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소나무한약국’과 (주)셀라돈을 운영하는 한약사이자 사업가로 고려청자 수백 점을 수집한 컬렉터. 그는 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고려청자를 모아 청자의 보존과 계승, 다소 낯선 고미술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고미술의 낭만, 주재윤
한약국 곳곳에 자리한 미술품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술품에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역사와 함께한 고미술, 그중에서도 고려청자를 10년 넘게 수집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 기술적 우수함과 예술성에 빠져 수백 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정말 청자에 ‘미쳐’ 살았다.
고려청자와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2010년경, 아는 어르신께 우연히 깨진 청자를 선물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고려청자’ 하면 우리나라의 보물, 재벌 집에 있어야 하는 진귀한 물건이라 생각했다. 강원도에 살다 보니 유물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보고 또 보고, 꿈인지 생시인지 만져도 보며 삼일 내내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렜다. 알음알음 가격을 알아보니 내가 생각한 천문학적 금액은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드는 작품 딱 10점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작한 수집이 수백 점에 이르는 거대한 컬렉션이 되었다. 고려 청자의 매력은 무엇인가?
수집 과정에서 청자와 관련한 사실을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천 년의 세월을 품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데, 들여다볼수록 형태, 색채, 문양 등 디테일에 빠져들었다. 당대 최고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예술이라는 점도 감탄하게 됐다.
청자에 담긴 독보적 기술은 무엇인가?
12~13세기, 전 세계에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었다. 제조 기술은 중국에서 물려받았지만, 우리는 발전시켜 아름다운 비색을 만들어냈다. 그릇 표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새기는 상감기법으로 우리만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상감청자를 만들었다. K-팝이 세계적인 위상을 떨치는 가운데,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독자적인 콘텐츠로 세계를 주름잡은 건 청자일 수 있다.
대중적인 현대미술과 달리 고미술은 좀 더 전문성을 요할 것 같다. 어떻게 접근했나?
청자는 공부를 안 하면 제대로 된 작품을 수집할 수 없는 분야다. 유물의 희소성을 알아보고 진품과 가품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건 결국 공부다. 그 시작은 좋은 교과서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해 전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고적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책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우리나라 고적을 집대성한 <조선고적도보> 전집부터 ‘조선미술전람회’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등의 과거 경매 도록과 박물관 도록 속 작품을 달달 외웠다. 이후 논문을 찾아보며 형태와 디자인, 문양을 더 깊이 있게 파악했고, 유약과 흙, 나무 등 청자의 재료도 공부했다.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중요하다.
현장 공부란 어떤 걸 의미하나?
눈에 익도록 자주, 꼼꼼히 보는 게 중요하다. 지난 십수년간 도자기에 미쳐 자동차 주행거리를 합산하면 100만 km는 족히 달렸을 듯하다. 일이 끝나면 가마터가 모여 있는 전라도 부안과 강진으로 향했다. 밤을 꼬박 새워 달려 오전 8시쯤 도착한 후, 부안청자박물관과 강진에 위치한 고려청자박물관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박물관을 돌고, 근처 가마터에 가서 흙을 만지고, 먹어도 보며 도자기를 이해하려 했다. 가마터 일대를 걷다 보면 사방팔방 떨어진 도자기 파편도 수없이 보게 되는데, 이게 또 박물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촉감 공부 현장이다. 이게 몇 년간 내 루틴이었다.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요즘도 좋은 도자기를 보여준다고 하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곳으로 향한다.
웬만한 열정이 없어서는 뛰어들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집은 작품과 대화를 나누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여정을 깊게, 진한 농도로 즐기기 위해 공부는 게을리할 수 없다. 하면 할수록 결국 고미술의 진입장벽은 가격보다 공부의 영역임을 실감한다.
이 치열한 여정에도 포기할 수 없는 컬렉팅의 매력은 무엇인가?
원하는 작품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인연이 되어야 비로소 닿는다. 시간과 노력, 내 컬렉팅을 응원하며 한 점씩 살을 붙여주는 주변 사람의 마음이 모여 비로소 만났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짜릿함을 느낀다.
처음 수집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공부법은 무엇인가?
