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사랑이 무대 위에서 다시 깨어난다. 배우 김성철과 김유정이 전하는 사랑의 언어. 

재킷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셔츠는 앤 드뮐미스터 바이 아데쿠베 (Ann Demeulemeester by Adekuver).

성철이 입은 보머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유정이 입은 튜브 톱은 ROKH.

유정이 입은 하운즈투스체크 베스트는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블랙 와이드 팬츠는 잉크(Eenk), 블랙 샌들 힐은 세르지오 로시(Sergio Rossi). 성철이 입은 오버핏 셋업은 제이백 쿠튀르(Jaybaek Couture). 슈즈는 알렉산더 맥퀸.

| 김유정 |

데뷔 20주년, 토끼띠. 한 해의 시작부터 설레는 단어가 가득해요.
맞아요. 그 중에서도 새해의 시작이 처음 경험하는 분야의 작품이라는 점이 저를 가장 설레게 해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비올라역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하죠? 어떻게 성사된 일인가요?
연극을 좋아하고 꾸준히 보러 다녔어요. 예고 다닐 때 친구들과 졸업 공연을 무대에 올렸어요. 앙상블 역할을 맡았는데, 무대 위의 카타르시스를 그때 조금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안받자마자 바로 한다고 했어요. 많이 기다렸거든요.

좀 더 일찍 해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마음처럼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적절한 타이밍에 훌륭한 작품을 하게 되어서 무척 신기해요. 감정적으로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에서 새로운 걸 시도할 기회가 생겨 개인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여러 요소 중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점은 뭔가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컸어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어요. 누구나 감탄하는 업적을 쌓은 인물이기도 하잖아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을 재해석해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죠. 무엇보다 비올라 드 레셉스라는 인물이 매력적이기도 했고요.

비올라는 여성이 연극 무대에 설 수 없는 시대에 남장을 하고 연극 오디션에 참가해요. 금기와 한계를 뛰어넘은 인물이죠?
그런 면이 정말 멋있어요!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은 물론 외적으로도 멋져요. 자신의 꿈과 그를 향한 열정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기도 하고요.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아 이런 게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구나’ 하는 공감도 하게 됐어요. 제 회차에 오는 관객분들이 비올라를 진짜 살아 있는 인물로 느끼기를 바라요.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건 영화나 드라마와 많이 다르잖아요. 요즘 일과가 어떻게 돼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연습실로 출근해요. 오전 연습이 끝나면 다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 연습을 한 뒤 퇴근하죠. 출퇴근 시간, 촬영 장소가 유동적이고 변수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과는 다른 풍경이에요.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니 다시 학교에 다니는 기분이에요.

굉장히 신나 보여요. 연습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도 큰가요?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고 배우들과 계속 부딪치며 호흡하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대사 한 마디, 장면 하나를 두고 배우와 연출, 여러 스태프와 몇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눠요. 한 작품을 위한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끝낸 후에 무대에 오르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거든요.

연습 때 유독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있어요?
서사적으로 너무 큰 상황이라 자세한 설명은 어려운데, 비올라가 “저는 그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라는 대사를 뱉는 장면이 있어요. 어느 날 연습 중 그 대사를 하는데, 순간 멍해지면서 머릿속이 ‘띵!’ 해지더라고요. 그 문장이 가슴에 와락 안겼어요. 당시 연습실에 여러 배우가 함께 있었는데, 모두 그 대사를 듣고 마음이 찡했다고 하더라고요.

1월 29일 첫 무대를 앞두고 있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긴장은 되는데, 한편으로 기대감이 더 커요. 어떤 기분일까, 내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뛸까, 심장 박동수가 몇이나 될까!

기분 좋은 기대감이네요?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는 극도의 긴장 상태로 한 달을 보냈는데, 시작하고 오히려 안정된 것 같아요. 하나의 작품을 작품을 완성하려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아니까요. 자연스럽게 우리가 연습한 것처럼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좋아하니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대본이 더 특별했겠군요?
맞아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도대체 어떤 감정으로 이렇게 표현했을까 싶을 정도로 해석하기 어려웠어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몇 번을 곱씹어도 이해할까 말까잖아요. 그걸 외워서 표현해야 하니 엄청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영국 배우분들이 소네트를 읽은 영상도 찾아 보면서 계속 읽고 외우다 보니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평소 SNS에 시를 많이 올려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떠오른 작품이 있나요?
저희 작품 안의 대사 대부분이 시예요. 외우느라 바빠서 다른 작품을 보지 못했는데,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작품이 생각나네요. 작자 미상의 되게 짧은 시예요.

