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면? 제철 웰니스 프로그램 3가지를 추천해요
‘제철’을 온 몸으로 즐기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이 계절의 웰니스 프로그램 3.

쉼과 움직임의 균형, ‘사운즈 워킹’의 힘
지금, 여기, 이 계절을 느끼는 가장 생생한 방법, 소리를 음미하며 부산을 걸었다.
몇 달 전 구입한 붓다 머신(Buddha Machine)은 요즘 내 잠자리 필수템이다.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렉트로닉 뮤직 밴드 FM3이 개발한 이 기계에는 FM3이 만든 앰비언트 루프 사운드 9개가 담겼다. 이 사운드는 잡생각으로 잠 못 드는 밤, 주문을 외우듯 나를 꿈속으로 이끈다. 불면을 극복하려고 향을 피우고, 촉감 좋은 안대도 써보고, 베개도 바꾸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불면 속에서 나를 재운 건 다름 아닌 ‘소리’였다. 소리의 힘을 경험한 뒤 틈틈이 내 몸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소리를 찾아 유튜브 채널을 뒤졌다. ‘사운즈 워킹(Sound Walking)’ 역시 소리와 관련한 명상 프로그램을 찾던 중 알게 됐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리를 통해 환경과 풍경을 느끼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의 한 방법인 사운즈 워킹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었고, 바다와 숲의 소리를 두루 들을 수 있는 부산의 프로그램을 택했다.
첫 사운즈 워킹은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막 사그라든 6시 20분 이기대공원에서 시작됐다. 이기대공원 동생말전망대에서 출발해 오륙도 해맞이공원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광활한 부산 앞바다, 광안대교 너머 도시의 소음, 어업 중인 배의 소리, 울창한 숲의 풍경을 두루 갖췄다. 오롯이 소리에 집중해 풍경을 느끼기 전, 임성택 가이드는 필요한 준비물을 체크했다. 사운즈 워킹에 필요한 건 지향성 마이크와 헤드셋뿐이다. “헤드셋은 나이와 환경, 성별과 생활 습관 등 개인의 환경에 따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귀에 장착된 필터를 잠시 꺼주는 역할을 해요. 필터에 따라 더 예민하게 포착하거나 무던하게 넘어가는 소리가 존재해서죠. 가르치는 방향의 소리를 잡아내는 지향성 마이크는 사운즈 워킹 내내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어줄 거예요”.
사운즈 워킹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소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빗소리, 물소리 등 지구의 작용으로 만들어내는 지오포니(Geophony), 동물의 울음소리, 곤충의 움직임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등 생물의 소리를 바이오포니(Biophony), 자동차 엔진음, 사람의 발소리 등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앤스로포니(Anthrophony)라고 한다. 오늘은 바이오포니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지오포니와 바이오포니를 채집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 그는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는다. “도시에서 오신 분들은 천천히 걸으라고 해도 걸음에 속도를 내세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소리를 찾아 듣는다는 생각으로 걸어보세요. 저는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는 마음으로 지향성 마이크를 하늘, 바다, 산, 땅을 향해 요리조리 뻗어보았다. 이기대의 바이오포니는 시기에 따라 다채롭다. 봄에는 텃새의 새소리가 압도적이고, 여름에는 애매미, 쓰름매미가 기세 좋게 쩌렁쩌렁 울어댄다. 바람이 거세지는 가을과 겨울에는 우렁찬 파도 소리와 뱁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 등 철새들이 소리를 더한다. 더운 열기는 여전했지만 처서가 지난 8월 말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소리로 어느 때보다 풍성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미 울음소리 사이로 방울귀뚜라미를 비롯한 풀벌레 소리가 하모니처럼 울려 퍼진다.
