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직접 해먹고, 커피도 내리고. 아침부터 많은 일을 했다고요.
원래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는데, 오늘은 4시 반쯤 깼어요. 지난주에 시드니랑 로스앤젤레스(LA)를 다녀와서 시차 적응이 덜 됐거든요. 그만큼 일찍 자요.
세계 7대 마라톤이 된 시드니 마라톤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혼자 3km, 5km, 7km 뛰는 게 명상 같은 느낌이라 거기에 만족하고 있었어요. 속도도 중요하지 않았고요. 근데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마라톤을 두 달 반쯤 남겨두고 완주에 도전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이 왔어요. 원래 관심이 없었는데, 내년에는 더 힘들 것 같더라고요. 그래, 몇 개월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자. 같이 뛰는 사람들이 있는데 얼마나 편할까? 한번 해보자 싶었죠.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기 위한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 코치님을 만나 자세 훈련, 고지대 훈련 등을 하고, 거리를 점점 늘여가면서 꾸준히 뛰었어요. 한국에서 딱30km까지 뛰고 시드니에 갔어요. 욕심 없이 다치지 말고 완주만 하자 했는데 막상 결전의 날이 다가오니 부담이 됐나 봐요. 먹으면 체하고 소화가 안 돼서 소화제를 계속 먹었어요. 끝나니까 바로 소화가 잘되더라고요. 저녁만 세 끼를 먹었어요. 완벽한 신경성이었구나.(웃음)
현장 분위기도 궁금해요. 같이 뛰는 사람들과 응원해주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어떤 감정을 느꼈어요?
주변에서 다들 축제 분위기라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막상 가보니 다르더라고요. 거대한 컨벤션을 꾸려놓고 사람들도 다 신나 있는 거예요. 배번표를 받을 때 이게 제 인생 첫 마라톤이라고 했더니“여기 첫 마라톤이래!”하면서 벨을 울려줬어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죠. 뛸 때도 그래요. 힘든 포인트마다 디제이들이 스피커를 설치하고 음악을 틀면서 흥을 돋워줘요. 더는 못 뛰겠다 싶은 순간에도 에너지가 ‘빵!’생겨요. 무대 위에서 받는 응원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높은 연령대의 참가자들을 보면서 동기 부여도 크게 받고요.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시드니 마라톤은 업힐 코스로 유명한데, 언제 제일 힘들었어요?
21km까지는 계획했던 페이스를 나름 잘 유지했고, 지루하지도 않았어요. 뛰기 시작하면 곧바로 하버 브리지가 나오거든요. 관광하듯이 뛰었어요. 날씨도, 기분도 좋아서 욕심을 좀 냈는데 그게 화근이었죠. 안 쓰던 근육을 썼나 봐요. 허벅지 근육이 뭉쳐서 큰일났다 싶었는데, 꾹 참고 40km까지 뛰었어요. 피니시 라인 근처는 응원의 레벨이 다르더라고요. 거의 코치 수준으로 소리 지르고 박수 치고. 힘든 건 싹 잊어버리고 남은 2km정도를 신나게 달렸어요.‘우와! 내가 여기를 뛰어왔다니!’
풀코스를 뛰고 나면 몸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일단 배부르게 먹었고요.(웃음) 다음 날 촬영 때문에LA로 이동하는 스케줄이었어요. 시드니에서 LA까지 13시간 반이 걸리는데, 몸이 피곤해서 당연히 잠이 올 줄 알았거든요? 단 1분도 못 잤습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비행기에 같이 탄 사람들을 보니 저처럼 마라톤을 뛰고 LA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이곳저곳 서서 스트레칭을 엄청 하고 있었어요. 서로 말은 안 해도 그 아픔을 다 알죠. LA가서 한숨 푹 자고, 다시 뛰었어요. 일상의 루틴을 다시 찾으니까 리커버리가 되더라고요.
이렇게 푹 빠진 달리기의 시작점은 어디였나요?
명상을 먼저 시작했어요. 한동안 아침에 눈뜨면 마음이 불안하고 심장이 빨리 뛰었어요. 잠드는 것도 힘들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몇 년을 지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넷플릭스 다큐 <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를 봤어요. 처음에는 좋았는데 뭔가 부족했어요. 그때 마침 LA에 갈 일이 있어서 친한 동생들이랑 처음 달려봤어요. LA ’뽕’이라는 말 써도 되나? 너무 좋은 거예요. 평소 보던 하늘도 달라 보이고, 땀 흘리고 나서 개운한 느낌도 좋고요. 몸이 힘드니까 불안도 사라지고, 잠도 잘 자더라고요. 선순환의 느낌이 들어 1년 4개월째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가 많았나요?
태생이 스트레스 잘 안 받는 성격이에요. 음악하기 전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도 전혀요. 질투도 없어서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마음이 너무 힘든 거예요. 어떻게 보면 세상과 처음 만난 거죠.
음식에도 꽤 신경 쓰던데, 레디에게 잘 먹는 건 어떤 의미예요?