좀 더 말해줄 수 있나요?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의 눈물로 잉태되어 태어나고 싶다. 가슴에서부터 태어나 흐르고 싶다”는 내용이에요. 셰익스피어의 사랑이 정말 그렇거든요. 장면과 대화가 너무 간절하고 애절해요.

그런 사랑에 공감한 적이 있어요?
공감보다는 감탄하죠.(웃음) 그리고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고민에 빠져요. 이 대단한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는 얼추 알 것 같은데 완벽하게는 알지 못하죠.

셰익스피어의 뮤즈 비올라처럼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인물이 있나요?
특정 인물은 없는 것 같아요. 책과 콘텐츠에서 얻는 영향이 더 커요.

어떤 콘텐츠를 주로 봐요?
인문학 강의, 철학 강의,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이나 <알쓸인잡> 등을 좋아해요. 새로운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주제는 같은데도 느껴지는 생각의 차이가 신기해요.

20년 동안 연기를 해왔어요. 이 일을 하면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은 뭔가요?
참여한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요.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선배님들, 스태프분들과 즐거운 일을 함께 나눌 때 기뻐요.

반대로 슬플 때도 있나요?
체력적으로 버겁거나 힘든 순간은 있지만 슬프지는 않아요. 정말 잘하고 싶은데 원하는 만큼 되지 않을 때, 분하고 화날 때가 있지만 그것조차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장르와 경계를 넘어서고 취미도 다양해요. 도전이라는 가치도 중요한가요?
어떤 일에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지는 않아요. 해보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새롭게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보다 재미있는 것 같은데 해볼까? 싶으면 뛰어들어요.

그런 과정이 쌓이고 쌓여 ‘도전’이라는 단어에 가까워졌나 봐요.
넓게 보고 깊이 생각하려고 저를 확장하는 과정이죠.

계속해서 그 동기와 방향이 있네요?
그건 저도 좀 신기해요. 돌아보면 어느새인가 이것저것 했더라고요. 언젠가 친구가 “너는 다양한 것을 하는데 깊게 잘할 수 있는 건 뭐야?”라고 묻더라고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낚시, 캠핑도 즐기는데, 그러면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죠. 처음에는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취미의 영역에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찾기 위해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더라고요.

2023년이 어떻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좋았다!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라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새해를 열고, 이 연극이 마무리되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 또 어떤 활동을 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작품을 건강하게 잘 마무리하고 돌아봤을 때 ‘너무 좋았다’,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어요.

 

니트 베스트는 우영미(Wooyoungmi), 네크리스는 오프화이트(Off-White).

아이보리 드레스는 ROKH. RIGHT 아이보리 드레스와 벨트는 ROKH, 블랙 레더 재킷은 포츠 1961(Ports 1961).

유정이 입은 블랙 롱 드레스는 프라다(Prada). 성철이 입은 재킷과 팬츠는 프라다.

| 김성철 |

성철 씨에게 셰익스피어는 익숙한 인물이죠?
아무래도 그렇죠.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원작 영화도 입시를 준비하며 인상 깊게 봤었어요.

그때 내가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날이 오겠다고 예상했나요?
상상도 못했죠. 셰익스피어의 극은 했지만, 셰익스피어 역할을 맡을 줄은 몰랐어요.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의 실제 인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점이 흥미로워요. 작품 속 셰익스피어는 어떤 인물인가요?
저희 작품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고증을 꽤 잘했다고 생각해요. 대단히 멋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낭만적인 예술가인데 정말 멋있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아기 같은 면도 있고요.

작품을 준비하며 중점을 둔 포인트가 있어요?
작품 속 많은 대사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토대로 이루어지는데 관객들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셰익스피어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그가 했던 말이나 작품의 구절을 외우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의 작품 속 언어로 여러 감정이 전달돼요. 가령 소네트에 “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 그대는 사랑스럽고 따스합니다”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그걸 쓰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 그대를 봄날에 비교할까요, 가을날에 비교할까요?”라는 대사를 해요. 웃음을 노린 대사인데 ‘이해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있죠.

액션이나 표정과 같은 여러 장치가 필요하겠네요.
그래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며 연습에 매진해요.

