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아티스트와 셰프, 그리고 아티스트 겸 셰프를 만날 시간이다.


ARTFUL HONG KONG
호리푹(Ho Lee Fook)은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마요네즈와 가다랑어포가 공중에서 춤추는 새우 토스트처럼, 대담한 퓨전 감각이 돋보이는 맛의 폭탄 요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맑은 닭 수프였다. 약차에 쓰이는 당귀로 향을 더한 이 음식은 어르신이 즐기는 진한 광둥식 풍미의 진수였다. 여성 셰프 아찬 찬(ArChan Chan)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싱가포르에서 요리 경험을 쌓은 후 2021년 고향 홍콩으로 돌아와 이 주방을 맡았다. 정치적 혼란과 탄압, 그리고 팬데믹으로 흔들린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부모와 조부모 세대에게 익숙한 전통 음식에서 진정한 영혼을 찾고자 결심했다. 호리푹에서의 식사는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전통이란 개념이 이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곳은 중국 땅 위에 세워진 영국 식민지의 산물이고, 자본주의의 중심이자, 오래된 것이 늘 새로운 것을 위해 해체되는 곳이다. 이소룡의 집조차 결국엔 호텔이 된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늘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홍콩의 방식이다. 제조업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한때 흔했던 ‘Made in Hong Kong’이 사라진 옛 공장 건물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고 부동산 가격이 천문학적인 이곳에서 지역 단체들이 일부 건물을 작업실과 모임 공간으로 점유한 것은 혁신적인 일이었다. 홍콩에 예술 창작 공간이 더 많아지자 많은 아티스트들이 탄생했고, 셰프도 그중 하나다.
아트 & 푸드
홍콩의 독립 예술 지구 섹깁메이(Shek Kip Mei)에 위치한 조키 클럽 창작 예술 센터(Jockey Club Creative Arts Centre)는 2008년부터 예술가의 작업실과 커뮤니티 단체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홍콩섬의 타이퀀은 과거 경찰서이자 교도소였던 공간을 2018년 예술 전시, 찻집, 공연장 등 다목적 공간으로 재개장했다. 한때 경찰 관사 단지였던 PMQ에는 글루 어소시에이츠(Glue Associates)와 인센스 하버(Incense Harbour) 같은 새로운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2021년에는 소장품 1만여 점을 자랑하는 미술관 엠플러스(M+)가 개관했다. 방문객은 갤러리와 옥상정원에서 영화 상영과 요가 수업을 즐긴다.
삼수이포(Sham Shui Po)의 분주한 시장에서 몇 분 거리의 조키 클럽 창작 예술 센터까지 걸어갔다. 옛 공장을 개조한 9층짜리 건물에는 홍콩 로컬 창작물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만난 아티스트 샘 루이(Sam Lui)는 “불만 있다면 어디서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밀함, 통제, 엄격함이라는 원칙에 매료된 루이는 처음엔 영화나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느 날 이런 요소가 웍 요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루이는 ‘웬디(Wendy)’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퍼포먼스 아트 형식인 ‘웬디스 웍 월드(Wendy’s Wok World)’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본격적인 변신을 위해 1년 반 동안 식당에서 훈련을 받았고, 이후에는 오직 웍 버너 하나만 놓인 스튜디오에서 수행자처럼 몰두하며 고난도의 기술을 연마했다. 웬디는 웍 앞에 서는 순간 거의 명상에 가까운 상태에 빠져들며 요리를 했다. 그는 요리를 하나의 공연처럼 펼쳤는데, 예를 들어 채소를 기름에 던져 넣으면 불꽃이 치솟는 볶음 요리라든지, 갓 수확한 계화를 연상시킬 만큼 곱게 부순 스크램블드에그 같은 요리를 만들었다. 그 몰입도는 혼자만 보기엔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을 초대해 하나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예술계에서 사랑받던 루이는 뜻밖에도 셰프와 음식 평론가에게도 그들 세계의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인디 래퍼 영 퀸즈(Young Queenz)는 루이를 주제로 한 노래 ‘Wendy’s Wok’을 발표했고,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프라이빗 키친’ 문화의 스타가 되었다.
