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는 풍경이 스페인 남부에 있다. 하몽 포장지와 라벨 뒤에 숨은 이베리코 돼지의 지속 가능한 생산 방식을 좇았다.



BEHIND THE LABEL
스페인 남부 시에라모레나 산맥에 있는 로사 곤살레스 니에토(Rosa Gonzalez Nieto)의 돼지 농장 풍경은 축산업의 선입견을 뒤엎는다. 현대의 가축 사육 시설은 종종 참혹한 환경으로 악명 높지만, 이베리코 돼지고기 생산은 예외다. 초원은 생기 넘치는 초록빛으로 물들었고, 울창한 나무가 완만한 언덕을 배경으로 높이 솟았다. 이곳에서는 자연환경을 보호함과 동시에 의존하며, 동물에게 좋은 생활 환경을 제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식재료를 생산한다. 6000여 년 동안 인간의 섬세한 손길로 완성한 이곳의 생태계는 ‘돼지 농장’이라는 단순한 단어로만 표현하기는 어렵다.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반건조 지형에서 살아남으려고 이 지역 사람은 지중해 숲을 데에사(Dehesa), 즉 상록 참나무가 자라는 초원으로 변모시켰다. 그렇게 완성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가축을 기르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됐다. 스페인 사람에게 이베리코 하몽은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 리오하(Rioja) 레드와인, 돈키호테의 풍차처럼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누가 뭐래도 데에사의 주인공은 이베리코 돼지다. 니에토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농장을 물려받았다. 현재 그는 전업 수의사로 동물을 정성스럽게 키우는 데 전념하고 있다. 이 강인한 돼지는 스페인 고유 품종으로,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와 풀을 스스로 찾아 먹으며 완전한 방목 환경에서 사육된다. 이들의 유전적인 특성과 활동량, 식습관은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단맛이 혀끝에 감도는 뛰어난 마블링의 고기가 된다. 이곳의 주인공은 이베리코 돼지이기는 하지만, 농장 곳곳에서 다양한 동식물을 마주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복잡하게 얽힌 생명의 그물을 형성하고 있다. 땅에서 솟은 버섯, 꿀을 만드는 벌, 작은 무리의 양과 소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이들은 과도한 녹지를 줄여 화재를 예방하고, 돼지가 자유롭게 다니는 초지 환경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농장의 진정한 주역은 바로 울창한 나무다. 돼지의 먹이인 도토리를 생산하는 것 외에 위풍당당한 참나무는 무더운 여름날 그늘을 제공하고 토양의 수분을 유지해 풀이 자라도록 돕는다. 최대 20m까지 자라는 나무 옆에 서면 절로 겸손해진다. 코르크나무는 200년의 생애 동안 10년마다 겉껍질을 벗겨내도 나무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껍질을 채취한 코르크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최대 5배 많은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2014년 스페인 정부가 이베리코 돼지고기 생산과 관리를 위해 엄격한 라벨링 제도를 도입했을 때, 이들이 진정으로 보호하려고 한 건 데에사의 자연적인 풍요로움이었다. 총 4가지로 분류된 라벨 중 가장 높은 품질 등급인 블랙 라벨은 이베리코 순종 돼지가 방목 환경에서 도토리를 먹고 자라며, 마리당 최대 2에이커(약 8100㎡) 규모의 농장에서 사육됨을 뜻한다. 레드 라벨은 돼지가 이베리코 품종의 50%만 물려받아도 주어진다. 그린 라벨은 방목의 범위가 줄어들고, 사료 급여가 허용됐음을 의미한다. 화이트 라벨은 실내에서 사육되며 사료만 먹고 자란 돼지를 일컫는다. 코르도바(Cordoba) 대학교 유기축산센터의 책임자 비센테 로드리게스-에스테베스(Vicente Rodriguez-Estevez) 박사에 따르면, 블랙 라벨과 레드 라벨 방식은 동물복지뿐 아니라 환경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
“방목형 돼지 사육은 동물의 식단과 토양에 저장되는 탄소 덕분에 실제 탄소 배출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합니다.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돼지 사육 방식인 셈이죠.”
