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LEVEL / 김소연
도전은 양날의 검과 닮았다. 성공과 실패, 그게 어느 쪽이든 배우 김소연은 그 칼을 들어 용감하게 휘두른다.

원피스는 골든구스(Golden Goose).

톱은 빠투(Patou). 팬츠는 리바이스(Levi’s). 슈즈는 질 샌더(Jil Sander).

톱은 1017 알릭스 9SM 바이 분더샵(1017 Alyx 9SM by Boontheshop).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레스는 지방시(Givenchy). 부츠는 차하야(Cahaya).

톱은 미우미우(Miu Miu). 팬츠는 세터(Satur). 부츠는 차하야.
<구미호뎐 1938>(이하 <구미호뎐>) 마지막 방송이 이제 1시간밖에 남지 않았어요. 기분이 어때요?
마지막 방송이라니! 12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대본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던 회차거든요. 글이 참 좋아서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요.
어떤 장면에서 그렇게 울었어요?
홍주 곁을 충실히 지키던 재유(한건유 분)가 귀소목 수액에 맞아 위험에 처해요. 그를 구하러 가는 홍주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장면은 촬영하면서 너무 슬펐어요. 이연(이동욱 분)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읽을 때도 펑펑 울었고요. 텅 빈 이연의 방을 바라보며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너무 나서 테이크를 다시 가기도 했어요. 현재로 돌아가는 연이와 이별을 앞두고 홍주와 연이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장면에서는 저와 동욱 씨 모두 눈물을 닦으며 촬영했고요.
홍주는 이연에게 집착하는 듯 보이죠. 품었던 감정은 뭘까요? 사랑? 연민?
가족애요. 홍주에게는 천무영(류경수 분)과 이연이 가족 같은 존재였을 거예요. 표면적으로는 ‘내 거’라고 표현했지만, 그 둘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사무치게 외로웠던 시간이 걷혔을 거예요.
매회 본방 사수를 했나요?
그럼요. 사전 제작을 하면 이런 장점이 있더라고요. 반면, 12부작이라서 준비하고 촬영한 기간에 비해 너무 빨리 헤어지는 것 같아 아쉽고 서운해요. 작년 한 해 정말 열심히 촬영한 작품이거든요.
촬영 기간이 꽤 길었나봐요?
9~10개월 촬영했어요. 캐스팅 후 4~5개월은 준비 기간이었고요. 작년 한 해 <구미호뎐>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후반 작업이 많아 촬영한 배우도 시청자 입장에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깜짝 놀랐어요. 판타지물이 처음이거든요. 파란 크로마키 앞에서 촬영하는데 초반에는 “이게 맞나요? 제대로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죠. 어떤 날에는 유튜브로 마블 시리즈의 NG 장면을 찾아봤어요.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익숙해지고 나서는 재미있게 즐겼어요. 언제 또 와이어를 타고 그렇게 하늘을 날아보겠어요.
기술의 힘을 크게 실감한 장면은 뭐였어요?
열차 싸움 신요. 도움이 돼야 하는데, 혹시나 작품에 폐가 될까 걱정했거든요. 후반 작업이 더해진 방송을 보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배역을 맡으면 인물의 자서전을 쓴다고 했어요. 홍주는 어떤 서사를 상상했어요?
홍주는 탈의파에 의해 산신 훈련을 받으면서 우정 하나로 혹독한 시간을 견뎠어요. 이후 집으로 돌아가 아사한 동생들의 시신을 마주하죠. 첫 미팅에서 감독님, 작가님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어떤 가정에서 자랐을까’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었을까’ ‘동생들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에 대해 생각했어요.
김소연이 본 홍주는 어떤 사람이에요?
솔직해요. 앞뒤가 같은 사람이고요. 주변 사람을 챙기는 모습은 홍주의 가장 큰 매력이죠.
<펜트하우스> 천서진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인물이 류홍주예요. 같은 듯 달라서 고민하는 지점은 없었어요?
둘 다 강렬한 욕망을 품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결이 달라요. 홍주에게는 천서진한테 없는 사랑과 동료애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부각하려고 했어요. 외적인 면에서도 화려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미호뎐>은 판타지이고 시대가 다른 만큼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열린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홍주와 어울릴 아이템과 이미지를 모두 모아 스크랩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도 했었죠.
그 노력의 결과인가요? 방영 전부터 싱크로율이 화제였어요.
우리 스태프의 승리예요. 현장에 가면 1시간 반 정도 헤어를 하고 옷과 액세서리 스타일링에 30분, 메이크업도 최소 1시간 이상 했어요. 한 컷을 찍더라도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 반 정도 준비해요. 스태프가 신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하기도 했죠. 그 시간 동안 저 역시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제일 많이 들은 노래는 뭐예요?
안예은의 ‘홍연’요.
‘예쁜데 앙칼진 년’이라는 대사가 그렇게 완성됐군요.
그 대사 너무 좋아요! 홍주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히 드러나는 대사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홍주처럼 할 수 있을지 수백 번 연습했을 정도로 욕심난 대사였어요.
