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은수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는 남자 친구의 말을 흩어버린다. 연애에 대한 우화인 <봄날은 간다>와 <500일의 썸머>의 두 주인공은 ‘나쁜 여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게 되었다.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 빈번히 마주치는 연애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또는 조언.

는 톰이 음악 취향이 비슷한 썸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500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것은 당신들을 위한 동화일 뿐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이런 말은 안 하고 살려고 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이제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처럼 배신감으로 ‘쩔’게 할 줄은 몰랐다. 상우는 쿨하지 못하게 집착했고 톰은 찌질한 폐인이 되었다. 당신은 이들을 동정과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눈은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선 선수처럼 반짝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도 순간 좀비가 되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오르고, 그 기운이 다운되면 다시는 그녀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발을 동동 구른다. 나 또한 말하기 민망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이불 속에 처박혀 미드만 보다 24절기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다 증오가 가장 쉬운 이별법이란 것을 깨닫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제 서글퍼지는 것은 이런 문제다. 연애의 끝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될 때.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말하기까지 머뭇거리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 때. 내 손에 어떻게든 피를 묻히지 않는 스무드 크리미널을 바랄 때.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긴장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남자에게 상처가 될지는 모르지만, 현실성이란 코드로 여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여자들을 위한 사랑 동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두 영화에는 이별하는 법을 깨우친 보통 남자가 등장하지 않으니까.

많은 여자가 ‘귀엽다’고 표현하는 상우(유지태)나 톰(조셉 고든 레빗)은 일반적인 남자의 덕목에서 볼 때 6시 15분 전이다. 이른바 연애 시장에서 놓고 보면 틈새 시장 매물이다. 파이가 작은 시장에 진입한 데다 남성성에 반하는 매력으로 어필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연애의 환상에 약하다. 이를테면 은수가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물어올 때, 썸머가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좋아했어요?” 하고 물어보는 순간 이 두 남자의 머릿속에선 달콤한 허니팝콘이 터진다. 그리고 그녀가 평생을 기다려온 운명이라 생각한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기회가 적었으니). 쉽게 생각하면 된다. 톰이 썸머(주이 다샤넬)에게 빠져버린 건 예쁘기도 한 여자가, 요즘 아무도 안 듣는 스미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즉 탤런트 이시영이 건담 마니아들의 환상을 현현한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 같은 남자애들이나 좋아할 것을 그것도 예쁜 여자가 알아준다니, 그 남자는 사랑이란 태풍 속에서 닻을 올려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와 현실에는 간극이 있다. 건담을 사랑하는 성인 남자들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멋진 남자의 덕목에 수렴되지 않는다.

썸머의 독특한 매력만큼이나 그녀의 연애관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실상 사랑이란 단어를 재해석하고 연애의 관습적 관계를 거부하는 썸머의 행동을 멋있다고 해줄 남자는 문학청년이거나 잘못을 비는 술자리에 나간 남자일 뿐이다. 세상이 아무리 만화경 같을지라도 보편적 진리는 작동한다. 좋아하면 궁금해지고, 궁금해지면 보고 싶고, 보고 싶으면 같이 있고 싶은 거다. 아주 단순한 원리다. 결국 은수가 떠난 것은 마음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쿨 한 척하며 자유분방한 아티스트나 해체주의 철학자처럼 구는 것은 실상 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해도 눈으로 ‘난 널 그만큼은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말이 먹히기란 남자들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외치며 매달릴 때 통할 확률과 거의 같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직업은 의미 심장하다. 건축설계사와 감사카드 카피라이터와의 간극, 그리고 프리랜서 음향기사와 PD의 계급 차는 ‘현실’의 상징이다. 흥미롭게도 썸머가 짧은 연애 뒤 결혼한 톰의 대칭점에 설 남편은 정작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고, 남편의 직업도 언급되지 않는다. 남편이 교회 오빠인지, 어릴 적 옆집에 살며 함께 놀던 소꿉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안에 수월하게 결혼한 것치고 존재감이 없다. 그 덕분에 우리는 썸머를 비난할 여지가 적어졌다. 아무런 동요 없이 감정이입을 하며 톰에 대한 연민도 세피아 톤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얼핏 보면 나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썸머를 보며 고해성사를 하듯, 이것이 진짜 연애의 모습이라며 공감한다. 반면에 남자들은 대부분 톰이 그랬던 것처럼 가혹한 성장기를 겪으며 헤어지는 법을 배우고 또 다른 연애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따라서 순정으로 똘똘 뭉친 톰의 연애에 크게 공감하지 않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참, 그런데 간과하고 넘어간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설정은 여주인공이 누가 봐도 차밍하니 예쁘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좀 더 치열해야 할지도 모른다. – 김교석 칼럼니스트




