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일기 쓰기에 도전해볼까?
어쩔 수 없는 숙제였던 일기가 새로운 웰니스 습관이 되고 있다.

배우와 아이돌을 인터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일기’다. 숨가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일기를 쓴다는 것. 올해 만난 배우 정채연은 “ 떠오르는 게 있을 때, 뭔가 정리하고 싶을 때 일기를 써요. 무조건 아침에, 커피 마시면서”라고 말했고, 배우 노정의는 “중학생 때부터 매일 쓰고 있어요. 한 10~15줄을 쓰는데, 반은 오늘 한 일, 반은 느낀 감정을 적어놔요.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신 일기에 털어놓는 거죠. 힘들었거나 즐거웠다고 적어놓은 게 나중에는 그냥 추억이더라고요”라고 고백했다. 매일 감사한 점 3가지를 일기에 적는다는 채원빈까지, 젠지를 대표하는 이들은 왜 여전히 종이 위에 펜을 꾹꾹 눌러 자신의 내면을 기록하는 걸까? 반면, 나에게 일기란 어린 시절 어쩔 수 없는 숙제였을 뿐. 방학이 시작될 때 며칠 적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개학을 앞두고 황급히 30일 치를 지어내야 했던, 그런 숙제 말이다. 이후 10대 시절 다이어리를 쓰고 나름의 ‘다꾸’를 하긴 했지만, 내 감정이나 생각을 적는 ‘일기’라기보다는 지금의 캘린더 앱과 비슷한 역할에 가까웠다. 그러나 연애, 이직, 오늘 저녁 메뉴까지 챗GPT에게 물어본다는 요즘, 역설적으로 일기를 쓰는 사람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종이에 쓰는 일기가 늘어나는 현상은 ‘정크 저널링(Junk Journaling)’ 트렌드와 연결된다. 정크 저널링은 AI 시대의 젠지가 오히려 아날로그에 몰입하는 현상의 일부다. ‘다꾸’를 하거나, 만년필을 이용한 손 글씨, 스크랩 등의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종이에 일기를 쓰면서 오늘 본 공연 티켓을 붙여두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동시에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또는 일기 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지털 채널에서 일기를 쓰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런 기록형 SNS는 사진을 첨부해 자신의 일상과 취향을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보여줄 수 있다. 모두에게 공개되는 일기인 셈인데, 대신 이를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세상에서도 은밀한 일기 쓰기를 이어갈 수 있다. 스마트폰 일기 앱이 대표적이다. 요즘 일기 앱은 좀 더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사진 첨부는 기본, 귀여운 기분 스티커나 날씨 스티커 등을 활용해 디지털 환경에서도 ‘다꾸’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미래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타입캡슐’ 기능을 제공하거나, ‘데일리오’처럼 매일 달라지는 기분을 기록하는 ‘무드 트래커’ 기능에 중점을 두는 서비스도 있다. ‘러닝 일기’나 ‘식단 일기’ 등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매일의 루틴을 점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기능을 한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는 일기 쓰기는 현대인에게 마음 챙김 행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일기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감정을 기록하는 과정은, 곧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쓰기 행위 자체에서 오는 ‘해소’와 ‘정화’의 심리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이 면역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의학 저널에 종종 발표된다. 하비와 패럴(Harvey & Farrell)이 200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일기 쓰기는 우울증과 불안 증상, 불면증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정신의학과 전문의와 심리학자는 종종 환자에게 일기 쓰기를 권한다.
<사이콜로지 투데이> 같은 전문지도 일기 쓰기의 효용성를 다룬다. 그렇다면 마음 챙김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일기를 써야 할까? 종이에 쓰든, 앱에 기록하든, 블로그에 남기든 기록 방식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다만 일기를 쓰는 시간을 일정하게 정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계획하든, 자기 전에 하루를 정리하면서 쓰든 되도록 일정한 루틴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 시간만큼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일기는 다른 사람의 취미라고만 여겨왔지만, 수많은 추억이 그저 내 머릿속이나 스마트폰 사진첩에만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깝고 아쉽게 느껴진다. 인간의 기억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니까. 당장 2025년에도 나를 울고 웃게 한 순간이 많았는데, 10년 후 나는 이 중 얼마나 기억하게 될까? 문득 일기를 꾸준히 써온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새해에는 조금씩 기록을 시작해볼까. 앱스토어를 이리저리 구경하다 일기 앱을 깔고 가입한 뒤, 첫 줄을 적었다. 오늘 하루 맑음.
- 아트 디자이너
- 이청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