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 현지인이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맛집은 골목마다 숨어 있다. 세계적인 푸드 칼럼니스트 톰 파커 볼스와 셀러브리티 셰프 데이비드 톰슨을 따라가보길.


AMAZING BANGKOK
새벽 2시 15분, 셰프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pson)과 나는 방콕에서 한두 시간 떨어진 암파와(Amphawa) 근처, 라마 2세 기념 공원에 있었다. 이곳에서 제자들이 인간과 신의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는 태국의 고대 의식인 ‘와이 크루(Wai Khru)’를 지켜볼 예정이다. 태국에서 음식은 단순한 한 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은 태국을 진정으로 통합하는 유일한 힘이자, 가장 민주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절대 태국 사람의 점심시간을 방해하지 마세요.” 톰슨이 말한다.
암파와의 새벽 의식
따뜻한 바람이 열대 밤의 풍요로운 푸른 향기를 실어 나르는 가운데, 커다란 웍이 놓여 있고, 한쪽에는 사프란색 승복을 곱게 입은 승려들이 모여 있다. 갑자기 불협화음을 내며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최면을 거는 듯한 찬트가 시작된다. 새벽 2시 19분, 가장 길하다고 여기는 시각에 웍에 불이 붙고, 사원의 수장이 엄숙하게 기버터 한 덩이를 떠서 넣는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자, 신성한 쌀인 ‘카오 그라바사트(Kao Gravasart)’의 요리가 시작된다. 우유가 팬에 더해지고 코코넛 크림, 꿀과 설탕이 팬에 차례로 추가되며 달콤한 냄새가 주위를 감싼다.
이 모든 것은 톰슨이 보낸 이메일에서 시작되었다. “제 파트너, 타농삭 욧와이(Tanongsak Yordwai)가 가네샤와 시바 신을 중심으로 한 고대 브라만교 의식인 와이 크루를 되살리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욧와이 역시 셰프다. 길고, 날렵하며 매운 고추처럼 톰슨과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톰슨은 와이 크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와이 크루는 단순히 요리를 넘어 문화적·영적 요소와 태국의 신념과 전통이 담긴 독특한 의식입니다. 우선은 방콕에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기로 하죠.” 의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두 사람과 먹고 마실 생각에 더욱 설렜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최초의 태국 레스토랑 ‘남(Nahm)’을 연 톰슨은 태국 요리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두 번째 저서인 <타이 푸드(Thai Food)>는 그야말로 걸작이다.
오전 9시 9분, 마침내 본격적으로 시작된 와이 크루는 가톨릭에서 멀어진 내게도 어딘가 익숙한 의식이다. 축복을 빌고, 제물을 올리는 가운데 오케스트라가 가네샤와 시바 신을 하늘에서 소환하는 연주를 한다. 고대의 리듬에 검무가 펼쳐진다. 꽃과 향, 촛불, 신에게 바칠 달콤한 간식, 가지 꽃, 칼, 그리고 정교하게 조각된 음식까지. 제물이 계속해서 올려지고, 그 하나하나가 고유한 상징을 지닌다. 나는 북소리의 원초적인 울림 속에 몸을 맡긴다. 요리사는 경의를 받고 신들도 경의를 받는다. 브라만이 신성한 소라 껍데기를 불자 주문이 풀린다. 요리와 삶. 브라만과 불교. 이 세계와 다른 세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정교하고도 오묘한 완전체로 녹아든다.
다시 방콕으로
지난 몇 년간 우리는 태국 전역을 누비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또 먹었다. 북쪽 치앙마이에서는 거칠고 정글 같은 시골 맛을 경험했고, 남쪽에서는 매운맛에 익숙한 사람조차 버티기 힘든 강렬한 음식을 맛보았다. 그리고 다시 방콕과 중부 평야로 돌아왔다. “이곳의 음식은 풍요롭고 다양하며, 가장 복합적이죠.” 톰슨이 말한다. 다음 며칠간 우리는 끝없는 교통체증을 뚫어주는 스쿠터 택시를 타고 시내 곳곳을 누볐다. 점심으로는 오랜 세월 변함없는 차이나타운에서 술에 절인 닭고기와 소금에 절인 생선 요리를 맛봤다.
톰슨이 방콕식 중국 음식을 선보이는 찹찹쿡샵(Chop Chop Cook Shop)에 들렀다. “면은 중국에서 왔고, 볶는 방식도 중국 기술이죠. 대부분의 길거리 음식도 중국에서 들어왔어요. 태국인은 다른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능숙해요. 모든 것을 태국식으로 재해석하죠.” 녹두를 곁들인 게 요리와 새콤한 연 줄기 오렌지 커리를 맛본 후, 1940년대와 50년대, 60년대 요리책을 바탕으로 구성한 메뉴를 선보이는 악손(Aksorn)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곳의 요리는 ‘남’의 요리보다 덜 강렬하고 더 정갈하면서도 여전히 훌륭하다. 저녁 식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넓고 반짝이는 차오프라야 강변에 앉아 차가운 싱하 맥주를 마시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메기를 지켜보았다.
