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코린은 최근 작품 속에서 지극히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왕세자비, 아내, 그리고 귀족의 모습을 연기하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현재 가장 흥미로운 배우이자 아이콘인 엠마 코린이 지금 몰두하는 것에 대하여. 

THEIR ROYAL HIGHNESS | 드레스는 마르니(Marni), 장갑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부츠는 미우미우(Miu Miu). 패션 저널리스트 로렌 에저스키(Lauren Ezersky)와 카메라 앞에 선 코린.

 

GOOD SHAPE | 코트와 드레스는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슈즈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SHELL COMPANY | 코스튬은 헤일리 데자르당(Hailey Desjardins).

가수이자 배우 데미 로바토(Demi Lovato), 가수인 켈라니(Kehlani)와 할시(Halsey) 역시 대명사 ‘they/them’을 선택하고 있지만 반동성애적 법규 100여 개가 미국 전역에서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젠더 바이너리를 거부한다는 것을 공표하기에 이보다 더 위험한 때가 있었을까 싶다.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한 때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잉글리시 로즈’로 불리는 전형적인 영국 상류층 여성이자 여성성을 지닌 역할로 유명해졌지만, 실제로 자신의 인생에서는 이 같은 여성성을 폐기했다.

“나를 ‘they’라고 불러줄 때 나 자신이 더 잘 대변된다고 느끼지만, 친한 친구들이 ‘she’라고 부르는 건 개의치 않아요. 그들은 이미 나를 잘 아니까요.” 방을 오가는 친구 몇몇을 가리키며 코린이 말했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아웃박스(Outbox)는 트랜스젠더가 운영한다고 했다. 나이와 배경이 비슷한 퀴어가 만나면 이런 일이 종종 이뤄진다. 레스토랑이나 운동 시설, 호텔, 게이 바 같은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마치 LGBTQ+ 전용 ‘옐프(Yelp)’ 앱처럼 말이다. 복싱에 잠시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코린은 사실 러너다. 런던 남부에 위치한 집에서는 매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조깅을 즐긴다. 이전에는 뉴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서 브로드웨이의 <컴퍼니> 공연부터 캐츠킬(Catskills)의 호숫가 에어비앤비로 떠나는 여행 계획까지 뉴욕에 대한 활기찬 기대로 가득하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오는 6월에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로, 파티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을 기대 중이라고 했다. 런던의 햄스테드 히스(Hampstead Heath)에 있는 레이디스 폰드(Ladies’ Pond)에서 정기적으로 수영한다는 코린의 말에 뉴욕 퀴어와 트랜스의 천국인 리스 비치(Riis Beach)에 대해 알려주기로 했다. 리스 비치는 수영용 반바지부터 마이크로 비키니까지, 날것 그대로의 피부를 마음껏 드러낸 채 동성 파트너의 손을 잡거나 성전환 수술 자국을 노출하며 산책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가슴을 압박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일에 대해 묻자 그는 “성정체성을 포스팅하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죠”라고 말한다. 