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재하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위풍당당한 그의 질주. 

재킷은 써저리(Sur8ry).

슬리브리스는 호이테(Heute). 진은 써저리. 슈즈는 SMFK. 목걸이는 거스큐(Gus Q).

셔츠와 팬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부츠는 캠퍼(Camper).

재킷과 팬츠는 발렌티노(Valentino). 슈즈는 후망.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더 프라이드 학원’(<일타스캔들>)을 퇴사하고 ‘무지개 운수’(<모범택시2>)에서 또 어떤 꿍꿍이를 벌이고 있나요?
어디까지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웃음) 이 인터뷰가 나갈 때면 제 정체가 공개되었을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두 작품의 방영 시기가 겹치면서 지동희 이후 <모범택시2> 속 제 모습이 다 수상해 보이나 봐요.

두 작품 모두 10%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어요.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나요?
이렇게까지 피부에 와닿는 건 처음이에요. 함께 작업한 감독님, 작가님, 스태프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잘 보고 있어’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돼? 뭐야?’ 하는 격한 반응이라 얼떨떨해요.

인스타그램 계정의 댓글 반응도 굉장히 격정적이던데요.
깜짝 놀랐어요! 많은 분이 동희의 엔딩을 아쉬워하시더라고요.

동희가 참회하고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심성이었는데.
종영 후 저희끼리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동희의 엔딩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죠.

<일타스캔들> 마지막 화는 동료들과 함께 시청했나요?
감독님, 작가님, 출연 배우들 다 같이 봤어요. 저는 16회에 나오지도 않는데, 방송 보면서 몇 번을 울었어요. 아직도 작품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메이킹 필름을 보면 현장 분위기가 유독 좋아 보이던데요?
너무, 너무 좋았어요. 좋은 현장을 만나는 것도 운인데, 올해 쓸 행운이 전부 쏟아진 것 같아요. <모범택시2>는 시즌1에서 합을 맞춘 팀이라 그 호흡 속에 제가 들어가야 했어요. 부담이 컸는데, 다들 제 고민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신경 써줬어요. <일타스캔들>은 배우로서 많은 것을 배운 현장이에요. 그 바탕에는 전도연, 정경호 선배님들의 배려가 있었죠.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모든 순간 후배들을 배려해주셨거든요.

어떤 식의 배려였어요?
항상 괜찮으냐고 물어보세요. 동선을 하나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해도 호흡 괜찮아?’ ‘나 이렇게 해도 될까?’ 함께 연기하는 배우는 물론 카메라, 조명 스태프 모두와 호흡하시더라고요.

완벽히 준비된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인 것 같아요.
맞아요. 그게 선배들의 저력이에요.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사실 전역 후 첫 작품이라 연기를 하는데 많이 헤맸거든요. 감을 잃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제대하고 카메라 앞에 섰는데 연기를 어떻게 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거예요. 촬영 초반 몇 개월간은 현장에 가는 게 힘들었어요. 첫 촬영을 하고는 완전히 멘탈이 나갔고요.

첫 촬영한 신이 뭐였어요?
1회에 최치열(정경호 분) 선생을 픽업하고 차에서 내리는 장면이었어요. 경호 형이 대사를 던지면 “괜찮아요. 전 그냥 택시 타고 다니는 게 편해요”라고 대답만 하면 됐죠. 정말 별것 없는데 차에서 내려 가방을 메고 대사를 치고 빠지는 모든 순간이 어색하더라고요.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죠. 스물한 살부터 쉬지 않고 작품을 해왔는데 너무 낯선 감각이었어요.

당황스러웠겠어요. 감이 돌아오는 데는 얼마나 걸렸어요?
완전히 익숙해졌다, 돌아왔다고 인정할 수 있는 건 엔딩을 찍을 때였어요. 지동희의 거짓말이 들통나던 즈음 드디어 감각이 돌아왔어요.

조급하지는 않았나요?
조급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어요. 더 솔직히 말하면 고민할 여유도 없었고요. <모범택시2>와 <일타스캔들>을 동시에 찍었거든요. 3개월간 쉬는 날 없이 촬영했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됐죠. 딴생각할 틈 없이 대본만 보고 현장에서 부딪쳤으니까요.

두 작품의 대본을 군대에서 처음 봤다고요. 제대 무렵 러브콜이 쏟아진 셈인데 기분 좋았죠?
너무 행복했죠! 당시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이제는 군대에서도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일과 시간이 끝나고 전원을 켰는데, <일타스캔들> 대본이 와 있더라고요. 대표님과 통화하고 너무 좋아서 소리 질렀어요. 전도연, 정경호 선배가 출연한다는 걸 보고 바로 출연을 결심했어요. 미복귀 전역으로 휴가 나온 뒤 이틀 후에 바로 제작진과 미팅을 진행했어요.

 

189 티셔츠는 이자벨마랑 옴므(Isabel Marant Homme). 팬츠는 마틴플랜(Martin Plan). 슈즈는 후망(Humant). 링과 브레이슬릿은 우영미(Wooyoungmi). 목걸이는 거스큐.