톰의 친구로부터


톰이 썸머를 처음 만난 그 순간, 난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궁극의 업(Up)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며 꼬였다. 톰은 썸머에게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행복의 청사진을 무수히 양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진에는 균열이 있었다. “썸머는 심각한 관계를 싫어해. 그녀는 그게 결국에는 모든 사람을 파멸로 이끌 거라고 믿고 있더라.” 어느 날 톰은 아주 아주 아주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그 둘의 관계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톰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심각한 관계’도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썸머에게 증명하려고 혼자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난 톰에게 썸머를 대놓고 설득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톰의 고민을 알면 그녀는 둘의 관계를 ‘심각한 것’으로 규정짓고 진심으로 심각해 질테니까. 그래서 톰은 겉으로는 무심하고 시크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둘의 관계를 어떻게든 진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나는 진심으로 썸머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심각한 연애와 심각하지 않은 연애의 차이가 뭔가?

결국 톰은 썸머에게 차였다. 톰이 지겨워져서 썸머가 떠난 것일 수도, 아니면 톰의 발버둥을 썸머가 눈치 챘을 수도, 그것도 아니면 썸머에게 톰보다 믿음직한 다른 남자가 생겨서일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톰을 위로하기 위해 모였다. 한 친구가 “썸머는 톰은 가지고 논 거야.”라고 씩씩댔고, 또 다른 친구는 썸머가 톰의 간만 보다 떠났다며 절규했다. 우리는 다 함께 썸머 규탄대회를 열었지만, 남녀 사이의 일은 당사자 이외에는 모른다는 진실 또한 알고 있었다. 헤어짐에는 아무 이유 따위 필요 없다. 깨진 유리컵은 날카로운 파편만을 남길 뿐이고, 누가 어쩌다가 그 컵을 깼는지는 컵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겼다. 어느 늦은 밤, 술에 잔뜩 취한 톰이 내게 썸머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톰이 뻗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술집으로 향하면서 내 머리는 멍해졌다. 단지 내 친구를 차버렸기 때문에 분개하는 것만은 아니다. 톰과의 관계에서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로 건너가며 순식간에 바뀌는 그녀의 잣대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각한 관계와 파멸 운운하는 썸머의 신념이 언젠가는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면, 썸머는 톰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리고 썸머의 그 말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톰에게 자신의 결혼 사실을 알린다니.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썸머와 결혼한다는 그 자식이 누구건 간에, 나는 언젠가는 그 녀석도 제2의 톰이 될 거라고 톰을 위로했다. 그리고 결국 불행해지는 사람은 썸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친구에게서, 내 친구의 친구에게서, 난 수많은 썸머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녀들은 절대로 만족을 모르고, 남자에게 상처와 상실감과 절망감을 준다. 그런데 참신기한 것이 있다. 썸머 같은 여자를 만나고 독하게 아파본 남자들이 썸머 같은 남자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나쁜 남자’라고 부르는 것 같더라. 톰은 지금 새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어텀이다. 난 예전보다 톰이 덜 걱정된다. – 이재석 칼럼니스트