피드는 댓글 홍수를 이뤘고, 모든 댓글이 예의 바른 것은 아니었다. “제 머릿속에서 성별이란 고정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아요. 전 늘 유동적으로 생각해요.” 연애에 관해서도 누구에게 호감을 느낄지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는다. 어깨를 으쓱이며 “난 사람들을 좋아해요”라고 단순히 표현한다. 하지만 성정체성 공표 후 첫 데이트는 따뜻했다고 기억한다. “여자와 하는 첫 데이트였는데, 내게 ‘너는 베이비 퀴어야!’라고 말하더군요.” 차를 마시며 코린이 말을 잇는다. “근사한 경험이었어요. 관계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퀴어 데이트에 대해 확실히 배웠죠.” 코린은 남자와 사귄 적도 있지만 자신의 LGBTQ+ 정체성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부담’을 느껴왔다고 털어놓는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복잡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어요. ‘그 와중에 내가 지금 남자를 사귄다고?’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죠.” 코린은 퀴어와 트랜스 공동체를 키우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역시 그를 위한 창구 중 하나다. “플랫폼이 있고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엄청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한 달 뒤 우리가 뉴욕 다운타운의 공원에서 다시 만난 5월의 날씨는 유난히 더웠다. 메이크업 없이 파스텔 컬러의 격자무늬 피오루치(Fiorucci) 쇼츠 슈트와 야구 모자 차림의 그는 1970년대 후반 런던 한량처럼 보였다. 팬데믹 이전, 영국 <보그> 파티에 셀린느(Celine) 슈트와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난 후 코린은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Harry Lambert)와 협력 중이며, 로에베나 마르코 리베이로(Marco Ribeiro), 샬롯 노울스(Charlotte Knowles)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즐겨 입는다. 코린은 패션에 영감을 주는 인물로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을 꼽았는데, 개성과 삐딱함을 떠올리며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타일리스트 해리 램버트는 “엠마는 위험을 감수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작업이 재미있어요. 패션과 놀고 싶어 해요. 패션을 두려워하지 않죠.” 때로는 코린의 스타일에 ‘기이함(Weirdness)’이 깃들어 있을 때도 있다. 가짜 상속녀 애나 소로킨(Anna Sorokin)의 사기극을 그린 웨스트엔드 공연 <애나 X(Anna X)>에서의 연기로 수상 후보에 오른 2022년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플로럴 드레스 위에 겹쳐 입은 로에베의 풍선 같은 브래지어처럼. 전통적인 성별 역할에 엄격함을 고수해온 시상식 문화를 폭파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이쯤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최우수 논바이너리 연기상’ 부문이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2022년 멧 갈라에서는 1880년대 뉴욕 사교계 명사 에반더 베리 월에게 영감 받아 맞춤 제작한 미우미우 코트와 톱 모자를 착용했다. 할리우드에서 퀴어나 논바이너리 배우로 살아가는 배우다운 멧 갈라 룩이엇다. 