오후에는 오래된 운하인 끌롱(Klongs)을 따라 시간을 보냈다. 햇볕을 쬐는 왕도마뱀, 투박한 콘크리트 아파트, 반쯤 무너진 나무 오두막들을 지나쳤다. 이따금 노른자처럼 노란색 사원이 나타났고, 디젤 연기와 식용유 그리고 담배 연기가 플루메리아 꽃향기에 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녁 식사를 위해 들른 끌롱 끝자락에 자리한 반 플로엔 디(Baan Ploen Dee)를 찾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통째로 튀겨 영원히 화난 듯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가물치 한 마리를 맛봤다. 뼈에서 달콤한 살을 발라내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었다. 스피커에서는 태국 노래가 울려 퍼지고, TV에서는 축구 경기가 흘러나왔다. 그 후 우리는 포시즌스 호텔의 안락한 공간으로 돌아와 파파야 샐러드인 솜땀을 먹어 치웠다.
유명한 수상시장이 있는 매끌롱 강변의 암파와로 향하는 길, 창밖에는 수 마일에 달하는 햇볕에 바랜 흰 소금 평원이 펼쳐진다. 바다와 강에서 잡히는 훌륭한 생선과 리치, 망고, 코코넛 등이 넘쳐난다. 점심은 ‘매분미 누들스’의 국수를, 저녁에는 매끌롱강 위에 자리한 작은 불빛으로 뒤덮인 찰삼란(Chalsamran)에서 불과 몇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강에서 잡은 민물새우를 먹었다. 고추와 함께 볶은 게알, 인어의 한숨처럼 섬세한 수프, 생선 커리 등 음식이 정말 놀랍다. “태국인은 맛있는 곳을 탐하죠.” 욧와이가 말한다. 방콕에서의 사흘 동안 맛없거나 지루한 음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 가봐야 할 곳
참강 커리 숍(Charmgang Curry Shop)
데이비드 톰슨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남 출신 셰프들이 태국 전통 레시피에 대한 열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인다. 페니워트를 곁들인 훈제 킹피시나 소 볼살을 넣은 파낭 커리처럼, 훌륭한 요리와 좋은 와인 리스트도 준비되어 있다.
나이 몽 호이 톳(Nai Mong Hoi Thod)
번화한 차이나타운 뒷골목의 이 작은 식당은 30년 된 레스토랑이자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맛집이다. 이곳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굴 오믈렛 때문. 달걀을 타피오카 가루와 섞어 숯불로 달군 웍에 뜨거운 돼지기름을 넣고 익힌다. 노릇노릇해지면 신선한 굴을 듬뿍 얹어 몇 초간 더 익혀낸다. 쫄깃하고, 바삭하며, 우아하면서 탄탄한 이 음식은 달콤한 칠리소스를 곁들여 다섯 입 만에 끝낼 수 있는 별미다. 기름기 가득한 미소는 덤이다.
임임(Yim Yim)
차이나타운 중심부에 자리한 소박한 조주식 레스토랑으로 80년 넘게 한결같이 손님들을 맞이해왔다. 바닥은 흰색과 녹색 리놀륨 바닥, 진홍색 천으로 덮인 테이블이 옛 홍콩 식당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명물은 피자처럼 조리해 바닥은 촉촉하고 윗면은 바삭한 면 요리다. 잘게 다진 햄을 듬뿍 올린 이 요리는 고칼로리임에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크루아 압손(Krua Apsorn)
창립자 댕의 음식은 너무 훌륭해 별세한 왕비의 왕실 요리사로 고용되었다. 미쉐린 빕 구르망에도 선정된 이곳의 대표 메뉴는 기름지고 폭신한 게 오믈렛, 연 줄기가 들어간 새콤한 노란 커리, 양파와 달걀을 곁들인 발효 돼지고기, 생선 완자가 들어간 그린 커리다.
악손(Aksorn)
옛 서점 위층에 자리한 데이비드 톰슨의 새 레스토랑. 1940~60년대 초의 방콕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옛 시암에서 현대 방콕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맛을 담아냈다. 쌉싸름한 여주와 함께 찐 돼지갈비 같은 묵직한 요리, 그리고 강 새우와 그린 파파야를 넣은 새콤한 오렌지 커리처럼 맛과 식감, 구성의 완벽한 균형이 돋보인다.
반 플로엔 디(Baan Ploen Dee)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은 이곳에선 선풍기 아래 앉아 배들이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새콤하고 향긋하며 맑고 깔끔한 수프가 일품이다. 통째로 튀긴 가물치 한 마리에 볶은 쌀가루를 뿌려 제공하는 메뉴를 맛볼 것. 모든 음식은 신선하고, 깔끔하며, 뜨겁게 제공된다.
매분미 누들(Maeboonmee Noodles)
약 1800원에 최고의 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추천 메뉴는 똠얌 국수. 돼지고기 육수에 구운 돼지고기, 다진 돼지고기와 간이 들어 있다. 바삭한 돼지 껍질 튀김을 추가하면 고소한 식감까지 즐길 수 있다.
찰삼란(Chalsamran)
매끌롱 강변에 자리한 목조 레스토랑으로, 라이브 음악이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에서 갓 잡은 거대한 새우튀김 마늘 볶음, 연두 콩과 노란 고추, 하얀 게살 덩어리를 가미한 게알 볶음 그리고 감동을 자아내는 섬세한 수프까지. 단순하면서도 전통적인 맛이 조화를 이룬다.
- 글
- TOM PARKER BOWLES
- 포토그래퍼
- CHRIS SCHALK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