정말 어려운 여자


라면 먹자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여자. 뜬금없이 회사 복사실에서 키스를 해대는 여자. 상대방이 매력적이라면, 혹은 그전부터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이 순간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남자들은 그것이 꿈에 그려온 희망 사항이자 임재범의 “오랫동안 기다려왔어”라는 가사를 중얼거리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행여 밤에 라면 먹는걸 싫어하더라도.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육체의 일부가 남자를 스쳐 가는 순간, – 실제로는 남자들의 정신이 그녀에게 지배당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그녀의 정신마저 소유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머지않아 결혼도 생각할 수 있는 애인’이나 ‘공식적인 남자 친구’도 아닌 ‘그저 친하게 지내는 상대’라고 상대방 남자를 정의하는 순간 남자들은 큰 충격과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아마도 열에 아홉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애인’이 되는 순간이 일종의 구속이나 거추장스러운 관계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친하게 지내는 남자와 손 잡고 뽀뽀를 할 수는 있어도 그 남자의 여자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혹은 같이 잠자리를 할 수는 있지만, 애인이 되기엔 뭔가 모자라는 그런 불완전한 상태의 감정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한가지 더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이런 행동은 일종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독신주의자처럼 어느 정도의 신념을 갖고 결혼을 하지 않는 행동과는 좀 다르다.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에 가까운 것일 뿐인데, 그냥 여러 종류의 남자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여자들의 경우 남자들이 크게 상심한다고 해서 쉽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거나, 큰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저 상대방과 나의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쿨하게 생각하고 자신에게 집착하려는 남자들에게 이별을 통보할 뿐.

할 건 다 하면서도 연애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도덕성의 타락을 얘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이런 여자들은 흔히 말하는 ‘쉬운 여자’가 아니라 ‘정말 어려운 여자’다. 혹은 비슷한 성향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진정 필요한 친구의 유형일지도 모른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바람을 피우려는 유부남은 물론 논외다.) 만약 당신이 싱글인데 가끔 만나서 속 깊은 대화도 하고, 그냥 말로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아니라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손을 잡아줄 이성 친구들이 있다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조차 대부분 그 순간에 직면하면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모두 가지려고 한다는 데 있다. 자신과 좁은 공간에서 밀어를 나눈 상대와는 무조건 애인 이상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세상이 두 쪽 나도 바꿀 수 없는 지론을 갖고 있거나, 여자한테 한번 빠졌을 때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종류의 사랑을 하는 남자들이라면 이런 여자들을 만났을 때 사랑의 감정을 빨리 접고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말하자면 <500일의 썸머>에서 톰이 길거리를 힘차게 걸어가며 갖는 그 판타지 같은 사랑의 순간을 최대한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냉정한 충고와 적극적인 만류가 필요하다.

반전은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남자를 대하다가도 언젠가는 결혼을 한다. 그러니까 이 유형의 여자들과 꼭 결혼을 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변하는 불완전한 감정을 지닌 그녀들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무언가를 결심하는 그 시간, 그 타이밍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의외로 그 순간은 짧을 수도 있고, 혹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의 남자 친구가 되거나 남편이 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라면, 그 상태를 그냥 즐기고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어쨌든 상대방이 “넌 나의 남자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똑같이 편한 마음을 갖고 다른 짝을 찾아보면서 그녀와의 친분 혹은 관계를 유지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면 그냥 쿨하게 거리를 두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거나.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미 썸머의 애인이 되기엔 부적절한 사람이다. – 김영혁 칼럼니스트




남자만 모른다


<피플>지는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장백지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 10인 중 하나라고생각할 무렵, 남자 친구와 함께 장백지가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나온 영화 <십이야>를 봤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제목과 영감을 얻었을 이 영화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사랑이 시작되고, 중독되다시피 하다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그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을 12개의 에피소드로 표현한다.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 안의 남자들은 거칠게 콧바람과 입바람으로 영화를 본 소감을 대신하고 있었고, 그는 딱 한마디만 했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생각보다 이런 장면은 자주 되풀이된다. ‘사랑의 폐부’라거나 ‘섬세한 감정의 흐름’ 따위의 말들이 영화리뷰를 드나든다면 남자 친구와 영화를 보는 건 자제해야 할지도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십이야>, <봄날은 간다>, 그리고 <500일의 썸머>와 같은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사흘 밤낮을 샐 수도 있는 ‘연애 영화’다. 신기한 건, 남자들이 이들을 ‘나쁜 여자’로 말끔히 정리하는 동안 여자들은 왜 그녀가 떠났는지 그냥 안다는 것이다.