정문성, 김성철, 이상이의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다른가요?
문성이 형은 사람 자체가 웃겨요. 동시에 연기의 본질을 항상 탐구하는 성향도 있죠. 유쾌하고 위트 있는 동시에 어떤 내면의 진실성이 잘 표현될 거예요. 상이는 열정 넘치는 쾌남. 으악! 대본! 사랑해! 상이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두 사람에 비해 저는 좀 섬세한 것 같아요. 감성적인 부분을 잘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연극 무대는 7년 만인가요?
네.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중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요. 대본을 보다가 재미있겠다 싶으면 출연을 결심해요. 이 작품 역시 그렇게 결정한 거예요. 대본을 보면서 배우들만으로 앙상블적 미장센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너무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지루할 틈 없이 볼 수 있을 거예요.

연극이 주는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연극이라는 장르는 쉽지 않죠. 오롯이 배우의 몸과 목소리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많은 배우와 캐릭터가 등장하며 작품 자체를 입체적으로 꾸며줬어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표현이 있나요?
“당신은 나에게 평생 늙지 않을 겁니다. 희미해지지도, 죽지도 않을 겁니다”라는 문장요. 마음에 되게 와닿았어요.

어떤 면에서요?
작품 배경이 16세기 귀족 사회이다 보니 제약이 많아요. 그런 현실에서 꿈을 꾸는 것 같은 대사라고 느껴졌어요. 셰익스피어는 꿈꾸는 사람인데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했고요. 최근 제가 영화 <올빼미>를 통해 조선시대도 경험해서인지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참 낭만적이고 순수했던 것 같아요. 연극에 나오는 인물 모두 그렇고요.

2016년에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그때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죠. 우리 작품의 주요 내용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잖아요. 당시 제가 맡았던 벤볼리오라는 역할은 로미오의 사촌인데, 셰익스피어가 그를 창조한 건 기계적인 장치의 목적도 있었대요. 제삼자로서 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화자거든요. 작품을 어떻게 공연으로 만들었고 비올라를 보며 어떤 대사를 썼는지 그때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이번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그 시절의 김성철은 떠오르지 않던가요?
스물여섯의 저요? 전혀요. 요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눈떴는데 서른셋이 됐어요. 배우로서 제가 적절히 쓰이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인터뷰마다 쓰임에 대한 고민이 짙게 묻어 있어요. 과거와 현재 쓰임의 정의가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쓰임에 대한 생각은 배우를 한다고 고민할 때부터 느꼈던 거예요. 배우는 니즈가 있어야 소비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쓰임에 대해 고민해보는데, 좋은 재료가 되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요새 가구에 관심이 많은데 예쁜 가구는 비싸요. 그럼 그 비싼 건 누가 만드냐? 디자이너가 만들거든요. 디자이너가 쓰는 재료는 또 굉장히 좋아요. 당연히 비싸질 수밖에 없죠. 이 과정을 보면서 좋은 재료로 능력 있는 사람이 만든 건 그 값을 매기기 어려운 건가 보다. 그럼 나도 더 좋은 재료가 돼서 나를 쓰는 감독, 스태프와 함께 일할 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배우라는 일이 인간 김성철을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키나요?
끊임없이 감정을 쓰다 보니 어느 날은 더 이상의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는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 반면 힘들 때면 해소되는 부분도 있어요.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면 인간적으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고요.

최근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나요?
영화 <올빼미>의 소현세자요. 모든 것을 품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그걸 캐릭터로서 표현할 수 있었어요. 참 멋있더라고요.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삶의 방향성이나 가치를 작품에서 발견하기도 하겠어요. 바뀐 기준도 있나요?
과거에는 캐릭터에 더 무게를 뒀어요.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품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 내가 이 캐릭터를 맡았을 때 얼마나 임팩트가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전체적인 걸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감성적인 연기보다 이성적인 연기를 더 좋아하게 되기도 했고요.

올해 더 채우고 싶은 부분도 있나요?
흘러가는 채로 두고 싶어요. 이걸 하면 더 잘될 것 같아, 신중하게 골라보자는 생각보다는 재미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고요.

현재 삶에 꽤 만족하는 것 같아요.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예요?
아침에 일어나 산책할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일과 휴일의 경계가 없는 일을 하다 보니 날짜 개념이 모호한 편이라 하늘의 달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껴요. 보름달, 초승달, 반달. 시시각각 변하는 달을 보면서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해요. 엄마한테 맛있는 거 사드릴 때, 친구들한테 밥 한 끼 살 수 있을 때 열심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