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컬러가 나의 식욕을 좌우한다!?
일상 속 다채로운 색 중 우리의 식욕을 지배하는 색은 무엇일까?

음식의 맛은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잘 익은 토마토를 상상해보자. 여러 색의 토마토 중 밝고 쨍한 붉은색 토마토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는 달콤한 과즙이 흘러넘치며 기분 좋은 미소가 드리우는 건 신선한 붉은색 토마토를 먹을 때다. 사회학, 생리학 등 여러 학문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색은 음식에 대한 인상을 좌우한다.
적색육은 미오글로빈으로 인한 특유의 붉은빛이 우리의 뇌가 이를 고기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체육 버거 브랜드 임파서블 버거(Impossible Burger)가 처음 식물성 패티를 출시했을 때, 자사 제품은 콩과 식물의 뿌리혹에서 발견되는 단백질로, 육류와 비슷한 맛과 색을 내는 콩 헤모글로빈을 사용해 육류 패티와 맛과 색이 흡사하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음식의 색은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에 그치지 않고, 식품의 시장성을 결정하고 대중이 식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좌우하기에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 ‘색’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의 파장이 눈의 망막에 감지되어 뇌로 전달되는 현상이지만,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이 주변 세상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본적인 밑거름이다. 이런 영향으로 색채가 음식을 인식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구체적으로 탐구했다.
식욕을 돋우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색
올해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사탕과 젤리 등에 사용되던 식용색소 ‘적색 3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더 이상 새빨간 간식거리를 구경하기 어려워지면서, 이런 붉은색이 식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메뉴판의 진홍색 글씨를 보면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화끈한 매운맛이 떠오르고, 진한 인도식 그레이비소스 위에 올라간 짙은 빨간색 큐민소스를 보면 벌써 혀에 얼얼한 느낌이 돈다.
음식과 색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욕을 돋우는 대표 색 중 하나는 빨강인데, 이는 인간이 보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물적 반응이다. 사과, 석류, 크랜베리 같은 과일의 당도가 가장 높고 잘 익었을 때 진한 붉은색을 띠는 자연의 원리를 인간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형성된 반응인 셈이다. 붉은색에 대한 인간의 이런 원초적인 반응을 활용해 식품업계에서는 사탕, 음료, 과자 등에 밝고 강렬한 빨간색을 자주 사용했다. 빨간색과 더불어 갈색 역시 음식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색이다. 갈색은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평범하고 존재감 없을 수도,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을 강하게 끌어낼 수도 있다. 푸드 마케터는 식품을 브랜딩할 때 다양한 식품 심리학 원칙을 응용하는데, 갈색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2023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실험자 대다수가 녹색, 파랑, 보라 같은 차가운 계열의 색보다는 따뜻한 색감의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하지만 일부 응답자는 갈색 음식을 오버쿠킹이나 타기 직전의 상황과 연관 지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반면, 갈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실험자는 갈색을 토르티야 속 바르바코아 고기, 따뜻한 인도 카레 달(Dal) 한 접시, 네모난 초콜릿 등과 연결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색으로 인식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갈색 음식에 끌리는 이유는 갈색 음식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짙은 그릴 자국이 선명한 스테이크, 달콤한 갈색 캐러멜 드리즐을 곁들인 꾸덕한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 아이스크림, 루를 베이스로 오랜 시간 정성스레 저어 만든 해산물 검보 수프(Gumbo Soup)처럼 갈색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안전하고 깊은 풍미가 있다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기도 하다.
양면성을 가진 갈색과 달리 흰색은 사회문화적 영향으로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색이다. 산업화 시대 제분소가 세워지기 전까지 흰 밀가루를 먹기 위해서는 밀에 섞여 있는 겨와 해충을 수작업으로 제거해야 했기에 이는 일부 부유층만 누리는 사치품으로 분류됐다. 색이 어두운 통밀은 기피 식품이자 건강하지 않은 곡물로 인식된 반면, 폭신한 촉감의 흰색 밀가루는 선호 대상이었다. 거친 통밀빵은 가난과 금욕을, 구름처럼 폭신한 케이크 같은 빵류는 기념일과 풍요를 상징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파스타나 흰 빵처럼 정제한 탄수화물은 불완전하며, 지나치게 가공하고 정제된 식품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영양이 풍부한 두부나 요거트부터 크래커, 감자칩에 이르기까지 색이 없는 음식이 덜 건강하거나 더 순수하다는 건 아니기에 흰색에 대한 견해는 개인차가 존재한다.
컬러 트렌드가 우리 식탁에 올라올 때
매년 팬톤 색채 연구소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팬톤 컬러(Pantone Color Of The Year, COTY)’는 오랫동안 디자이너들이 한 해의 색상 유행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돼왔다. 이제 팬톤 컬러의 이런 영향력은 패션계를 넘어 요식업계까지 미친다. 2016년 올해의 색으로 지정된 연분홍빛 ‘로즈 쿼츠(Rose Quartz)’가 문화 전반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요식업계에서도 이 색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영리하게 풀어냈다. 뉴욕 맨해튼의 이탈리안 비스트로 피에트로 놀리타(Pietro Nolita)는 식당 내부 벽면을 핑크색으로 도배한 인테리어로 유명해졌고, 프랑스 키친 브랜드 르크루제(Le Creuset) 역시 분홍색 히비스커스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후 팬톤은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컬러를 선보였다. 강렬한 빨간색 칠리 페퍼(Chili Pepper), 따뜻한 노란색 미모사(Mimosa), 상큼한 오렌지를 연상시키는 탠저린 탱고(Tangerine Tango), 마른 장미색 마르살라(Marsala), 부드러운 복숭아색 피치 퍼즈(Peach Fuzz)가 대표적이다. 음식과 색의 연관성은 인간 내면의 감정과 정서를 즉각적으로 자극한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팬톤 연구소, 색채 심리학자, 광고계 모두 색-음식의 연관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든다. 일례로, 2025년 올해의 컬러로 지정된 모카 무스(Mocha Mousse)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휴식과 내면의 평온’을 상징한다고 한다. 음식과 색깔의 밀접한 관계는 소비자의 구매 심리와도 직결된다.
이런 이유로 마케팅 전문가가 음식에서 영감을 얻은 색감을 제품에 적극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계적인 매니큐어 제조업체 OPI를 예로 들어보자. OPI의 공동 창립자 수지 와이즈-피츠만(Suzi Weiss- Fischmann)은 제품을 기획할 때 음식, 음악, 패션, 영화, 미술과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 이용자가 자체 투표로 뽑은 OPI의 ‘최애’ 네일 컬러 중 상당수가 말라가 와인(Malaga Wine), 오로라 베리-알리스(Aurora Berry-alis), 케이준 슈림프(Cajun Shrimp) 등 음식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다홍빛의 선명한 레드인 케이준 슈림프는 1990년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제품인데, 창립자가 재즈의 본고장인 뉴올리언스에서 먹었던 저녁 식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음식과 연관 지어 색의 개념을 익히고 상징적인 문화의 아이콘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 글
- BEDATRI D. CHOUDHURY
- 일러스트레이터
- MATÍAS LARRAÍ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