톰과 썸머, 은수와 상우는 처음부터 대등할 수 없었다. 썸머는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고, 은수는 이혼했다. 여기서 이혼은 가장 아픈 이별과 실패한 연애의 상징이다. 사랑도, 관계도 지긋지긋할 법하다. 반면, 톰과 상우는 절대적인 순수함으로 사랑을 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봤을 거다. 그러나 문제는 사랑의 시차, 흔히 말하는 ‘타이밍’이 너무 다른 것에서 오는 이질감이다. 남자 주인공들이 봄과 여름을 향유하는 계절에 그녀는 가을이나 겨울쯤에 머물러 있다. 그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반하지 않았다는 심플한 지적은 옳지만, 모든 연인들이 한 눈에 반해 연애를 시작하진 않는다. 세상에는 어느 정도 호감을 바탕으로 한 반복 학습으로 애정 전선이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산다는 건, 너무 흔해서 드라마 대사로도 별로 가치가 없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을 반복하며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이며 진정 부러운 사람일 테지만 또 많은 사람이 상처 받은 사실을 잊지 못한다. 단지 애써 지나간 일을 복기하지 않으려고 할 뿐인데, 신기한 건 가장 잊고 싶은 기억들은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 새록새록 솟아난다. 때문에 가끔 남자들은 여자 친구와 잘되기 위해 그녀의 8명의 전 남자 친구와 싸워야 한다. 영화 <스콧 필그림>처럼 영문도 이유도 모르는 채 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별로 심한 말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여자가 눈물을 흘리거나, 갑자기 냉담해졌다면 사실 그건 남자가 대단히 잘못했던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을 소환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당하는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실패했었고, 다시금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부정한 생각은 연애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관계를 위축시킨다. 이 단계에서 한참 서성이는 여자를 두고 남자들은 ‘밀당’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보다 더 낫고 좋은 남자들은 안타까워한다. 자신은 그런 남자가 아닐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날 믿고 따라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 여자가 믿지 못하는 것은 사실 남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일 때가 많다.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의심하는 여자들에게는, 차라리 “망쳐도 괜찮다”는 말이 더 위로가 될 것이다.

맞다. 이런 여자는 너무나 생각이 많은 여자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스스로를 잃을까봐 겁나는 여자다.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 될 수 없는 모습, 일어난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차라리 혼자가 낫겠다며 포기하곤 한다. 남자의 순수한 열정이 부러우면서도 버겁다. 적당한 냉소와 연애의 지혜를 가진 성숙한 사람, 사랑이란 뒤틀리기도 하고 부숴지기도 하고, 부숴뜨렸다 대강 붙여놓고 살기도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차라리 편하기라도 한 것이다. 은수와 썸머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 자신의 외로움을 위해 남자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이 사랑을 했고, 또 그 남자들의 애정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고 생각한다. 썸머가 홀로 추억의 장소를 찾고, 그곳에서 우연히 톰을만나 잠시 잡았다 놓은 손이 그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온도의 차를, 시차를 좁힐 수는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썸머는 영화 <졸업>을 보며 울었다. 자신의 사랑과 영화 속의 사랑을 비교하며 현실의 간극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운 좋게 고민도 갈등도 없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은수는 그러지 못했고, 다시 사랑할 준비를 하며 작은 화분 하나를 내밀며 상우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이제 상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영화가 비극이 된 건, 등장인물의 시계가 제각기 다른 시각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그린 청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랑이 지난 상처를 치유해주는 동화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한 사랑보다 성숙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챙길 것은 챙기는 차가운 사랑이 겁 많은 여자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 속에서 해피엔딩을 만들 확률이 높다. 영화 <클로저>에서 안나가 결국 선택한 것은 댄이 아니라, 원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선 몇 가지쯤 감수해야 된다는 건 알고 있었던 래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