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현대인을 위한 퀵커머스 vs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반품 유료화 조치. 당신의 선택은? 

천연 스웨이드 소재에 다양한 사이즈의 그러데이션 골드 크리스털을 장식한 세르펜티 미니 토트백은 5백65만원 불가리(Bulgari).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라는 긍지를 안고 산다. 촬영 전날에도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라 급하게 스타일링 소품을 구해야 할 때, 동대문종합상가까지 갈 여력이 없는 패션 에디터가 자연스레 향하는 곳은 쿠팡 앱이다. 월 회비 4천9백90원을 지불한 쿠팡 멤버십 회원이라면, 바로 다음 날 새벽 현관문 앞에 구입한 물건이 도착한다. 같은 이유로 마켓컬리의 샛별배송, 오늘의꽃의 신선배송도 늘 고마운 존재. 에디터가 쿠팡을 애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반품 서비스 때문이다. 이번 달에 화보를 진행하면서도 모델에게 씌울 베일을 고민하며 ‘짧은 것? 아니면 긴 것? 에라, 모르겠다. 두 개다 고르자’라는 생각에 무작정 주문했고, 사용하지 않은 제품은 반품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쿠팡 앱을 통해 탭 한 번으로 반품 신청이 승낙됐고 받은 포장지에 그대로 싸서 다시 현관문 앞에 두면 끝. 회원 혜택으로 30일 동안 반품 배송료는 ‘0원’. 소품비를 아꼈다는 뿌듯함은 무심하게도 낭비한 탄소발자국을 제쳤다.

팬데믹으로 인해 폭풍 성장한 이커머스와 배송 업체는 경쟁력을 위해 빠른 교환과 무제한 반품 서비스에 박차를 가했다. 패션 업계 역시 이 동향에 발을 맞춘다. 퀵커머스에 길들여진 소비자를 위한 혜택이다. 여러 쇼핑몰을 하나의 채널에 모은 패션 플랫폼은 물류 배송, 고객 서비스(CS), 큐레이션을 대행하는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도 지원하는데, 단골을 확보하려면 신속하고 정확한 반품 프로세스는 놓쳐선 안 될 달콤한 카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그재그, 브랜디, 에이블리, 스타일쉐어 등 ‘누가 누가 쉽고 빠르게 반품해주나?’ 줄 세우기가 한창이다. 최근 무신사는 ‘빠른 교환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선 무신사의 PB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부터 한시적으로 진행한다. 과정은 이렇다. 고객이 무신사 스토어에서 주문한 무신사 스탠다드 상품을 교환하고자 할 때 교환 요청과 동시에 새로 받을 상품이 출고된다. 해당 서비스 도입 이전에는 교환 제품을 브랜드 측에 전달해 상태를 확인받고 출고하는 방식이었다. 검수 과정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우선적으로 교환을 희망하는 상품을 출고해 종전 1주일 정도 소요되던 과정을 2~3일로 단축했다. LF에서 운영하는 헤지스닷컴도 지난해 9월부터 이 같은 교환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무신사와 LF가 특정 브랜드에 시범 운영한 ‘빠른 교환 서비스’의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더 많은 브랜드 몰로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빠른 교환, 반품 서비스 이면에는 지속 불가능한 비용 인플레이션과 환경 문제가 도래함을 인지해야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판매된 상품의 약 17%가 반품됐고, 그 규모는 총 8160억 달러(약 1018조원)에 달한다. 패션에 국한하면 반품률은 더 늘어난다. 미국은 한때 40%에 육박했고, 우리나라도 30% 가까이 기록했다. 미국 온라인 소매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객의 반품 요청 시 이를 수행하는 비용으로 주문액의 약 21%가 든다고 한다.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관습처럼 채택된 반품 서비스는 이제 마진 킬러로 변신해 이커머스의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창고로 되돌아오는 대다수의 상품은 결함 없는 완벽한 상태다. 하지만 쇼핑몰 재고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평균 30~40일이 걸린다. 상태를 검수하고 재포장해 고객에게 내놓는 시간이 포함된다. 패션 트렌드의 지속 기간이 짧게 흘러가는 것을 감안하면 반품 절차를 거쳐 돌아온 제품은 인하된 가격으로 팔 수밖에 없다. 혹 시즌이 지나 팔지 못하면 매립지에 버려져 환경에 위협을 가한다. 그래서 글로벌 커머스 기업은 반품 정책을 재고 중이다. 비용 압박과 환경 문제에 직면하면서 반품 기간을 단축하고 반품에 드는 비용도 소비자에게 청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유통사와는 정반대 행보다. 그동안 관대한 반품 정책으로 인기를 끈 자라, H&M, 제이크루, 앤트로폴로지, 바나나 리퍼블릭 등은 45~60일 내 허락한 반품 기간을 한 달 이내로 줄였다. 또 온라인에서 구매한 상품을 택배로 반품할 경우 환불 금액에서 최대 7달러의 수수료를 제한다. 물론 매장에서 반품하면 비용은 무료다.

반품 문화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도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장바구니 가득 채워 주문하고 쉬이 반품하는 경향을 분석한 것이다. 온라인 몰에서 비대면으로 구입할 때 사이즈 문제는 반품 사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사이즈를 주문하고 나머지를 반품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리바이스 D2C 몰은 새로운 디지털 핏 테크놀로지를 가미했다. 체중, 키, 성별 등 몇 가지 사항을 입력하면 예측 핏 알고리즘으로 고객에게 적합한 사이즈를 추천하는 ‘What’s My Size’, 다양한 신체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제품 이미지 뱅크를 기반으로 자신과 유사한 체형의 옷을 입었을 때 어떤 핏이 연출될지를 보여주는 ‘See It My Size’ 기능이다. 국내 프리미엄 퍼피 웨어 브랜드 멀로(Merlot)는 자사 몰 동영상 리뷰 서비스를 강화해 반품 사례가 80%까지 줄었다.

언젠가 브랜드가 너그럽지 않은 반품 정책을 고지할 때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 역시 탄소발자국을 늘리는 소비 패턴을 되돌아봐야 한다. 온라인 장바구니에 제품을 쓸어 담는 손을 잠시 멈추고 골똘히 생각해보자. 지나친 낭비인 동시에 환경 파괴로 이어지는 습관적 반품의 이면을. 하찮은 결정 장애로 짧은 베일 반품을 결심한 에디터의 무지함을 반성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