 싶었던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던 거야. 아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눈이 내릴 때부터. 내가 눈을 떴을까. 뜬 눈 앞에 눈처럼 가볍고 하얀 당신이 서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주머니 속 그 첫눈을, 최초의 기억을 꺼내어 당신 에게 건넸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삼청동 구석 어느 낡은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있는 나처럼. 나처럼. – 유희경(시인)

2009년 12월, 부암동 친구의 집 | 새벽까지 취해 있었고 헤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폭설을 보며 우리는 다시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 레스(사진작가)

2010년 1월, 양재천 길 |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차를 세우고 양재천을 바라보고 섰다. 한 중년이 눈 쌓인 돌다리를 조금은 위태로운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눈은 곧 멈췄다.


서울은 사람들이 눈처럼 쌓여 있지만


이윽고, 서울에 도착했다. 강남터미널에 코를 대지 않고 버스는 멈췄다. 폭설이었다. 고향인 남쪽의 소도시는 눈이 오지 않았다. 대전을 넘어가면서 세상은 흰빛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버스의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오래 쳐다보았다. 바깥은 휘몰아치는 눈뿐이었다. 나는 가끔씩 요의를 느꼈으나 참는 것 외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서울’이라 명명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나의 요의도 주춤주춤 흔들렸다. 강남터미널은 이상한 곳이다. 그곳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괴물의 입이다. 그곳은 두 팔 벌려 지방에서 온 이주민을 반겨주는 쇼핑센터이기도 하다. 그곳은 본래 태어난 곳을 향한 향수를 잠시 잠깐 달래는 이들의 비상구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날은 강남터미널에 가지 못했다. 눈은 계속해서 내렸고 내린 눈은 녹지 않았으며,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 지상의 동료들에게 제 몸을 사이좋게 포갰다. 눈이 쌓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서울에 진입한 버스는 전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승객들은 괜히 고개를 비쭉 내밀어 전방을 살피곤 했다. 보이는 것은 속도를 잃은 헤드라이트 불빛뿐인데도. 서울 아닌 곳에서 대학을 나오고 같은 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마쳤다. 틈틈이 돈을 벌었고 내 할 일을 했다. 서른이 다 되어 이제 서울에서 살겠다고 내가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눈 소식을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걱정했다. 혹은 설레어했다. 그러나 나는 서울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째,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둘째,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이 두 번째 이유로 쌓이는 눈처럼 서울에 온다. 그리고 녹지 않고 갈색으로, 검은색으로 변한다. 변두리에서 변두리로 자신을 흩날리며 어떻게든 버틴다. 서울은 도시고, 서울은 일터며, 서울은 서울이다.

버스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빠져나오고 처음 나온 사거리에서 승객들을 풀어주었다. 눈 쌓인 강남 한복판, 사람들은 오스스 몸을 떨어야 했다. 지상에 두 발이 닿자 오줌보는 크게 요동을 쳤다. 8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이었다. 휴게소는 한 번 들렀다. 11시에 도착했어야 할 도시인들이 지친 동작으로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확인할 것도 없이, 시간은 새벽 4시에 가까웠다. 곧이어 월요일은 들이닥칠 것이고 그들 모두는 각자의 일터로, 서울로, 괴물의 품으로 흘러 들어가야할 것이었다. 고향에서는 조그마한 연립의 보증금 정도는 되었던 목돈이 서울로 이동하자 반지하 정도에서 겨우 연명할 수 있는 푼돈으로 전락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습기와 싸우며 잠을 뒤척였다. 눈이오는 날이면 고양이 울음 사이로 얼음알갱이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사각, 밤늦은 시간 취객들은 눈을 함부로 밟았고, 환경미화원은 눈 쌓인 쓰레기봉투를 털며 새벽을 열었다. 큰 길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깨끗해졌다. 서울 사람들은 기필코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쌓인 눈 덕에 사방이 밝았다. 눈부신 밤, 몰래 오줌을 뱉어낼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에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승합차 뒤에서 몸을 떨었다. 어쩔 수 없었다. 거리를 헤매는 사람 모두 화장실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은커녕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게 눈은 쏟아졌고, 가련한 직립보행자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 했다. 다리 사이로 다소 뜨뜻한 김이 올라왔고, 당황한 눈들이 졸지에 녹아 없어졌다. 극히 일부였다.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극히 일부였다. 교통은 마비됐다. 나는 마비된 인간이었다. 추웠고, 갈 곳은 없었다. 택시는 묵묵히 길을 미끄러지며 손 흔드는 사람들을 지나쳐 갔다. 어렵게 찾아간 찜질방에서는 눈처럼 사람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산다. 아침이 오면 모든 것은 정상이 될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에 반쯤 파묻힌 내 방에 가서, 전기장판에 몸을 누일 것이다. 서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눈이 아니다. 그들은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 끝내 살아 견딘다. 이곳을, 서울을. 구석에 목침을 베고 누웠다. 거의 비슷한 자세로 등을 굽힌 사람들. 서울은 그들이 사는 곳이다. 눈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일어날 것이다. 서울은 그렇게, 다시 굴러가고, 쌓이고, 녹고, 살아난다. 이윽고, 해가 떴다. – 서효인(소설가)

