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 때 먹어야 맛있고, 비 오는 날이면 더 좋고, 여럿이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듣는 음식이 있다. 서양에는 없고 동양에만 있는 음식, 전골요리다. 다섯 나라가 각자의 개성을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전골요리에 대하여.



비가 오거나, 추운 날이면 몸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음식을 원한다. 국물요리가 유난히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뜨끈한 국물요리를 먹는 건 일도 아니지만, 맑은 육수에 노란 배춧속과 청경채, 버섯, 쇠고기 따위를 익혀소스를 찍어 먹는 토렴의 담백함은 언제나 환영이다. 푹 우러난 국물에국수나 죽까지 만들어 먹으면서슬 퍼런 동장군도 무섭지 않으니까.

‘샤브샤브’를 순 우리말로 ‘토렴’이라고 한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잔치국수를 만들며, ‘국수 사리를 꼭 토렴해서 낸다’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바로그 토렴은, 국수나 재료 따위에 따뜻한 국물을 여러 번 부어 데우고 익힌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토렴의 기원에 대해서는 모든 음식의 역사가 그렇듯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시대에 전쟁하다가 철모를 냄비 삼아 물을 끓여 고기를 익혀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세계 정복을 꿈꾸던 칭기즈칸 시대 때 몽고에서 전투를 벌이며 만들어 먹었다는 설은 좀 더 폭 넓게 알려져 있다. 어찌되었건 토렴이 일종의 전투식량이자 인스턴트 음식으로 시작되었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주의 진상품 중 하나가 바로 꿩이었는데, 제주에서는 일찍부터 된장소스를 곁들인 ‘꿩토렴’을 즐겨 먹었다. 지금도 꿩토렴은 가장 인기 있는 꿩요리다. 그러나 토렴은 제주외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는데, 양반이 보기에 직접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 토렴은 체통 없는 음식, 상놈이나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여인의 손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가 요리를 생각하면, 같은 전골요리라고 해도 신선로나 어복쟁반에 비해 샤브샤브는 얼마나 간단한 음식인가!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일본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토렴’은 일약 물 건너온 최신 음식 트렌드로 각광받게 된다. 김홍도, 신윤복 등이 그린 풍속화를 통해 우리 음식 문화 역사를 살펴보는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에서는 갓을 쓴 선비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토렴을 먹는 그림이 나온다. 19세기 말 토렴은 일본과 교역이 잦았던 부산 등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았다. 식재료가 귀했던 당시로선 꽤 사치스러운 음식이어서 관청에서 자제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손님에게 요리를 시키는 식당


일본의 샤브샤브는 국물 없이 맛간장을 부어가며 익혀 먹는 스키야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숯불구이와 함께 일본에서 고기를 먹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다. 일본식 샤브샤브는 가다랑어포로 국물을 내고, 역시 가다랑어포를 이용해 만든 폰즈소스를 찍어 담백하고 상큼하게 먹는 게 특징이다. 일본은 지방질이 풍부해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정도의 기름진 고기를 유독 좋아해서, 일본에서 샤브샤브를 먹고 나면 국물이 꽤 풍부하고 진해진다. 이 남은 육수에는 우동면을 넣어 익혀 먹는다. 일본 전역에서 샤브샤브집은 꽤 흔해서, 우연찮게 발걸음 한 외국인을 낯설게 하기도 한다. 전설적 코미디 배우 빌 머레이의 복귀작이자 소피아 코폴라를 재능 있는 감독으로 자리 잡게 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에서 밥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럿(스칼렛 요한슨)은 일본어 투성이인 도쿄 거리의 한 음식점에 들어선다. 전날 있었던 일 때문에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역시 일본어로 된 메뉴를 보며 대충 손가락으로 찍어 주문을한 그들 앞에 전골냄비, 생쇠고기, 야채를 턱턱 내려놓은 종업원이 사라질 때 두 사람의 황당한 얼굴은 관객들을 폭소하게 했다. 밥은 말한다.“최악의 식당이었어. 손님에게 요리를 시키다니.”




