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오렌지족의 환골탈태 성장기, <태풍상사>가 소환한 1997년 속으로.
1997년 11월 21일,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고아라)이 첫 채용 합격 통보를 받은 날. “거짓말처럼 나라가 망했다. 대한민국은 하루 아침에 아시아의 용에서 지렁이가 되었고, 찬란한 X세대였던 우린 하루 아침에 저주 받은 학번이 되었다.” 무너진 시대에 청년들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이하 ‘스다스하’)>에서 고 2였던 나희도(김태리)가 갑자기 전학을 간 건 다니던 학교의 펜싱부가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꿈을 뺏는 게 어딨어요?” 따지자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네 꿈을 빼앗은 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
한 집 건너 한 집이 망하던 시절에도 우리들을 버티게 한 건, 장롱 깊숙이 숨겨둔 돌 반지까지 꺼내 ‘금 모으기 운동’에 내놓은 부모님과 암울한 십대를 밝혀준 ‘오빠들’이었다. 십대들의 승리 HOT, 여섯 개의 수정 젝스키스, 그리고 혜성처럼 전진하는 신화…
아침엔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고 밤에는 재즈바에서 색소폰을 부는 재벌 2세.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의 ‘강풍호(차인표)’가 생각나는 90년대 남주 재질의 이름 강태풍. 예고편 등장부터 그 시절 향수를 마구 자극한다. 그때는 ‘브릿지’라 부르고 지금은 ‘발리아쥬’라 부르는 가닥가닥 밝은 색을 넣은 헤어에 풀어헤친 셔츠와 체인 목걸이, 인조 가죽 셋업까지. ‘압스트리트 보이즈’ 비주얼 담당인 강태풍의 패션에서 1997년 HOT의 대항마로 데뷔한 젝스키스가 보인다.
다시 <태풍상사>로 돌아와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압구정 날라리가 부도 직전의 회사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에이스 경리인 오미선(김민하)과 태풍상사 직원들이 그를 돕는다. K장녀인 오미선의 꿈은 단순하다. “보조 말고 내 일 하는 회사원.” 꿈을 이루려면 일단 회사가 잘 돌아가고 볼 일이다.
1997년, 대한민국은 무너졌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US 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웅덩이에 들어간 스무 살 박세리처럼, 헤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는 대역전 감동 실화를 보여주었다. <스다스하>에서 ‘만화방 오빠’ 백이진과 ‘맞춤법 파괴 고딩’ 나희도가 결국 꿈을 이룬 것처럼, <태풍상사>가 제 2의 IMF 위기를 두려워하는 시대에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처럼 희망을 주는 드라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예고편에서 강태풍은 말한다. “무너진 건 시대지 내가 아니야!”
*<Y2K쌀롱>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고, 다시 우리를 설레게 하는 Y2K 스타와 콘텐츠에 관해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