초반에는 청자의 실물부터 눈에 담는 게 중요하다. 눈의 기준점이 흔들리면 안 되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진품을 보고 지표와 데이터를 쌓는 걸 추천한다. 요즘은 주요 박물관에서 ‘이뮤지엄’을 통해 소장품을 전산화해 작품의 상세 사진까지 확인할 수 있다. 마이아트옥션, 서울옥션 같은 경매사에서 나오는 도록도 주기적으로 살펴본다.
현재 당신의 컬렉션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나?
청자의 역사만큼 모양과 형태도 다양하다. 우리 선조는 청자로 장구, 향로, 주전자, 피리, 베개, 화분 등 다양한 종류의 기물을 만들었다. 지금 내 컬렉션은 청자의 모든 기종, 기법, 색의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이를 목표로 지금까지 수집을 진행했다. 돈과 시간이 생기면 작품을 찾으러 뛰어다녔다. 8년간 사진첩에 품고 다니던 작품이 우연히 내게 오기도 하고, 존경하는 분이 내어주는 등 원하는 작품을 찾았을 때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품마다 나와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각별하다.
작품의 폭넓은 스펙트럼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무엇인가?
수집가로서 어느 순간 묘한 사명감이 들었다. 컬렉팅의 기승전결에서 지금 이 컬렉션이 ‘기’를 끝낸 지점이다. 이렇게 모은 후 조금씩 전시를 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도 중요하지만, 수집가로서 내 취향을 담은 컬렉션을 꾸리고 싶어 어떻게 담을지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요즘은 해학이 있는 작품에 꽂혀 있다.
컬렉션 중 아끼는 작품은 무엇인가?
무엇 하나 꼽기 어렵다. 몸체 네 곳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음각으로 새겨진 ‘청자 음각 연화문 매병‘, 표주박 모양에 흑백 상감 기법으로 포도와 줄기, 잎을 새겨 넣은 ‘청자 상감 포도문 표형병’, 연꽃 봉오리에 오리 모양의 뚜껑을 더한 ‘청자 오리뚜껑 연화형 향로’, 초화문과 벌레를 잡는 새가 소풍 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뽐내는 ‘청자 음각 조충문 병’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매일 밤 작품을 들여다보며 밤새 사유했던 시간, 작품 하나하나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전부 생생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미술시장이 어느 때보다 찬란했다. 고미술은 어떤가?
처참한 수준이다. 고미술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심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전문 컬렉터는 매우 적다. 컬렉터의 규모가 작은데 거기서 도자 수집, 청자 수집으로 들어가면 규모는 더 작아진다. 다들 연세도 지긋하셔서 40대만 해도 젊은 축에 속한다. 유물의 희소성이 곤두박질치고, 문화재적 가치와 유물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1가구 1문화재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수집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내게 청자는 자식 같은 존재다. 이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꾸려주고 싶어 작은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왜 박물관인가?
유물이라는 건 개인이 소유하더라도 문화재적 가치와 공공성을 갖는다. 이 유물이 나한테 오기까지 여정을 함께하며 청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소유자가 잘 지키고 보관해서 훗날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게 한층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고, 부안청자박물관의 ‘잼버리 기념 특별 전시’ 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일까?
그렇다.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려 한다. 이게 바로 ‘성공한 덕후’의 길이 아닐까 싶다. 정읍에서 기획하고 있는 국보순회전에도 참여를 앞두고 있다.
수집가로서의 자세가 남다르다.
이 역시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대 수집가의 책과 일화를 찾아보며 수집가로서의 자세를 갖춰야 의미 있는 컬렉팅을 이어갈 수 있다. 과거에는 소위 ‘바람을 안 쐬인다’고 표현할 정도로 나만 보고, 소수의 ‘우리’만 보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손세기·손창근 선생, 간송 전형필 선생, 동원 이홍근 선생, 이건희 회장, 윤장섭 회장 등 선대 컬렉터의 행보를 보며 컬렉터로서 나아갈 방향성을 생각하게 됐다. 그분들의 컬렉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유물의 가치가 여러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 포토그래퍼
- 차혜경, 오은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