슬리브리스는 호이테. 링과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쉬지 않고 활동했던 지난 10년도 스쳐 지나갔을 것 같아요. 어땠어요?
20대 초반에 세운 목표가 ‘군대 다녀와서 쉬지 않고 작품할 수 있을 정도만 입지를 굳히자’였어요. 그거 하나면 내 20대는 잘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열심히 쌓아온 지난 10년이 의미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했어요.

앞으로 10년 뒤를 그리는 미래도 있나요?
전도연 선배님이 저보다 스무 살, 경호 형이 저보다 딱 열 살이 많아요. 저는 <일타스캔들> 현장에서 두 분을 보고 제 목표를 정했어요. 제가 선배들의 나이쯤 되었을 때 저분들만큼만 현장에서 할 수 있다면 커리어를 잘 쌓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현장에서의 애티튜드는 물론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 싶을 정도로 내내 감탄했어요.

여전히 뜨겁네요. 처음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였어요?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봤어요. 제 인생에서 뮤지컬이라는 예술을 처음 본 날이었죠. 무대의 모든 광경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날 이후 저런 무대 위에 오르는 일을 하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 예고에 진학한 친구를 보고 1학년 여름쯤 말씀드렸어요. 예고에 편입하고 싶다고요.

그렇게 갑자기요? 전국 모의고사 성적 상위 1%대의 아들이 갑자기 그런 말을 했으니 부모님이 많이 놀라셨겠어요.
당시 예고에 재학 중인 친구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절친이었어요. 그 친구가 학교 얘기를 하면 엄청 재미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쟤도 하는데 나도 하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아! 그 모의고사 성적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예고 편입 시험을 위해 부모님이 내건 조건이었어요. 열심히 하긴 했지만 진짜 운이 좋았죠.

배우를 해야 할 운명이었나 봐요. 이후 예대까지 진학했으니 탄탄대로였네요?
모든 게 쉬웠어요. 그런데 이게 20대를 처절한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보낸 이유이기도 해요. 연기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거든요.

2014년 데뷔 이후 한 해도 쉬지 않았던 건 연기가 좋아서만은 아니었나 봐요.
조금이라도 쉬면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쉬지 않고 달린 거예요. 현장에서 처음으로 ‘내가 못할 수 있는 게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평가받을 게 대학교 입시, 수업밖에 없었고 아쉬운 결과는 없었거든요. 그때 충격이 너무 커서 이겨내고 싶은 욕심이 들었고 덩달아 불안해졌어요. 엄청 채찍질하면서 닥치는 대로 오디션도 보러 다녔어요. 백 몇 십 번까지 셌는데, 그 뒤로는 세지도 않았어요. 그때가 스물넷 정도였으니 징글징글하게 봤네요.

숱한 오디션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끝나고 나올 때 제가 뭘 잘했고 뭘 못했는지를 꼭 물어봤어요. 장점은 눈빛과 목소리가 좋다는 것. 단점은 목소리 톤이 한정적이라는 것. 그게 다양한 역할을 맡을 때 제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피드백을 인정했나요?
타당한 피드백은 수용해야죠. 좋은 목소리를 물려주신 아버지께는 감사하지만 저 역시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은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전히 불안을 동력 삼아 달리나요?
요즘은 달라요. 내 30대는 정말 행복하게 즐기면서 연기 활동을 하자 싶었어요. 제대 후 연기 감을 잃었을 때도 20대의 저라면 불행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을 텐데 이번에는 극복, 재미라는 단어가 생각나더라고요. 아시겠지만 군대에 가면 생각할 시간이 정말 많아요. 많은 생각을 하며 내린 결론이에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어쩌면 정말 소소할 수 있는데요, 입대할 때 제 목표가 딱 하나였어요. 몸을 키워서 나오자. 체격 자체가 왜소하고 살이 질 안 붙는 체질이라 살면서 70kg을 넘은 적이 없거든요. PT나 식단을 체계적으로 할 수 없는 환경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웬걸 그게 되더라고요! 평생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산 하나를 넘고나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지금도 유지하고 있나요?
무작정 벌크업을 하다 보니 근육과 지방이 섞여서 카메라에 비친 모습이 부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뺐죠. 전역할 때 74~75kg이었고, 지금은 65~68kg 정도예요.

차기작은 결정했나요?
여러 작품을 보고 있어요. 2월 첫째 주 딱 이틀 차이로 두 작품의 촬영이 끝났는데, 그 뒤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보냈어요. 귀차니즘이 심해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했죠. 영화 보고 등산 가고 친구 만나고.

요즘 친구들 만나면 무슨 얘기를 많이 해요?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는 나이인가 봐요. 친구들 대부분이 연기나 뮤지컬을 하거든요. 20대에는 열정으로 버텼는데 30대에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나 그런 얘기요.

재하 씨의 현실적인 고민은 뭐예요?
특별히 없어요.  요즘 무척 행복하거든요. 2023년 목표도 확고해요. 지금 이 마음을 유지하는 것. 불안함 없이 즐겁게 일하는 이 기운을 유지하는 거예요. 이걸 장착하기까지 10년이나 걸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