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침대에 누워 화장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도착하는 세상. 화장품 배송에 사활을 건 이커머스 플랫폼의 속도전이 흥미롭다. 

불붙은 화장품 배송 속도전 

익일배송을 넘어 당일배송, 새벽배송 등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의 배송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토록 빠른 배송 서비스에 불이 붙은 건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시점부터다.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 방문을 꺼리고 확진자의 격리 기간이 생기면서 신선식품, 생필품 등의 비대면 소비가 확산된 것. 때맞춰 이커머스 시장은 몸집을 점점 키워갔고, 빠른 배송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화장품 구매에도 온라인 쇼핑을 적극 활용 중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1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8조1201억원이며, 그중 모바일을 이용한 쇼핑 거래액은 13조3477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9.6% 증가했다. 어느덧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해제됐지만 방구석에서 원하는 립스틱을 단 하루면 받을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의 매력은 좀처럼 끊기 힘들다. 게다가 백화점이나 뷰티 편집숍보다 더 푸짐한 혜택이 주어지는데,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제품은 물론 향수, 네일, 툴까지 그 영역을 불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뷰티 업계에서 총알배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올리브영은 온라인몰의 배송 경쟁력을 높이려고 ‘빠름배송’ ‘3!4!배송’ ‘미드나잇배송’ 등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했고, 컬리는 화장품에 샛별배송을 적용한 ‘뷰티컬리’를 론칭, 자체 물류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브랜드도 배달 업체와 협력해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달의민족 ‘B마트’를 이용하면 스킨푸드, 에뛰드, 마녀공장, 메디힐 등 뷰티 브랜드 제품을 30분 이내에 배송받을 수 있다. 빠른 배송 서비스가 온라인 뷰티 시장의 키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럭셔리 뷰티도 빠른 배송 

이렇게까지 빠른 배송 서비스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럭셔리 뷰티 제품에도 하루배송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쿠팡의 C. 에비뉴를 이용하면 굳이 백화점에 가지 않고도 명품 화장품을 로켓배송으로 빠르게, 풍성한 혜택으로 구매할 수 있어요.” 쿠팡 리테일 이병희 부사장의 말처럼 그간 백화점 1층 매장에서만 만나던 명품 화장품까지 클릭 한 번으로 총알배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덕분에 기념일이나 생일, 명절 등 값비싼 선물이 필요한 날 직전에도 럭셔리 뷰티 제품을 빠르게 받을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지난 설에는 뷰티컬리가 ‘설 택배 배송 마감해도 샛별배송’을 내세워 명절 당일까지 부모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설화수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부모님 설 선물 아직 구매 못하셨다고요? 지금 주문하시면 내일 새벽 집 앞으로 가져다 드려요”라며 샛별배송을 보장했고, 이는 창업 이래 최고의 하루 매출액을 경신하면서 럭셔리 뷰티의 빠른 배송 수요를 짐작하게 했다. 또 쿠팡은 앱 내 프리미엄 브랜드 숍인 ‘C.에비뉴’를 통해 럭셔리 뷰티 제품의 하루배송을 약속했고, 롯데온은 프리미엄 뷰티 전문관 ‘온앤더뷰티’에서 서울 지역에 한해 바로배송 또는 매장 픽업 서비스를 앞세웠다. SSG닷컴 역시 국내외 명품 뷰티 브랜드가 입점한 전문관 ‘먼데이문’을 새롭게 단장하며 ‘쓱배송 뷰티’ 탭을 만들어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있는 제품만 모아놓았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줄지어 럭셔리 뷰티의 빠른 배송에 집중하는 현 상황은 진입 장벽이 낮은 명품 화장품을 ‘스몰 럭셔리’라 칭하며 기꺼이 지갑을 열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참지 않으며 편리미엄을 추구하는 요즘 소비자의 취향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속도전이 낳은 양극화 

새벽을 달리는 빠른 배송 서비스가 그저 반갑고 편리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이커머스 플랫폼의 치열한 속도 경쟁에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면이 존재한다. 도심형 물류센터를 비롯해 인건비 등 높은 비용 구조 탓에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빠른 배송에서 발을 떼고 있는 플랫폼도 생기고 있는 것. 올해 1월,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편집숍 아리따움은 ‘오늘도착’ 서비스를 종료했다. 2년 전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 수요가 늘면서 빠른 배송을 도입했지만, 비용 효율화를 위해 내린 결론이다. SSG닷컴도 효율성을 고려해 올해부터 충청권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접기로 했다. 속도 경쟁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평가받는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가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까지 8년이 걸렸고, 그들이 구축한 물류 인프라는 축구장 500개 크기와 맞먹는 370만㎡ 이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덜컥 겁이 날 만도 하다. 이 밖에 배달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빠른 배송이 도입된 후 임금이 줄고,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소속 택배 근로자 역시 연이은 사고를 겪으며 과잉 근로 논란이 야기됐고, 배송 시 쓰인 포장 쓰레기로 인한 환경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퀵 커머스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유럽과 중국에서도 10분 내 배송이 떠올랐고 역배송 서비스까지 갖춘 곳도 등장했다. 립 제품의 실제 컬러를 확인하지 못하는 소비자를 위해 모든 컬러를 받고 선택하게 한 뒤, 나머지는 반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이를 실현하려면 어마어마한 탄소발자국과 자본력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인프라 강국이자 성급한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빠른 배송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득과 실의 기로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분 단위’로 쪼개진 이커머스 플랫폼의 배송 전쟁이 지나친 자본력 싸움으로 번지거나, 환경을 해치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되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