오후 7시가 넘어 해가 지자, 찌르찌르 울던 풀벌레 소리는 찌르륵 찌르륵 하며 속도를 늦췄다. 지향성 마이크의 방향에 따라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감상하다가, 칡넝쿨과 다양한 식물의 표면을 만져보며 잎의 질감도 소리로 느꼈다. 4개의 구름다리를 건널 때면 다리 아래 펼쳐진 지형의 특성에 따라 파도 소리가 달라졌다. 파도가 돌에 부딪힐 때 나는 철썩거리는 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했고, 자갈이 모인 곳에서는 물이 빠져나가며 자갈끼리 부딪치거나 도로로로 굴러가는 소리가 귓속을 간질였다. 요즘 한창 빠져 있는 악기 판지 너트 셰이커(Pangi Nut Shaker) 소리와 비슷했는데, 좀 더 부드럽고 섬세했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펼쳐지는 소리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1시간가량 소리를 채집했을 무렵, 임성택 가이드는 한 방파제 앞에서 멈춰 사라진 풍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해녀촌이 자리했으나, 높아진 수온과 해양오염으로 수확할 생물이 사라져 해녀도 떠났다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소리는 없어요. 소리로 풍경을 감상하면 그 변화를 더 생생하게 느껴요. 환경이 변하면 들리는 소리도 달라지거든요. 좀 전에 본 칡넝쿨을 없애고 꽃을 심으면 더 이상 방울벌레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예요.” 2025년 8월 마지막 주, 이기대공원의 울창한 숲의 소리와 고요한 파도 소리는 지금, 이곳에만 있다. 사운즈 워킹 내내 이 시간의 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는 뭉클함이 몰려왔다.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내 존재 자체가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잠깐 경험한 명상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사운즈 워킹이 일종의 명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임성택 가이드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명상의 기본 조건 중 하나는 현재에 머물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명상을 시작할 때 호흡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하죠. 호흡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만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현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평온함과 행복감이 더 커진다고 해요. 지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파도 소리 역시 현재에만 존재하는 소리죠.” 이 계절의 소리를 경험한다는 건 나의 존재와 가치를 더 선명히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고요히 순환하는 타이치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순간, 오랜 세월의 아름다움을 품은 선몽대에서 마주한 진짜 웰니스.
처서가 지나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던 어느 아침, 좁은 숲길을 지나 경상북도 예천의 명승지 선몽대에 다다랐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잔잔히 흐르는 강, 낮은 절벽 위 누각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1563년, 퇴계 이황의 종손인 우암 이열도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꿈을 꾸고 지었다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풍광이었다. 예천의 청년마을인 생텀마을이 개최한 웰니스 프로그램 ‘티&타이치’에 참여하기 위해 나를 비롯한 참가자 15명이 이곳에 모였다. 겹겹이 쌓인 얇은 솔잎이 드리운 그늘 아래 매트를 깔고 앉았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도시의 분주함과 소음은 온데간데없이 고요했다. 그저 강물의 맑은 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며 나는 시원한 소리, 새의 지저귐이 기분 좋게 맴돌았다.
프로그램은 차담과 타이치 움직임 명상 순서로 진행됐다. 진행은 생텀마을 대표이자 태극권 전승자인 김민성 대표가 맡았다. 6대 차류 중 흑차인 보이차를 참가자들과 나눠 마시며 선몽대가 풍기는 차분하면서도 강인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차의 향과 따뜻함이 몸 구석구석의 감각을 깨우는 동안 해는 점점 더 높이 떠올랐다. 김 대표는 본격적인 움직임 명상을 시작하기 전, 우리 삶에 명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누구나 오랜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뇌과학이나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명상은 우리 뇌를 반복적 습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더 나은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바삐 일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쳇바퀴 같은 삶 속에 정체되어 있음을 깨달을 겨를조차 없었다. 김 대표는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감정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화가 났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몸 상태를 느껴보고, 반대로 슬프고 우울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몸을 느껴보세요. 화가 날 때는 횡경막 앞쪽이 솟아오르면서 심장과 폐를 누르고 어떤 기운이 머리 위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 들 거예요. 그러다 슬픔이 찾아오면 횡경막이 아래로 툭 떨어지면서 온몸이 땅으로 푹 꺼지는 기분이 들죠.” 이렇게 화나 슬픔이 습관이 되면 겉모습까지도 그에 맞춰 바뀐다는 거다.
먼저 매일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부터 바꾸기로 했다. 눈을 감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와 작은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특별히 어떤 것에 신경 쓰거나 집중하지 않고 그저 가장 편안한 상태의 호흡을 찾아갔다. 탁 트이고 평화로운 야외여서인지 사방이 꽉 막힌 실내보다 호흡이 훨씬 빠르게 정돈됐다. 감정이나 생각의 개입 없이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잘 다듬은 호흡에 움직임을 더해보기로 했다. 관절 중심 운동인 타이치(Tai Chi)는 물 흐르듯 부드럽고 우아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언뜻 보면 몸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종류와 세밀한 규칙이 존재한다.
