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돌리자. 보란 듯이 비틀고 과감히 깨부수는 전시를 향해.

홍승혜, ‘공중 무도회’, 2020, Polyurethane on Plywood, 144×117.6×120cm.

평면과 입체 사이

한국 현대미술가 홍승혜가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로 돌아왔다. 2004년 선보인 동명의 전시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지금까지의 작업을 고찰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디지털 화면의 기본단위인 ‘픽셀’을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가는 사각의 그리드 안에서 픽셀을 자유롭게 결합하고 분해해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만든다. 전시 제목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로도 잘 알려진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차용했다. 무지개 대신 작가가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초 환경인 ‘레이어’로 대체한 것. 예술이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 이상향을 찾는 데서 힘을 갖게 된다는 작가의 오랜 믿음을 내포한다. 2월 9일부터 3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

 

제이디 차, ‘주방 의식 & 행운의 붉은 꽃잎(Kitchen Rituals & Lucky Red Petals)’, 2022.

정희민, ‘먼 곳에서의 부름(Distant Calling)’, 2022, 223×190cm.

OUR MYTHS

한국의 사회·문화적 지형을 작업의 주요 영감으로 삼는 세 작가가 만났다. 신화적 이야기와 구전 전통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정희민, 한선우, 제이디 차가 그 주인공이다. 세 작가는 단체전 <지금 우리의 신화>를 통해 정체성, 자아 등의 묵직한 개념을 다룬 신작을 선보인다. 정희민은 디지털 모델링 소프트웨어로 스케치를 시작해 정물화라는 관습적 회화 장르를 재구성한다. 기술과 예술의 관계성은 한선우와 제이디 차의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조각난 몸과 혼종된 육체 형태는 기계와 뒤엉켜 한선우의 캔버스를 채우고, 제이디 차는 여기저기 흩어진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회화와 텍스타일을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다. 2월 25일까지, 타데우스 로팍 서울.

 

포즈(Jordan Nickel),‘Relief 2’, 2022, Acrylic on Canvas, 120×90cm.

COLORFUL NARRATIVE

포즈(Pos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조단 니켈이 개인전 <Fire Escape>를 열었다. 팬데믹과 전쟁의 시간을 지나며 목도한 불안 가운데 탈출구를 모색하려는 작가의 시선을 담아 ‘비상 탈출구’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의 작품은 이미지를 컷업(Cut-up)해 뒤섞는 기법이 도드라진다. 일상에서 쉽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수집해 새로운 화면으로 재구성한 것. 중첩된 이미지는 원근법의 공간을 탈피한 초현실의 3차원 공간을 형성한다. 사물과 강렬한 패턴의 조합이 인물이나 사물의 본래 형태를 잊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논리적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면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볍게 부순다. 3월 12일까지, 스페이스 파운틴.

 

마우리치오 카텔란, ‘무제’, 2021, 왁스, 안료, 머리카락, 천, 유리섬유, 150×60×40cm.

불온의 미학

‘판의 규칙을 깨는 말썽꾼’ ‘미술계의 악동’…. 벽에다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인 ‘코미디언’, 18K 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 등의 논쟁적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정치·종교·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 이면의 숨은 의미를 곱씹을 때는 절로 냉소적인 웃음을 띠게 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조각과 설치 등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작품을 대거 전시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1월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