중독성으로는 으뜸, 훠궈


그렇다면 토렴의 원조 격으로 추앙받는 중국의 모습은 어떨까? 중국에서는 ‘훠궈’라고 부르는 이 중국식 토렴이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를 끌고 있다. 터줏대감 격인 중경 신선로, 불이아, 마오 외에 샤오훼이양이 들어서고, 화교가 운영하는 곳들도 속속 문을 열고 있는 것. 훠궈의 가장 큰 특징은 ‘마라탕’이라고 부르는 매운 육수다. 각종 중국 향신료를 넣어 속이 얼얼하고 혀가 저릿할 정도로 매운 국물에 각종 야채를 데쳐 먹는데, 큰 냄비를 반 갈라 마라탕과 맑은 육수 두 가지를 내는 것은 ‘원앙탕’, ‘태극탕’이라고 부른다. 훠궈 초보자라면 이 태극탕이 먹기 훨씬 편하다. 유목민의 후예답게 훠궈의 경우에는 양고기가 기본이다. 그래서 양꼬치와 훠궈를 함께 파는 집이 많다. “토렴이나 샤브샤브는 야채부터 익혀 먹지 않습니까? 훠궈는 고기부터 먹는 것이 다릅니다. 처음에는양고기를 꺼리는 분들이 꽤 있지만, 드시다 보면 양고기만 찾게 되지요.” 훠궈는 다시 사천식과 몽골식으로 나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홍대와 삼성동 두 곳에 지점이 있고, 홍콩 코즈웨이베이를 비롯해 전 세계에 지점을 가진 샤오훼이양이 정통 몽골식 훠궈를 선보이는 곳이다. 이 중국식 마라탕은 처음 먹을 땐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맵고 독하지만 신기하게도 중독성이 대단해서, 언젠가부터 중국에 출장을 가면 어김없이 훠궈를 찾게 되었다.

홍콩, 베이징, 상하이 등 본고장에서 훠궈를 먹을 때면 기상천외한 재료에 깜짝 놀란다. 심장줄기, 허파꽈리를 비롯한 온갖 내장은 물론 소골, 살아 있는 자라까지 진열되어 있다. 홍콩의 유골기라는 훠궈 식당은 육수가 쇠뼈를 툭툭 잘라 넣은 곰탕이었다. 훠궈는 중국에서 보양식이다. 온갖 약재를 이용해 우려낸 육수에 진귀한 재료를 넣어 먹는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메뉴에 ‘생선 머리’가 있다면 믿고 넣어보길. 생선 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국물이 더 깊고 풍부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재료를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구멍이 숭숭 나 있어 육수를 듬뿍 품은 얼린 두부, 쫀득하고 쫄깃한 맛을 자랑하는 두부피, 넓은 당면, 시금치(훠궈는 배추보다는 시금치다)는 훠궈에 빠지지 않는 재료다. 워낙 재료가 다양한 까닭에 훠궈는 특히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먹어야 잘 먹었다 소릴 듣는다. 홍콩 영화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에서도 이 훠궈를 끓이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한다. 조직의 중간 보스 역을 맡은 한침(증지위)이 다른 조직의 보스들과 어울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는 장면. 쉴 새 없이 젓가락을 놀리며 야채며, 고기를 건져 먹는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가족적이지만, 그 안의 긴장감은 팽팽하다.

