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 유전자 탓이라고.” 무심코 말하지만, 그럼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입안을 면봉으로 긁어내는 것만으로도 내 유전자에 잠재된 정보를 알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내가 서울대에 못 간 것도, 이른 나이에 쓸개가 빠진 것도 다 유전자 때문은 아닐까? 걱정이 많은 것도, 펌이 잘 나오지 않는 것도, 내 생김새와 목소리도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전자’란 그런 거다. 아빠와 너무 닮은 나, 엄마와 너무 닮은 내 기질, 똑같이 생긴 건 아닌데 분위기가 비슷하다고들 하는 내 형제들처럼. 그렇다면 유전자란 뭘까? 유전자는 유전의 기본단위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지니고 있다. 유전자에는 생물의 세포를 구성하고 유지하고, 이것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으며,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유전된다. 이후 DNA가 발견되면서 유전자라는 개념은 좀 더 구체화된다. DNA와 유전자로 인해 모든 생물은 유전형질을 갖고 태어난다. 즉, 내 갈색 눈이나 가는 모발, 혈액형 등도 이미 결정된 것.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부분 외에 보이지 않는 정보가 궁금해졌다. 요즘은 누구나 유전자를 알아볼 수 있는 시대니까.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 절제술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 · 난소암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BRCA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자 그는 암 예방을 위해 유방 절제술을 받았고, 난소와 나팔관을 떼어냈다. 

졸리는 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DTC는 의료 기관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검사 업체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양소, 피부와 모발, 식습관, 개인 특성 등 한정된 영역에 한해 건강관리 검사 기능만 존재하다가 작년부터 검사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 검사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 대학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암 관련 유전자 검사를 선택 검사로 추가할 수 있고, 검사를 통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뷰티 프로그램도 한동안 화제였다. 가격은 범위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병원에서 암 관련 8종을 알아보는 검사가 15만원 정도. 유전자 검사 관련 업체의 키트로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내 유전자에는 어떤 정보가 담겨 있을까? 이왕 알아보는 거, 최대한 많이 알아보자 싶어 ‘Circle DNA’ 키트를 신청했다. 가격은 항목에 따라 20만~70만원대다. 1시간 정도 취식을 멈춘 후 면봉으로 입안을 긁는 것으로 내가 할 일은 끝. 내 검체는 페덱스를 통해 홍콩으로 날아갔고, 이윽고 보고서가 ‘앱’으로 도착했다. 

‘Circle DNA’는 “유전형을 확인해 본인에게 맞는 식단, 영양, 스포츠 & 웰니스, 암 & 질병 위험, 가족계획을 위한 보균자 검사, 약물 반응, 조상 등을 포함한 범주 20개의 정보 500여 개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키트 종류에 따라 정보의 양은 달라진다). 500개라니, 처음에는 쉽게 와닿지 않았지만 오히려 보고서를 하나하나 열어 보면서 유전자 검사의 취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식이요법과 영양 민감도, 스포츠, 건강과 질병 위험, 치매와 뇌 건강, 약물 반응, 수면과 스트레스, 피부, 특성과 재능, 그리고 내 혈통까지 세분화된 범주에서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단,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경향과 가능성을 말해준다고 봐야 한다.

가장 먼저 식단 정보를 보니, 나는 알코올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홍조 반응이 나타날 경향이 높았다. 알코올을 마시면 혈압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유당불내증이 역시 있었다! 나는 젖당 분해 효소 결핍으로 인한 유당불내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 독소 생성이 높기에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십자화과 채소(양배추, 브로콜리, 케일 등)를 많이 섭취해야 했다. 다소 슬픈 얘기일까? 내게는 장수 유전자가 없었다. 수명은 ‘평균일 가능성’이 높았다. 좋은 것으로는 동안 유전자가 있었다. 피부 노화가 느리고, 광노화와 일광 화상에도 강했다. 평생 운동 능력이 좋지 않은 것도 유전이었나. 조상님인 허균도 문인이지 무인은 아니었지. 신체 파워도 낮고 회복도 느리다고 나왔다. 신체 능력은 보잘것없음에도 지구력만은 매우 높았다. ‘깡으로 살고 일한다’는 게 이런 거였나 싶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나는 확실한 저녁형 인간이었으며, 외향형과 내향형이 혼재되어 있고, 성실성과 창의력이 높으며 개방적인 인간이지만 스릴은 싫어하고 무엇에 중독될 성향은 낮은 사람이었다. 외모 유전자 항목에서 ‘가슴 크기 평균’도 그 말 그대로라 웃음이 났다. 

질병 관련 결과를 볼 때는 조금 떨렸다. 유전 질환 163개에 대한 보인자 여부 결과부터 읽었다. 이런 질환을 갖고 있다면, 자식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도 색약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163개에는 색맹에 대한 검사도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163개 모두 음성! 그다음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알아본다. 다행히 유전자 항목 140개에서 암 유발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암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건 아니고, 설사 발견되었더라도 그게 암에 걸린다는 것도 아니다. 이 돌연변이는 암에 걸릴 확률을 조금 높일 뿐이니까. 치매나 파킨슨병 등 뇌 관련 질병에 걸릴 위험도도 낮았다. 질병과 관련해서 주의할 부분으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과 십이지장궤양이 나왔다. 걸릴 위험이 높으니,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대해 알아봤는데, 여성의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인한 간경화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이 외에 나는 알레르기, 십이지장궤양, 독감, 녹내장의 위험도 높았다. 아버지가 백내장 수술을 받기도 했으니, 눈 건강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500여 항목이 담긴 보고서를 꼼꼼하게 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보고서 항목 대부분이 ‘평균’ ‘정상’을 표시하고 있고, 다른 사람도 거의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보도 많았다. 같은 검사를 받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춤을 잘 추는 댄스 유전자가 있더라고.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춤을 춰볼까?”-같은 항목에서 나는 ‘재능 보통’이 나왔다-그렇게 해서 춤을 시작한 친구의 일상은 좀 더 다채로워질지 모른다. 애초에 DNA 검사란, 가능성에 대한 정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겁을 주려는 게 아닌, 아는 것을 바탕으로 삶을 잘 꾸려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비타민 D가 유난히 부족하고, 환경오염에 취약하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으니 이 정보를 바탕으로 나 자신을 더 잘 돌볼 작정이다. 그 시작으로 1주일에 세 번 이상 브로콜리를 삶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확실히, MBTI 유형 검사보다는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