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영감을 불어넣어줄 새해, 새 날의 전시.

에르빈 부름, ‘사순절 Lent Cloth’, 2020, Metal, Wool, 1100×750×5cm.

무한한 조각

조각의 본질과 형식을 탐구하는 에르빈 부름이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전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을 열었다. 약 40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 그에게 조각은 전통적인 조형물에 그치지 않는다. 신체를 통한 행위이기도, 형태가 변하거나 부피가 증감하는 모든 ‘현상’ 자체이기도, 물리적인 실체 없이 존재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사회문제를 우스꽝스럽게 담아낸 조각을 소개하는 1부에 이어 관람객의 참여로 조각 개념을 확장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2부, 형식과 경계를 뛰어넘는 작가의 다양한 시도를 녹인 3부까지. 세 개의 섹션을 통해 엄선한 작품 61점을 감상할 수 있다. 3월 19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알피 케인, ‘Entrance Overlooking the Bay’, 2022, Vinyl and Acrylic Paint on Canvas 177.8×203 2cm.

현실 너머의

알피 케인은 복잡한 구조감이 느껴지는 그림 속에 몽환적인 공간감을 더한다. 집 안 내부와 자연경관이 결합한 친숙하면서도 이상적인 풍경은 그렇게 완성된다. 케인은 아시아 최초 전시인 <알피 케인, 고요의 순간>을 위해 대형 회화 16점을 새롭게 작업해 선보인다.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은 캔버스 위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꿈의 영역처럼 묘사된다. 풍부한 색감과 평면적인 동시에 원근감이 느껴지는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를 연상시키기도. 건축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은 디테일에서 빛을 발한다. 지는 해의 불그스름한 빛이 비치는 강물, 복슬복슬한 강아지의 털 등 섬세한 묘사로 시각과 촉각을 곤두세워 집중하도록 만든다. 2월 12일까지, 롯데갤러리. 

 

박민준, ‘X-XX’, 2022, 리넨에 유채, 112.5×162.2cm.

이야기 위의 그림

박민준의 회화는 신화적 서사를 지닌 소설 안에서 탄생한다. 광대, 서커스 단원 등 그가 직접 쓴 소설 속 캐릭터는 정밀한 회화적 필법으로 캔버스 위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12월 21일부터 시작되는 전시 <X>는 작가의 10번째 개인전이다. 회화와 조각 30여 점을 비롯해 작가가 집필한 소설과 대사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서커스 단원의 별난 사연을 담은 ‘라포르 서커스’, 남자와 여자, 시작과 끝처럼 대칭성을 지닌 두 개념을 숫자에 비유한 ‘두 개의 깃발’ 등 대표 작품들과 함께 새로운 표현 기법 및 조형성을 실험한 새로운 연작도 공개된다. 2월 5일까지, 갤러리현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The only thing that survives’, 2022.

불의 감각

영상부터 퍼포먼스, 회화, 설치까지. 다양한 매체를 오가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를 연다. 재와 흙으로 다진 전시장의 검은 바닥 가장자리로는 작가의 기도문이 흐르고, 그 위로는 2012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대표 연작 ‘역사 회화’가 줄을 잇는다. 그의 작업은 표백한 청바지 위에 다층적 이미지를 쌓아 올린 후 불에 태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파편이 튀고 재가 되기까지 각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 하나의 이미지로 남는 식이다.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환원 불가한 상태로 태워버리는 불과 타고 남은 재를 통해 창조와 파멸의 순환 구조를 말하고 있다. 1월 29일까지,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