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면 화제에 오르는 그것. 사주나 신점, 타로카드와 관상, 풍수지리… 내 미래를 점쳐보기 위해 찾은 곳은 예전과 달랐다. 

점을 잘 보지 않는다. 의심이 많아서일까? 20대에 본 점에서는 남편도 있고, 자식도 둘 이상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엄마 아빠밖에 없지 않나? ‘역시 그런 건 다 틀리다’ ‘점은 자기실현적 예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연말연시면 어김없이 ‘점 잘 보는 집’이 화제에 오르고, “내가 다녀왔는데…”라는 체험기가 들려온다. 내가 아는 사람을 요리조리 잘도 맞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맞히나 싶고 ‘나도 한번 가볼까?’ 하는 호기심이 꼬리를 문다. 주변 사례를 청취한 결과, 점집도 ‘청담동보살’ 또는 ‘사주 카페’로 통칭되던 예전의 모습은 아니라고 했다. 한 후배는 최근에 다녀온 청담동 점집이 마르지엘라 매장처럼 모던했다고 했다. 시원한 입담에 업계 사람의 절반은 보는 듯한 지방의 한 점집은 전화 상담의 프로다. 또 다른 곳은 6개월 후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여러 이야기 속에 흥미를 가장 자극한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토털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곳이었다. 인생의 오랜 질문이 드디어 풀렸다는 지인의 말에 결국 예약 문자를 넣었다. 

그곳은 다르기는 달랐다. 클래식 음악과 아로마 향이 은은하게 흐르는 가운데, 두 여성이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동양 점성술인 자미두수를, 다른 사람은 서양 점성술을 맡고 있다고 했다. 장군님을 모시는 사당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에서 보듯 어둑한 천막 안에 수정 구슬을 굴리는 모습도 아니었다. 차를 마시는 카페에 가까웠고, 실제로 음료 메뉴도 선택할 수 있었다. 상담은 아로마 테스트로 시작한다. 향 4가지를 맡고 맘에 든 순서대로 배치하고, 다시 향 8가지를 맡고 맘에 든 순서대로 배치했다. “요즘 잠을 잘 못 이루는군요?” 촬영이 이어져 생활 리듬이 깨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 정도는 눈 아래 자리 잡은 다크서클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요즘 걱정이 많은데, 돈 문제로 보이네요?”라는 말에는 허를 찔린 기분이라, 순순히 고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고금리를 걱정하고 있으며, 새해 소원은 금리 인하라고 말이다. 점성술사가 아로마 오일을 섞어서 건네주었다. 내게 필요한 아로마 테라피라는 거다.

손목에 일단 바르고 생년월일과 시를 둔 자미두수와 서양 점성술 상담이 이뤄졌다. 공통된 분석은 ‘일복’, 그런데 일에 대한 분석이 구체적이었다. “당신 일의 특징은 항상 디졸브된다는 것입니다. 쉴 틈이 없이 일이 항상 겹치고, 다시 새롭게 뻗어가네요. 동시에 여러 일을 맡는 일이 흔하네요. 이런, 휴가를 가도 일을 쉬지 못합니다. 지구 어디에 가도 일을 하게 됩니다. 당신에게는 책임감과 함께 ‘컨택트’의 힘이 강하게 있어요. 컨택트를 많이 받게 되고, 또 사람과 사람을 컨택트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변의 사람이 잘됩니다. 주변 사람이 잘되면 결국 당신도 잘되는 거죠.” 50대에 인생의 전성기를 이루리라는 별들의 답을 들은 후에 이어진 것은 타로. 왼손으로 카드를 한장 한장 꺼내며 내년 상반기까지의 운을 점쳤다. 여기까지 하니 이미 1시간 40분이 지났다. 그럼에도 끝은 아니다. 타고난 운명에 맞춘 원석 처방이 이뤄졌다. 장장 2시간이 흐른 후 나는 나의 맞춤 아로마 오일과 창의력과 귀인운을 높여준다는 자수정 원석을 소중하게 손에 들고 상담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은 영혼을 위한 스파구나!

모든 걸 믿는 건 아니지만, 2시간 정도의 긴 상담이 끝난 후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단지 미래에 대해 답을 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묻고 답하는 사이, 마음속이 한 번 더 가지런히 정리된 기분이었다. 사실 정신과 상담 같은 효과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점에 상담 효과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단기 집중 정신 치료라고 할 수 있죠.(웃음) 누군가 들어줬다는 느낌과 말을 했다는 환기 요법과 비슷한 효과를 주거든요. 단지 일회성으로 풀어놓는 것이라면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이 그 자체로 효과적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점은 위로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당신은 공정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민감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빠르게 캐치해 그걸 도와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요. 그러므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죠. 하지만 당신의 노력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왠지 가슴이 찡했다. 나조차 ‘오지랖’이 넓다고 스스로 폄하했던 내 ‘성격’을 이렇듯 따스하게 풀어주는 사람이 있었나. 나이 들수록 스스로 답을 정해놓는 일이 늘었고, 마음을 터놓는 일도 줄었다면 점을 보는 그 자체가 해소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에 맞춰 점집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전통 사주를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왕십리 골목의 작은 사무실에서 만난 80대 어르신은 이름과 생일과 생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주 풀이만 가득 해줬다. 어르신은 한지를 펼쳐 사주를 풀이하며 떠오른 문장을 붓펜으로 휘갈겨 썼다. 친구에게는 “인생이 고달프다”고 써주었는데, 친구가 웃기고 슬프다는 태그를 달아 이 문장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그곳을 소개해달라는 디엠이 쇄도했다. 역시,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