김 대표는 다섯 동물의 즐거운 놀이를 의미하는 ‘화타오금희’의 일부 동작과 손동작이 중심이 되는 손가태극권에서 유래한 TCA(Tai Chi for Arthritis, 관절염 환자를 위한 타이치 운동)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두 발을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바른 자세로 서서 움직임을 시작했다. 먼저, 두 팔을 쭉 뻗어 몸통 앞으로 천천히 회전시키며 뻐근한 어깨 관절을 풀었다. 이어서 두 팔을 넓게 벌려 등 뒤로 모으며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다음은 가슴 앞에 작은 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공을 크게 키우듯 가슴과 팔을 벌리는 동시에 하체를 낮췄다 올리기를 반복했다. 반복적인 상승과 하강 동작을 통해 몸이 점차 관절염을 위한 프로그램에 익숙해졌다. 어깨, 고관절, 무릎, 경추, 흉추, 요추 등 큰 관절부터 팔꿈치, 손목, 발목 같은 작은 관절까지 가동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계속되는 움직임에 몸은 점점 익숙하고 유연해졌다. 근육을 단련하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스트레칭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불편한 곳 없이 편안한 몸을 만들어주어 되레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호흡의 리듬 역시 어느새 움직이고 있는 내 몸에 알맞게 자연스러워졌다. 마치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한 60대 참가자는 “평소에 내가 어떻게 숨을 쉬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오늘 처음으로 숨을 쉬는 걸 관찰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초가을 선선함에 양반이 여흥을 즐기던 선몽대에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제가 양반이 된 것 같았어요. 진짜 양반은 고차원적 정신문화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만을 가질 필요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그게 진짜 양반이죠.” 진짜 웰니스는 삶을 어떻게 꾸리고 돌볼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결정권이 발동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

쉼과 움직임의 균형
높고 푸른 초가을 하늘 아래, 부산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웰니스 페스티벌이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유난히 뜨겁던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부산 기장의 빌라쥬 드 아난티 잔디광장에서 열린 부산 최초의 웰니스 페스티벌 ‘웰니스 다이브’.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웰니스 다이브는 골반 운동, 힐링 요가, 비바로코, 필라테스, 플로우 요가까지, 5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스테이지 주변에는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여러 브랜드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체험형 부스가 마련되었다. 뷰오리, 소아스, 모크샤 같은 유명 웰니스 브랜드는 물론, 부산을 대표하는 모모스커피와 삼진어묵까지 총 18개 브랜드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자칫 원더러스트와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이 행사에는 균형 잡힌 삶의 중요성을 지역에 알리려는 뜨거운 노력과 섬세한 정성이 묻어 있다.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한 휴먼밸런스의 정한겸 대표는 피트니스 교육과 컨설팅 등을 전개하며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좋은 게 너무 많은데, 이걸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르잖아요. 결국 경험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몸을 움직이고, 제품도 사용해보는 거죠. 부산을 대표하는 웰니스 페스티벌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부산까지 왔으니 편안하게 힐링하는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 ‘힐링 요가’ 클래스를 택했다. 오후 2시,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과 넘실거리는 파도가 어우러진 기장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에서 강사 김다솜의 안내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다. “일상에서 나를 괴롭고 지치게 했던 것들을 비워내고,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봅니다.” 강한 듯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었고, 여러 브랜드의 부스를 즐기는 참가자들의 웃음소리와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져 깊은 몰입으로 이끌었다. 과격한 움직임 없이 매트 위에서 한 동작 한 동작 가만히 머무르는 동안 몸의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살짝 잠이 든 순간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순간만큼은 어떤 고민이나 걱정 없이 바람과 햇빛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비바로코 클래스는 수업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진행되는 이 수업은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깨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닥에 손과 발이 닿지 않게 가장 멀리 우산 꽂기, 온몸을 활용해 물 퍼나르기 같은 유쾌한 팀플레이가 이어졌다. 팀원들과 어떻게 하면 성공해낼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끈끈한 우정이 피어났고, 지나가던 투숙객도 궁금증에 삼삼오오 모여들 정도였다. 좀 더 깊은 자극과 이완을 경험하는 클래스도 있었다. 싱잉볼을 활용한 사운드 배스와 근막 이완을 돕는 소아스 명상 필라테스는 오감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뭉친 근육을 살살 풀고, 맑고 청아한 소리로 주위를 환기시키며, 향기로운 아로마로 둔감해진 후각을 깨웠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이 모든 변화를 탐닉하며 몸에 찾아온 안정을 만끽했다.
장소가 주는 여유로움, 클래스를 통해 얻은 배움과 경험, 참가자들과 공유하는 느긋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많은 웰니스 프로그램과 페스티벌을 경험했지만, 웰니스 다이브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웰니스는 이제 장소와 지역에 상관없이 넓고 깊게 그 영향력을 펼쳐나가고 있다.
- 일러스트레이터
- 신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