좋은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먹으려고 해요. 직접 요리도 하고요.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더러워지고 싶은 날도 있어요. 하하. 그럴 때는 당연히 먹죠.‘엽떡’ 먹고 교촌치킨 먹고…. 짜장, 짬뽕도 너무 좋아하는데, 웬만하면 깨끗하게 먹자 주의인 거죠. 극단적이지는 않아요.
아침형 인간에 클린한 식단, 달리기와 명상까지! 늦은 밤 작업하고 해 뜰 때 잠드는 게 아티스트의 이미지 아닌가요?
그런 시간도 물론 있었죠. 아깝더라고요. 하늘이 이렇게 맑고 예쁜데, 이 시간을 자는 데 써야 하다니. 그때부터 일찍 일어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어요.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고요. 일어나자마자 레몬 자르고, 커피 내리고, 달리기 하러 나가고, 들어와서 씻고 명상하고, 아침 차려서 먹고, 책까지 읽으면 정말 훌륭하고 완벽한 아침이 완성돼요. 일부러 연락도 안 받아요. 요즘은 음악 작업도 아침에 다 끝내려고 해요. 한 2년 정도 됐어요.
스스로 찾아온 변화를 느끼나요?
완전 달라요. 주변 사람들도 느끼더라고요. 달리기를 하면서부터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그냥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달리기가 러키 참(LuckyCharm) 같은 느낌이에요.
직접 찍은 사진으로 블로그도 운영하죠. 일기처럼 일상을 기록하는 건어떤 움직임이에요?
이래 봬도 제가 사진전을 열었었습니다.(웃음) 블로그를 많이 보면서 컸어요.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 맛이 있거든요. 요즘은 너무 다 빠르잖아요. 저만의 속도를 찾고 싶었어요. 나만의 길을 걷자. 나만 보더라도 지나가는 시간을 기록하자. 라이카 Q2랑 리코 GRII를 번갈아 써요.
블로그에 언젠가 사진집을 내고 싶다고 적었어요. 레디의 사진집 안에는 어떤 순간이 담기면 좋겠어요?
보자마자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진이면 좋겠어요. 보시는 분들보다 제 만족인 것 같긴 한데.(웃음) ‘아! 이때 이랬는데!’하고 그 시간을 회상할 수 있는 사진이면 좋겠고, 그걸 남들은 모르면 좋겠어요. 부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건강한 삶의 이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살면서 안 힘들 수는 없거든요. 고비가 없을 수 없고 고통이 없을 수 없는데, 그럴 때 잘 버틸 수 있게, 잘 지나갈 수 있게 돕는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이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여행이 아닌 것 같아요. 인생이 정말 좋고 행복하다면 그건 선물인 건데, 아시다시피 선물은 매일 받을 수 없거든요. 일상에서 내 몸과 마음, 정신을 건강하게 수련해놓으면, 넘기 힘든 산을 만났을 때 덜 지치고 덜 힘들 수 있어요. 버틸 힘을 기르는 거죠.
곧 공개될 신곡 ‘LSD’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어요?
천천히 오래 달린다는 뜻의 마라톤 용어 ‘Long Slow Distance’의 약자예요. 마라톤이 인생 같다는 표현이 어릴 때는 와닿지 않았어요. 다들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뛰어보니까 인생이 맞더라고요. 삶의 축약본 같았어요. 시드니 마라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면서 곡이 시작돼요. 원테이크로 영상도 찍었어요.
인생도 마라톤도 희로애락이 있다는 점에서요?
분명 끝이 있다는 걸 아는데 너무 길어! 인생과 마라톤 모두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어쨌든 완주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딱 LSD 같았어요. 너무 빠른 세상에 살다 보니 근 몇 년 동안 놓친 것도 많고, 속도에만 의존하면서 살지 않았나 싶어요. 인생이 됐든 마라톤이 됐든 나는 내 페이스대로 뛰자. LSD를 하자. 꼭 빠를 필요 없이 천천히 가는 삶을 살아도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달리다 보니 이런 곡도 나오네요.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는 어떻게 다가와요?
팬들의 응원과 현장의 분위기에서 얻은 에너지로 앨범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팬데믹을 겪을 때 그게 없으니까 작업이 너무 어려웠어요. 댐의 수문이 닫혀버린 느낌이랄까? 공연을 하면 수문이 열리는 것처럼 영감이나 에너지가 막 쏟아져요. 저는 그걸 잘 받아서 강으로 하천으로 바다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거죠.
달라진 삶처럼 음악에서도 달라진 게 있어요?
최근에 이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동안은 지극히 개인적인 곡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다음이 없는 거예요. 뭘 말하고 싶은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지금으로서는 함께 음악을 하고 창작을 하는 친구들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저 바라볼 수도 있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기댈 수도 있는 존재요. 그러려면 당연히 제 삶에도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하니 건강하게 사는 것도 있어요.
오늘은 레디의 일상을 따라가보려고 해요. 꼭 담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가 될까요?
사실 지났어요. 아침이에요.(웃음) 달리기 하는 순간이 꼭 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