니에토 농장의 돼지가 성체로 자라면 스페인에서 블랙 라벨 이베리코만 전문으로 생산하는 고급 하몽 제조업체 중 하나인 싱코 호타스(Cinco Jotas)에 판매된다. 이 업체는 돼지의 유전적인 품종과 식단을 철저히 관리하며, 마리당 필요한 생활 공간을 정부 기준의 2배 이상으로 책정했다. 철저한 기준 덕분에 싱코 호타스는 고급 이베리코 하몽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하부고(Jabugo) 마을에 있는 싱코 호타스의 하몽 숙성 저장고를 방문한 후 나는 이 회사의 이베리코 하몽 ‘마스터 커터’ 중 한 명을 만나 명품 하몽을 제대로 써는 방법을 배웠고, 이베리코 하몽과 초리소, 기타 샤퀴테리를 오스본 셰리(Osborne Sherry)와 리오프리오(Riofrio)에서 생산한 유기농 캐비아와 함께 즐기는 시식을 경험했다.
그날 저녁에는 곤살레스 니에토와 아라세나(Aracena) 마을의 루세스 가스트로바르(Russes Gastrobar)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놀랄 만큼 바삭하게 튀긴 돼지 귀 요리와 약간의 채소 요리까지 곁들인 이베리코 돼지고기 요리를 맛보며, 그는 자신의 농장이 어떻게 사랑이 깃든 노동의 결실이 되었는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우리가 키우는 동물 수는 매우 적지만 지출은 정말 커요.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우리 같은 소규모 농가는 사라지고 말 거예요”라며 이베리코 돼지를 하나의 ‘럭셔리’로 대우하고, 그 생산과정의 사회적환경적 혜택을 경제적 가치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 라벨은 맛과 식감이 뛰어나지만, 사실 일반 소비자가 이를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느끼기는 어렵다. 싱코 호타스 웹사이트를 둘러보면, 85g의 하몽 슬라이스 한 팩이 49달러에 판매된다. 하지만 데에사를 방문해 돼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이 산업이 보존하는 풍경을 경험하면 값싼 제품의 가격표 이면의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싱코 호타스의 생물학자 마리아 카스트로 베르무데스-코로넬(Maria Castro Bermudez-Coronel)은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자연을 누리고 싶다면 더 나은 방식의 목축과 농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음식을 몸에 넣고 싶은지, 어떤 지구에 살고 싶은지를 결정해야죠.”
현지에서 경험하는 이베리코 농장 투어
싱코 호타스(Cinco Jotas)
싱코 호타스는 세비야(Seville)에서 약 70마일(113km) 떨어진 하부고에 위치한 본사에서, 목장과 숙성 저장고 방문, 시식, 그리고 하몽 써는 방법에 대한 레슨을 포함한 다양한 가이드 체험을 제공한다. 셰리(Sherry) 페어링 요청도 가능하다.
미오1898(MIO 1898)
미오(MIO) 1898은 코르도바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의 로스 페드로체스(Los Pedroches)에 본사를 두고 있다. 수의사이자 2018년 ‘지속 가능한 젊은 농부상’을 받은 라파엘 무뇨스(Rafael Munoz)가 공동 설립한 이 회사는 ‘토르비스칼(Torbiscal)’이라는 특정 품종의 이베리코 돼지를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번식 시설과 돼지 농장 방문, 시식이 포함된 맞춤형 투어를 할 수 있으며, 데에사 농가에서의 숙박도 가능하다.
라 움브리아(La Umbria)
세비야와 말라가(Malaga) 사이에 있는
라 움브리아는 과거 다양한 라벨로 하몽을 생산했지만, 몇 년 전 100% 블랙 라벨 생산으로 전환했다. 이 농장은 유기농 인증을 획득했고, 가이드 투어에는 목장 방문과 하몽, 샤퀴테리, 파테, 치즈, 유기농 과일과 와인 시식이
전부 포함된다.
- 글
- SOFIA PEREZ
- 포토그래퍼
- JOSE SALTO, ALFREDO PIOLA, SUSANA GONZAL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