촬영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홍주에게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이별할 때 많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아직 못 보냈어요. 집에 연기 연습을 하는 책상이 있는데, 아직 홍주 사진과 모아온 포트폴리오, 홍주를 표현함에 있어 주의할 요소, ‘어떤 부엉이가 되자’ 하는 다짐을 적은 메모가 붙어 있어요. 최근에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힘들더라고요. 오늘 마지막 방송을 보고 다시 시도해야죠. 저는 홍주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왜 그렇게까지 애정하나요?
홍주 같은 인물을 제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갈수록 전작들이 고마워요.
<펜트하우스> 이후 김소연을 두고 ‘제2의 전성기’ ‘연기 인생 3막’ 같은 표현을 해요. 동의해요?
쑥스럽지만 감사하죠. 힘들거나 좌절할 때 이겨내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할 에너지가 돼요. 작품을 선택할 때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그 누구보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됐어요. 제 기억 속 김소연 배우는 마냥 예쁜 언니였거든요.
과거에는 도전을 성공, 실패라는 이분법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려웠는데 어느 순간 과정을 즐기고 있더라고요. 과정의 치열함을 견딘 후에 오는 만족감, 후회 없음을 경험하고 나니 도전이 두렵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지 모르지만, 이후로도 이런 마음으로 도전을 계속하고 싶어요. 도전에 기꺼이 몸을 내던지면서 그 과정에서 배우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거든요.
예전에도 마찬가지던데요. 인터뷰 준비를 하며 유물을 발견했어요. 2012년 <얼루어> 화보 기억해요?
단발에 호피 무늬 의상을 입었어요.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가 주제였거든요.
정확해요! 그 당시 선배 기자의 원고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사진 한 장을 촬영하기 위해 진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 보내준 시안으로 만족할 수 없어 두세 번 영화를 보고 자신의 것으로 꼭꼭 삼켜 그 감정을 숨 쉬듯 내뱉었다’.
으앗! 너무 감사합니다. 그랬어요 그때.
매 순간 어떤 활동이든 이렇게 과몰입할 수 있는 비결이 뭐예요?
어느 순간부터 거창한 목표가 없어요. ‘내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번 신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오늘, 지금만 생각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결과물의 완성도도 좋아지는 것 같고, 스스로 집중하는 시간도 생기는 것 같아요.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진짜 김소연’의 모습에는 또 뭐가 있어요?
저는 연기하는 배역 그 자체로 있고 싶어요. 방송 기간이나 시간만이라도 김소연은 잊히고 캐릭터만 남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제 모습이에요. 가장 기분 좋은 댓글도 ‘배역에 찰떡이다’ 같은 말이거든요.
요즘처럼 작품을 기다리는 시기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요?
7시쯤 일어나 아침을 간단하게 챙겨 먹고, 드라이브를 하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요.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웹툰을 보기도 해요. 그야말로 무탈한 하루를 보내요. 생각에 잠기기도 해요. 일상의 루틴처럼 일정 시간은 꼭 필요한 활동이죠.
요즘은 무슨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까지 했던 작품이 자꾸 생각나요. 특정 인물이나 장면을 생각하면서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홍주도 마찬가지예요. 방송을 보면 몇 시간 동안 잠을 못 자요. 만약 다른 느낌으로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다시 곱씹어 봐요.
후회하다 보면 괴롭지는 않아요?
결국 자산이 되더라고요. 후회와 아쉬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걸 딛고 일어서야 다음이 있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어요. ‘내가 왜 그렇게 했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니 괴롭지 않아요.
완연한 여름에 떠나고 싶은 곳은 없어요?
집에 내내 있고 싶어요.
집이 그렇게 좋아요? 도대체 왜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밖에 없어요.(웃음) 작품이 끝나면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데,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제일 좋아요.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떠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요. 현장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도 일종의 여행인 것 같아요.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났어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싶어요?
요즘은 촬영이 정해져도 몇 달 정도 준비 기간이 있잖아요. 좋은 작품을 만나 남은 한 해를 그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벌써 도전 의식에 한껏 불타요.
- 에디터
- 김정현
- 포토그래퍼
- YOON SONG YI
- 스타일리스트
- 김다현
- 헤어
- 수안(애브뉴 준오)
- 메이크업
- 오지현(애브뉴 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