2009년 12월, 효창공원 | 유학 떠난 여자친구를 청솔모라 불렀다. 내 사랑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그녀는 곁에 없지만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은 이름, 청솔모. - 유목연(사진작가)


스노 롤러


스노 롤러 스노 롤러를 다시 본 곳은 인터넷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온갖 애를 쓰는 포털 뉴스에서, 중국에서 잡힌 커다란 메기와 일본에서 자란다는 기형적으로 커다란 채소 사진 사이에,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운 현상’이라는 제목으로 스노 롤러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은 곧 인터넷 성형 카페에, 패션 블로그에, 지속적인 방문자수가 필요한 쇼핑몰과 성형외과와 다이어트약 광고 사이로 흘러 들어갔고, 클릭되고 나서 곧 잊히는 인터넷 기사 사이에, 연예인 A양과 B군과 배우 C와 가수 D의 가십 사이에 놓였다. 그곳의 스노 롤러 사진을 나는 클릭했다.

이상고온 올겨울은 이상고온 현상이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든다고 한다. 빨리 추워졌으면 좋겠다는 심통을 부르는 날씨의 연속이다. 수능날도 춥지 않았다. 겨울은 추운 수능 시험 날과, 코트와 목도리, 명동과 청계천의 인파, 가을의 축의금과 추석 지출 이후의 또 다른 지출들이며 연초의 또 다른 지출들이 다가오기 전에 정신없이 캐럴 울려 퍼지는 복잡한 이벤트이다. 예년보다 20일 늦게 첫 얼음이 얼었다는 11월은, 성급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스타벅스가 여전히 가을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와 또 반팔 티셔츠만 입은 몇몇 남자들 사이에서 멋쩍어 보일 뿐이다.

명동 친구들과 명동에 갔다. 북적이는 인파 사이에 데리고 나와서 미안하다고 친구들은 말했으나, 나는 재미있었다. 우리는 명동의 간판을 올려다보며 걸었고, 친구는 한국 아이돌이 명동 간판에 총출동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아이돌 사진이 걸린 쇼핑몰을 보며 한국은 정말 잘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건물과 물건이 다 주인이 있다니.

겨울이 깊어가고 결국 법률이 통과되자 많은 소문이 떠돈다. 누구는 강행이고 누구는 기습이고 누구는 날치기라고 한다. 대선과 총선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 한다. 지지율을 비교해 누구는 1위로 올라가고 누구는 2위로 떨어졌고 어떤 당은 지지율이 상승했고 어느 당은 하락했다고 한다. 그러면 여론조사는 누가 했느냐고 되묻는다. 전화로 할 때와 핸드폰으로 할 때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는 서울에 5천 명이 모였다고 하고 누구는 5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머릿수를 누가 세길래 숫자가 다른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적어도 머릿수를 세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세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노 롤러 2 어렸을 때 본 책에서 스노 롤러는 북미지역에서만 관측되는 희귀한 자연현상이라고 나와 있었다. 왜 우리 동네 뒷산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일까, 그때의 나는 궁금했다. 그 후로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만난 스노 롤러는 더 자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희귀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는 동유럽에서 찍은 스노 롤러 사진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목격된 적은 없는 것 같다. 누구도 그것이 희귀한 현상임을 몰랐거나. 올해 첫눈이 내렸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고 하듯이.

심보선 ‘첫 줄’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 그것이 써진다면 /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 심보선 ‘첫 줄’ /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 지성, 2011.

첫눈 아무도 목격하지 못한 첫눈이 내리고 이후로 춥지 않은 날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이 서울 어딘가에 모였다. 그곳에 나가지 않았다. 일찌감치 분노하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단지 인터넷으로 스노 롤러의 사진을 찾아보고 있다. 법률과 지지율과 집회 이야기로 가득한 인터넷 뉴스 사이에 숨어 있는 그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다.

스노 롤러 3 첫눈이 내리더라도 한국에서 스노 롤러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보다는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꼭 정치적인 기도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때문에 기회가되면 스노 롤러를 직접 보고 싶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스노 롤러는 이럴 때 생긴다고 한다. “땅은 얼음으로 덮여야 하고 눈이 땅 위에 붙지 않아야 한다. 얼음막은 얼음이 녹을 정도의 온도여야 하고 젖어 있는 눈으로 덮여 있어야 한다. 바람은 스노 롤러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하지만 너무 빠르게 불어버릴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스노 롤러는 이렇게 생겼다. 잘못 갠 이불, 돌돌 말려 팔리는 카펫, 유명한 롤케이크, 너무 크기 때문에 돌돌 말아서 팔 수밖에 없는 전지, 역시 돌돌 말아서 파는 벽지, 말아서 피우는 담배, 캔디 케인, 나이테를 보이며 쓰러진 나무. 그런데 스노 롤러는 얼어붙은 눈으로 되어 있다. – 김이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