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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K쌀롱⑥ 나 김은숙 좋아하냐? <파리의 연인>부터 <다 이루어질지니>까지

2025.10.02김가혜

김은숙 드라마김은숙 드라마

돌아보면 우리의 21세기 로맨스는 김은숙 드라마와 함께였다.

김은숙 작가의 첫 장르물 <더 글로리>(2022)가 십대 딸의 질문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름이 알려진 엄마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혹시나 불편한 관심을 받는 건 아닌지 물었을 때, 그의 딸은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엄마, 언제 적 김은숙이야.” 이어진 질문. “엄마는 내가 죽도록 맞고 오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때리고 오면 가슴 아플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질문. 그에 대한 답을 고민한 시간은 학폭 생존자 문동은(송혜교)의 잔혹한 복수극을 완성했다.  

그나저나 따님, “언제 적 김은숙”이라니, 듣는 사람이 다 섭섭하네요. 우리의 21세기 로맨스 판타지는 김은숙과 함께였고, 함께일 것인데? 

김은숙 드라마
인스타그램@tvn_drama

김은숙 작가의 X 아이디는 ‘dramaonly’다. 마지막 게시물은 2018년 6월 26일, <미스터 선샤인> 제작발표회를 앞두고 기사화 된 이혼 소식에 대한 해명이었다. 작가의 이혼’설’이 혹시나 드라마에 해가 될까 부랴부랴 남긴 글. 그가 쓴 <상속자들>(2013)의 부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처럼 K드라마 여왕이 견뎌야 할 ‘왕관의 무게’였다.  

그로부터 한 해 전, 김은숙 작가는 제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도깨비>로 작가로는 최초로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또 한 해 전 대상은 <태양의 후예>였다. 작품으로 대상을 받고 작가로 또 대상을 받는, 그 어려운 걸 해낸 김은숙은 이렇게 말했다. “하다 하다 제가 대상을 받았어요. 어떡하죠?”

그다운 소감이었다. 사랑에 빠진 혼란스러운 마음을 ‘메타인지’ 시도 끝에 ‘방백’ 스타일로 고백하는 남자 주인공들이 떠오르는.

이민호가 드라마 종영 후 “오타인 줄 알았다” 고백한 <상속자들> 극장 신을 돌이켜 보자. 불량배들에게 쫓기던 김탄(이민호)과 차은상(박신혜)이 숨기 위해 들어간 극장. 상영 중인 영화의 영어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차은상을 위해 김탄은 통역을 시작한다. 

김탄: 당신을 노리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하러 왔대… 당신을 믿으려면 당신이 누군지 알아야 한대…
차은상: 안 잤어?
김탄: 근데 어제 한 여자를 만났대, 그 여자 이름이 차은상이래.
차은상: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김탄: 근데 그 차은상한테 궁금한 것이 생겼대. 혹시, 나 너 좋아하냐?

‘서브병’ 유발자였던 최영도(김우빈)는 어떻고. 편의점 앞에서 잠든 차은상한테 툭툭 발길질을 하더니 애틋한 눈빛으로 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이렇게 말한다. “넌 왜 맨날 이런 데서 자냐. 지켜주고 싶게.”

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집안에서 치열하게 성장한 탓에 진정한 사랑 같은 건 못해본 재벌가 남자들은 어디서도 못 들어본 신박한 고백을 했다. 57.6%라는 비현실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파리의 연인>(2004)이 시작이었다.

그 시절 남자들은 윤수혁(이동건)의 “이 안에, 너 있다” 고백에 성공하면 한기주(박신양)처럼 “애기야 가자!”를 외쳤다. 시간이 흘러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반짝이 추리닝’을 입고 등장한 <시크릿 가든>(2010)의 김주원(현빈)은 듣는 사람까지 부끄러워지는 팔불출 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길라임(하지원)에게는 “길라임 씨는 몇 살 때부터 그렇게 예뻤나, 작년부터?라고 물었고, 길라임을 홀대하는 사람에겐 “이 여자가 제겐 김태희고 전도연입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을 거쳐 <상속자들>까지, 까칠한 재벌 2~3세와의 사랑을 해 볼 만큼 해봤다고 느꼈을 때, 김은숙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시진 대위(송중기)를 등장시켰다. 드라마 제목부터 눈부신 <태양의 후예>(2016)였다.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만큼이나 관심 밖이던 군인 남주와의 로맨스는 최종회에 38.8%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어려운 걸, 김은숙 작가가 “해냈지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 보라고 틀어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진우’에게 반하는 건, 우리에게 <도깨비>에 매료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2화 엔딩에서 지은탁(김고은)을 구하러 가던 도깨비 김신(공유)과 저승사자(이동욱)의 투샷이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귓가에 OST가 자동 재생되는 명장면이다.  

10월 3일 공개되는 김은숙의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의 주인공은 램프의 정령 ‘지니’다. 새파란 윌 스미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이국적인 캐릭터지만, 도깨비와 저승사자도 사랑하게 만든 작가이기에 남주가 외계인이나 좀비라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니’ 역을 맡은 사람은 <신사의 품격>(2012)과 <상속자들>에서 남주 위협하는 서브 남주로 성장한, 영화 <외계:인>에서 사이보그 ‘가드’를 멋지게 연기한 김우빈이다. 천여 년 만에 깨어나 세상 물정 모르는 게 약점인데, 하필 새 주인은 감정이 결여된 인간 가영(수지). 세 가지 소원으로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 ‘사탄’ 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예쁜 ‘사이코패스’의 대결이 펼쳐진다.

김은숙 작가 피셜 “스트레스 제로, 고구마 제로의 아는 맛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가 펼쳐질지니. 이 맛 아는 자들이여, 팝콘 준비하시라!

*<Y2K쌀롱>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고, 다시 우리를 설레게 하는 Y2K 스타와 콘텐츠에 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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