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뷰티 리추얼

향과 촉감으로 감각을 일깨우는 뷰티 리추얼은 일상에 스며들어 삶의 일부가 되고, 때로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바셀린과 시어버터로 회상하는 유년 시절의 행복한 순간.

BROWN BABY 어린 시절의 기억

1975년 12월 텍사스 프레리뷰 
엄마는 욕실 러그에 무릎을 꿇은 채 어린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고는 활짝 웃으며 큰 타월을 펼쳐 들었고, 욕조에서 막 빠져나온 나는 두 팔을 벌린 엄마의 품속으로 몸을 던졌다. 한없이 폭신하고 부드러운 느낌….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작은 의식은 내가 목욕 시간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피부에 남은 물기가 가시기 전, 엄마는 세면대 밑으로 손을 뻗어 온 가족용 특대 사이즈 바셀린을 꺼냈다. 타고난 피부가 건조한 탓에 묽은 로션 타입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기 때문. 대신 ‘그리스(Grease)’라는 특별한 보습제(헤어 제품으로 따지자면 포마드 왁스 정도의 텍스처)를 사용했다. 나를 눕혀놓은 채, 엄마는 두툼한 젤리 통에 두 손가락을 넣어 제품을 듬뿍 덜어낸 후 정성껏 발라줬다. 그동안 나는 두 눈을 감고서 얼굴을 찡그렸다가 폈다 하길 반복했다. 엄마가 장난스레 ‘녹슬기 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던 무릎과 팔꿈치를 포함해 온몸 구석구석이 그녀의 손을 스치고 나면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포근한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동화책을 보다가, 살포시 잠이 드는 내게 엄마는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SUMMER SOFT 부드러웠던 여름

1995년 7월 뉴욕 브루클린
7월의 넷째 주말엔 ‘국제 아프리카 아트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는 아프리카 문화를 기념하는 연례행사이자 미국 내 흑인이 모이는 가족 상봉의 날과도 같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유티카 애비뉴(Utica Ave.)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베드스타이 역에서 내려야 한다. 베드스타이라 불리는 베드퍼드-스타이브센트(Bedford-Stuyvesant)는 ‘죽거나 미치거나(Do or Die)’ 정신의 본고장이자 래퍼 제이지와 노토리어스 B.I.G의 고향이다. 지하철 터널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서면 콘크리트의 뜨거운 열기가 반긴다.
아프리카 타악기인 젬베를 두드리는 소리, 아티스트를 따라 길게 늘어선 이젤, 그리고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린 나는 살랑이는 드레스를 입고, 미드나잇블루 컬러 립스틱을 바른 채 거리를 활보했다. 마켓에서는 가판대를 돌면서 머드클로스(진흙으로 염색해 만든 말리 전통 줄무늬 천)를 만지작거리거나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구경했다. 한 테이블에는 깡마른 두 형제가 각종 인센스와 세이지 오일 그리고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아이보리색을 띤 그건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 같았다.
“이건 뭐예요?” 나는 봉지 하나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면서 물었다. “시어버터예요. 고향인 세네갈의 시어 열매로 만들었죠. 피부에 정말 좋아요. 문질러보세요.” 그는 작은 나무 스틱을 꺼내 시어버터를 덜어 내 손등에 가볍게 얹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제형에서는 한없이 달콤한 견과류 냄새가 났다. “이거 두 봉지랑 나그참파 인센스 한 박스 주세요!” 축제 현장을 떠나기 전에는 소꼬리 스튜, 쌀, 완두콩, 양배추, 그리고 매콤달콤한 소렐 샐러드를 파는 긴 줄에 합류했다. 그날 밤, 이상형의 누군가가 꿈에 나타났다. 시어버터를 건네자 그는 내게 마사지를 해준다. 아, 부드럽고 황홀하다! 밖에서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내게 바짝 기대어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은 정말 부드러워요.”

    에디터
    김민지
    포토그래퍼
    JOSEPHINE SCHIELE
    KAREN GOOD MAR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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