예약이 가능한 요리의 변주를 원한다면, 지난해 세계 50대 레스토랑 순위에서 20위를 차지한 ‘윙(Wing)’을 주목할 만하다. 에메랄드빛 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공간에서 셰프 비키 청(Vicky Cheng)은 세계적인 미식가에게 ‘중식의 재창조’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중국의 8대 요리 전통(신선한 광둥요리부터 매운 사천요리까지)에서 영감을 받아 테이스팅 메뉴를 통해 자신의 중국 뿌리를 재해석한다. 모든 요리가 중국 요리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세련되게 변형되었다. 집에서 숙성한 피단은 전통적으로는 흑요석처럼 검고 알칼리성의 톡 쏘는 맛이 나지만, 이곳에서는 반투명한 황금빛이었다. 생선찜은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검은콩 소스와 함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생강과 파채 대신 바삭하게 튀긴 생강채가 수북이 올려져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요리는 단순한 청경채 볶음. 수십 포기의 청경채 잎을 하나씩 벗겨내 중심부 약 1인치만 남긴 다음, 웍에서 볶아 밝고 아삭한 식감을 살리고 불 향을 입힌 뒤, 옥색의 완벽한 동심원 형태로 정갈하게 배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청은 자신이 의도한 건 중국 음식의 재창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재창조라고 했다.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그는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뒤 홍콩으로 돌아와 자신의 프렌치 레스토랑 베아(Vea)를 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신이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동시에 중국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으며, 지역마다 진정한 대가가 즐비한 이곳에서 자신이 중국 레스토랑을 연다는 것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만들면 그들이 올 것이다(If you build it, they will come)”라는 말처럼, 그는 팬데믹 시기에 용기를 내어 윙을 열고, 늦은 밤까지 웍을 연습했다. 윙에서 그가 내놓는 요리는 전통적이지는 않지만, 맛에서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린 느낌을 준다. 전통을 위한 노력은 중국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안도(Ando)에서는 셰프이자 창립자인 아구스틴 페란도 발비(Agustin Ferrando Balbi)가 자신의 아르헨티나 전통과 일본에서의 경험을 접목하고, 에스트로(Estro)에서는 이탈리아 셰프 안티모 마리아 메로네(Antimo Maria Merone)가 홍콩식 납작 국수를 연상시키는 리본처럼 얇고 길게 썬 오징어 요리를 선보인다. 서울에서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모수(Mosu)는 엠플러스 미술관 안에 홍콩 지점을 운영 중이다. 홍콩의 어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맛을 원한다면, 홍콩섬에 있는 2층 규모의 압레이차우(Ap Lei Chau) 해산물 시장으로 향하자. 아래층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을 구매할 수 있고, 위층에서는 그 재료를 원하는 방식으로 바로 조리해준다.


홍콩의 오늘
홍콩은 콘크리트, 강철, 유리로 이뤄진 세계적인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도시가 얼마나 푸른지는 쉽게 잊히곤 한다. 전체 영토의 38%가 국가 공원으로 지정돼 있고, 가벼운 등산은 현지인이 즐기는 여가 활동 중 하나다. 홍콩 호텔의 핵심은 단연 전망이다. 리츠칼튼 홍콩은 서구룡문화지구타워 102층부터 118층을 차지하며, 약 100년의 전통을 지닌 유서 깊은 페닌슐라 홍콩에서는 침사추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로즈우드 홍콩과 상징적인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의 외관도 항구를 향해 있다. 올해 리노베이션 중에도 계속 영업한다. 애드미럴티 지역에 있는 호화로운 아일랜드 샹그릴라 홍콩과 세련된 어퍼 하우스에서는 바다뿐 아니라 초고층 빌딩 그리고 푸른 산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 나는 사이잉푼(Sai Ying Pun) 지역의 한 아파트에 머물렀다. 이 지역은 경사가 가파른 동네로,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까지 이어지는 룽푸샨 모닝 트레일(Lung Fu Shan Morning Trail)로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길이긴 하다. 한 시간 정도 등산한 후 하이 웨스트 마운틴(High West Mountain)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상에 도착해 바라본 풍경은 나를 정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쪽에는 성냥갑처럼 줄지어 늘어선 고층 건물이 펼쳐진 웅장한 스카이라인이 있었고,
그 뒤로는 구불구불한 주룽산맥이 안개 속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끝없이 푸른 바다 위로 솟아오른 홍콩섬 남쪽 해안이 있었고, 배들은 혜성의 꼬리 같은 흔적을 남겼다. 내 가족은 항상 홍콩에 “돌아간다”고 말하지, 단순히 “간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을 진정으로 보기 위해, 이곳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리고 이곳의 일부가 되기 위해 왔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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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FRANCIS LAM
- 포토그래퍼
- TOM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