 

RIGHT ON TRACK | 코트는 프라다(Prada).

THE THINKER | 베스트와 스웨터는 미우미우, 트랙 팬츠와 운동화는 아디다스 오리지널 바이 웨일즈 보너(Adidas Originals by Wales Bonner).

PET PROJECT | 톱, 셔츠, 팬츠, 모자, 신발은 모두 더 로우(The Row). 반려견 스펜서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코린.

엠마 코린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사업가 아버지, 언어치료사 어머니, 그리고 각기 음악계에서 일하고 대학을 마치는 중인 남동생 리처드(Richard)와 존티(Jonty)로 구성된, 충분히 남성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한다. 켄트에 위치한 가족 영지에 자신만의 요새를 만들어 놀았고, 사춘기 이전에는 곤충에 빠져 있었다. 가족은 커밍아웃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냈다. “여자와 사귀고 있다고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남동생에게 DM이 왔죠. ‘누나, 환영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나는 오랫동안 양성애자였거든’이라고 하더군요.” 코린은 동생의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놀라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들은 훨씬 더 자유로워요. 양분법이 아닌 유기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죠. 우리 세대는 중간에 낀 거 같아요.” 

부모님, 동생들, 대학 친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선택한 가족’이라고 말하는 퀴어 친구들에게도 열정적이다. 할리우드에서 찾은 베스트 프렌즈 중 한 명인 <시트 크릭(Schitt’s Creek)>의 제작자이자 배우인 댄 레비(Dan Levy)도 그중 하나다. 댄 레비는 <시트 크릭>의 데이비드 로즈(David Rose) 역할에서 범성욕주의를 건조하게 표현했는데, 코린은 그 연기를 극찬했다. 레비 역시 “<더 크라운> 속 모습을 보며 극 중 엠마의 선택에 놀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의 역할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그가 펼쳐낸 다이애나는 단단하면서 진중하고 생동감 넘쳤어요. ‘머리가 좋아야만 그런 배역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난 그 머릿속이 궁금해졌죠”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조력자로 캐나다 출신 코미디언 메이 마틴(Mae Martin)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우정을 영화에 비유한다면 <스탠 바이 미>의 고디와 크리스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때때로 어린 소년처럼 보이거든요. 엠마에게는 코미디언 래리 데이비드(Larry David) 같은 면모가 있어요. 둘 다 정말 웃긴 동시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따듯하면서도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죠”라고 마틴이 말했다. <나의 경찰관>의 감독 마이클 그랜디지(Michael Grandage) 도 찬사를 잊지 않는 한 사람이다. “엠마에게는 예리한 지성이 있기 때문에 눈빛만으로도 인물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어요. 작은 동작으로 많은 걸 표현하는 능력은 배우에게는 엄청난 장점이죠”라고 그랜디지 감독이 말했다. <나의 경찰관>에서 코린의 연기는 영화관을 떠난 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코린은 <더 크라운>에 이어 영화 두 편을 연달아 작업했다. <나의 경찰관>과 로르 드 클레르몽-토네르(Laure de Clermont-Tonnerre) 감독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그것이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원작인 이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최근 공개되었다. 그는 이른바 ‘코르셋 역할’이라고도 하는 배역에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적 역할의 연기가 쉬웠다는 건 아니다. “채털리 부인과 마리온으로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데 분투했죠. 하지만 연기할 때 나는 엠마가 아니에요, 그렇죠? 나는 배우고 주어진 일을 해야 하니까요.” <나의 경찰관>의 세트장에서는 퀴어 의상 담당자가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고. “의상 담당자와 저는 1960년대 브래지어를 착용하느라 웃음을 터트리고는 했죠.” 영화계에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연극 무대를 완전히 저버린 건 아니다. “연극을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돌아올 때마다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언젠가는 돌아올 거예요.”

매일 촬영이 이어지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시나리오를 쓴다. 파트너 작가 아비게일 틀라림(Avigail Tlalim)과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 중이다. 그러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건 올리비아 랭의 <강으로>와 폴 B. 프레시아도의 <천왕성의 아파트(An Apartment on Uranus)>다. 후자는 특히나 강력해서, 코린은 작가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오른팔에 별자리 문신까지 새겼다. 그는 몸을 기울여 문신을 보여주며 말했다. “짧게 설명하자면 작가는 퀴어성을 또 다른 별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유해요.” 이후에는 <셀링 선셋>의 스타 크리쉘 스타우스(Chrishell Stause)와 호주 출신 논바이너리 래퍼 지 플립(G Flip)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뜨거운 햇살 아래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이 공원을 분주하게 뛰어다닐 때, 우리의 대화는 둘 모두에게 흥미로운 관심사로 옮겨간다. 그것은 바로 완벽한 차 찾기. 어떤 LGBTQ+ 개인에게 완벽한 차, 핸드백, 입술 피어싱 링, 또는 그 어떤 물질적 구매는 자신이 보여지는 방식을 세상에 전달하는 또 하나의 힌트를 던질 기회로 여겨진다. 작가이자 배우 겸 사회 활동가인 사이러스 던햄의 회고록에는 완벽한 컨버터블 차량을 찾아 헤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하나의 물품이 내 정체성의 대리인이 되도록 허락한 것처럼 들린다면 그건 맞는 말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코린의 드림카는 갈색 지붕과 변속기가 꽤나 시끄러운 25년 된 녹색 지프 랭글러다. 영화 작업 중 만난 로케이션 매니저를 통해 최근 손에 넣었다. 낡은 자동차의 수리 과정을 설명하며 밝게 빛나는 그의 두 눈을 보니 운전석에 앉아 런던의 좁은 골목길이나 뉴욕 시티에서 캐츠킬로 향하는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손쉽게 그려볼 수 있었다. 아마 팔 한쪽은 차창에 걸친 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구불구불 달려가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