이 훠궈를 먹을 때는 소스가 중요하다. 보통은 땅콩을 갈아서 만든 마장과 간장을 기본으로 한 간장소스를 내놓는데, 상하이나 베이징의 훠궈 전문점에서는 소스를 위한 수레가 있어서 직접 소스를 제조할 수 있다. 맛있는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릇에 간장을 적당량 붓는다. 다진 마늘과 다진 고추를 한 티스푼씩 넣고, 참기름 약간, 설탕 약간, 식초를 넣고 취향에 따라 고수 다진 것을 넣어 잘 섞으면 완성. 마장을 기본으로 소스를 제조할 땐 고추기름 약간과 다진 파를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 이 소스는 집에서 토렴을 만들 때도 유용하다. 참, 중국의 훠궈 집은 영어 메뉴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훠궈를 좋아하는 손님들은 저희 집 주문서를 몇 장씩 뜯어 갑니다. 한글과 한자가 함께 적혀 있어서 주문할때 이용한다고 합니다.” 샤오훼이양 이채호 이사의 말이다.




더운 나라도 사랑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토렴이 동북아 음식이 아닐까 싶겠지만, 천만에! 사계절 뜨거운 태국에는 수키가, 싱가포르에는 스팀보트가 있다. 태국의 수키는 태국 패키지 여행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음식인데, 고수와 레몬그라스 등을 비롯한 태국 특유의 향신료에 도통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키는 잘 먹기 때문이다. 해산물만큼은 놀랄 만큼 싼 태국에서는 왕새우와 가리비 등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뽀드득한 피시볼, 해파리, 부드럽고 쫄깃한 초고버섯 등이 태국 수키 맛의 일등공신이다. 원래 태국에는 수키를 먹은 후에 죽을 먹는 문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토렴 문화에 길든 스튜어디스들이 항상 찹쌀밥을 주문해 죽을 만들어 먹는 걸 보고 또 하나의 문화가 생겨났다나. 수키는 닭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마늘과 레몬, 매운 고추를 넣은 칠리소스에 찍어 먹는데 고수도 약간 들어간다. 싫어한다면 미리 빼달라고 하는 편이 좋다. MK수키, 코카수키는 태국에서 여러 지점을 거느린 유명한 수키 식당이다.

싱가포르의 스팀보트는 수키와 비슷하다. 토렴은 다시마, 샤브샤브는가다랑어포, 훠궈는 한약재를 넣은 진한 닭고기 육수와 사골, 수키는 맑은 닭고기 육수를 쓰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식 곰탕인 ‘바쿠테 수프’를 쓴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매운 소스인 ‘삼발소스’를 넣으면 꽤 매콤해져서 김치찌개 비슷한 맛이 난다. 원래 싱가포르 음식이라는 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음식의 혼합이다. 이 스팀보트를 깔끔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도 있지만, 싱가포르의 명물 노천 푸드 코트인 호커 센터에서 먹는 맛이 왠지 더 좋다. 전기를 쓸 수 없어 선사 시대 유적 토기처럼 생긴 질그릇을 작은 숯불 화로에 올리는데, 꽤 운치가 있을 뿐 아니라 숯불의 열에 재료가 뭉근하게 잘 익는다.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옆 호커 센터는 정부가 인증한 여러 음식 대회에서 수상한 호커 센터들만 모아놓은 곳이라 어느 집에 가도 다 맛있지만 스팀보트집의 바쿠테 수프맛이 일품이다. 싱가포르에 머문 네 밤 동안 매일 이곳에서 스팀보트를야식 삼아 먹고 나서야 잠이 들곤 했다.

전쟁 통에서 말 달리며 먹곤 했던 음식은 널리 널리 퍼져나가 이렇듯 고유의 맛과 색을 가지게 되었다. 눈치 챘겠지만, 나는 모든 토렴음식의 마니아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흰 김이 솟아오르고, 촉촉하게 풀 죽은 야채와 보드랍게 익은 고기를 연신 입으로 가져갈 때면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게다가 이 토렴만큼은 결코 혼자서는 먹을 수 없고, 혼자서 먹어서도 안 된다. 같은 냄비를 사이에 두고 먹으니 낯선 사이엔 어울리지 않고, 친하고 정들어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토렴은 겨울을 위한 음식이다. 기나긴 겨울밤이 춥고 외롭다면, 냄비부터 끓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