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로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알려진 알루미늄. 이것이 과연 뷰티 업계의 영원한 난제인 화장품 폐기물 처리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뷰티 에디터의 특권 중 하나는 새로 나온 화장품을 마음껏 테스트하는 일이다. 다만 이런 행동이 환경 파괴에 동조하는 건 아닌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가 있다. 매달 사무실에 다양한 화장품이 박스, 병, 튜브에 곱게 담겨 도착하는데, 이 중 대부분은 재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화장품 폐기물이나 포장지의 ‘퇴비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반밖에 쓰지 않은 제품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면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보며 죄책감부터 들기도 한다.

반갑게도 최근 이런 죄책감을 잠재울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이 생겼다. 알루미늄 튜브로 만든 제품은 ‘무한대로 재활용’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인지 JVN, 에버리스트 등 헤어 브랜드의 고농축 샴푸와 컨디셔너, RMS 뷰티의 크림 섀도, 르 푸르니에의 자외선 차단제, 도브의 데오드란트, 해리 스타일스의 핸드크림, 디유의 모이스처라이저(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서 쓸 수 있는 스퀴즈 키도 함께 제공된다) 등 모두 알루미늄 튜브로 만들었다. 맨 처음 이솝,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에서 알루미늄 튜브 제품을 출시했을 때 반짝이는 은색 패키지 덕분에 SNS에 인증샷이 쏟아질 것은 예견했던 바다. 그런데 반짝 인기로 식을 줄 알았던 알루미늄 제품이 어느덧 ‘지속가능한 뷰티’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거다. 과연 모두의 바람처럼 알루미늄은 ‘무한대로 재활용’ 가능한 걸까?

국제알루미늄협회(International Aluminum Institute, IAI)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생산된 알루미늄 중 무려 75%가 재활용되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 역시 9%에 불과한 플라스틱 재활용률과 달리 알루미늄의 재활용률은 35% 정도라고 했고, 알루미늄 및 스테인리스강 포장 전문 업체 베리티도 플라스틱 대비 알루미늄의 재활용률이 7배나 높다고 밝혔다. 어떻게 이런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있느냐고?

분해 후 최대 두 번까지만 재활용되는 플라스틱과 달리 알루미늄은 분해 없이 계속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성을 역으로 활용하는 분류기를 사용하면 다양한 크기의 알루미늄 패키지를 효율적으로 분류할 수 있고, 청소 과정에서 미세한 잔여물까지 깨끗하게 제거된다. 따라서 알루미늄은 영리를 추구하는 재활용 업체에 더없이 중요한 자원이다. 뉴욕시 폐기물을 처리하는 심스 재활용센터의 회장이자 1980년부터 재활용 사업을 해온 토머스 아우터브리지(Thomas Outerbridge)는 “뚜껑이 있거나 완전히 세척되지 않은 알루미늄도 재활용하기 쉽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알루미늄은 플라스틱과 달리 면적이 8cm²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조각도 전부 회수 및 재활용된다고 한다. 또 플라스틱 대체품으로 언급되는 유리보다 무게가 가벼워서 배송 시 연료 사용량과 탄소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이 재활용률을 높이고 순환 경제를 이끌 주춧돌로 알루미늄을 꼽은 이유다.

 

이쯤 되면 하나같이 ‘알루미늄이 해답이다!’라고 생각할 거다. 나 역시 드디어 뷰티 업계의 쓰레기 문제를 종결할 해법을 찾았다는 아름다운 결말로 글을 마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사실 알루미늄은 생산과정에서 플라스틱보다 지구에 더 막대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모든 알루미늄이 재활용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오히려 환경과 경제를 파괴하는 길이라는 거죠. 철광석을 채굴, 정제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거든요.” 미국 재활용 업계의 선두 주자 테라사이클의 창업자이자 CEO인 톰 재키(Tom Szaky)의 설명이다. 테라사이클의 추산에 따르면, 새로 생산된 알루미늄 용기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라는 일반 플라스틱 용기보다 2배가량 높은 기후·환경 비용을 유발한다.

미국 환경 NGO인 그린블루의 상무 니나 굿리치(Nina Goodrich)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알루미늄은 처음 만들어질 때 탄소발자국이 굉장히 높아요. 물론 재활용된다고 가정하면 이 에너지를 95%가량 절약할 수 있죠. 그 때문에 알루미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재활용 메커니즘이 있어야 합니다. 재활용할 자신이 없다면 알루미늄 용기 대신 플라스틱 용기를 택하는 편이 나아요.”

언뜻 확실해 보이던 해결책의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화장품 포장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듯하다. 퇴비화는 먼 미래이고, 나라별로 재활용 절차나 관련 데이터가 상이하다는 것도 문제다. 작년부터는 플라스틱도 극히 일부(대략 5% 미만)만 재활용된다는 데이터가 있기에 <얼루어 US>는 더 이상 플라스틱 포장을 ‘재활용 가능’하다고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주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재료에 화살표 3개로 이뤄진 삼각형 모양의 분리배출 표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흔히 우리는 분리배출 표시가 재활용 여부를 알려준다고 생각하지만, 이 표시는 플라스틱의 종류를 구분하는 용도일 뿐이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확실히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은 1번(PETE), 2번(HDP) 그리고 5번(PP)이 전부다. 내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가 몇 번에 속하는지 식별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클린 뷰티에 관한 선구자적 멀티 숍인 크레도는 2024년까지 입점 브랜드 모두 제품 용기에 플라스틱 종류를 명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미국 환경 NGO인 그린블루는 플라스틱의 종류별 포장, 폐기 방법을 명확히 표시하기 위해 표준화된 라벨링 시스템인 ‘하우투리사이클(How2Recycle)’을 만들어 뷰티 브랜드에 공급하고 있다. 결국 알루미늄도 복잡한 폐기물 처리 시스템과 알루미늄 광석 채굴 실태를 감안할 때, 뷰티 업계의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완벽한 해답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테라사이클의 톰 재키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처럼 진퇴양난 상황에서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입니다. 우리 모두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

물론 완벽하지 않더라도 꾸준한 성과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폐기물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친환경적 행보를 보이는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가 해당 문제에 관심을 갖고 컨셔스 소비를 행한다면 늑장을 부리던 뷰티 업계도 이에 맞게 대응할 거다. 크레도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업계의 이해관계자와 지속가능한 선택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