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람에 몸을 웅크리게 되는 계절이다. 겨울을 코앞에 두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왜인지 무기력해지고 가라앉는 마음을 느꼈다면 주목할 것. 홈 베이킹의 좌절과 기쁨을 기록한 책 <파도를 넘어서 케이크>의 저자 이재연이 얼루어 독자들을 위한 달콤한 디저트 리스트를 건넸다. 이름하여, 재기발랄 케이크 처방전! 다정한 위로가 녹아 있는 형형색색의 빵과 케이크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지난한 겨울을 헤쳐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브라우니 & 아이스크림 (Brownie & Ice Cream)

진득한 초콜릿 무스와 케이크, 그 사이 어디쯤의 맛과 식감을 지닌 과자 브라우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괜시리 답답하고 억울한 날. 예상치 못했던 오해를 받아 지친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쿠키 이상의 위로가 필요하다. 힘든 하루에 대한 위안 뿐만 아니라, 다시 달릴 수 있는 원동력도 더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건조한 식감 때문에 망설여진다면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어 보길. 오븐에서 갓 구운 (혹은 전자렌지에 데운) 브라우니와 만나 조금씩 녹기 시작하면, 큰 스푼으로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를 한입에 맛보자. 부드럽고 따뜻한 브라우니가 입안에서 녹을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차가운 반전을 더해줘 정신이 번쩍 든다. 뜨거운 샤워로 하루의 서글픔을 벗겨내듯, 달콤시원한 개운함을 선물할 것이다.

 

스니커두들스 쿠키 (Snickerdoodles)

시나몬 설탕으로 뒤덮인 미국식 쿠키. 바삭하기보다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쓸쓸한 계절, 변화하는 날씨에 몸이 쳐지기 쉬운 때다. 특별히 우울하진 않지만 자꾸만 이불 속을 파고들게 되는 건 왜일까? 이상하게도 이 기분이 싫지 않아 굳이 피하지 않고 싶은 날, 회색 빛 차가운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스니커두들스 쿠키를 곁들여 보자. 한입 베어 물면 시나몬 설탕이 흩날리듯 떨어지고 입안 가득 따스한 계피 향이 퍼진다. 보기보다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에 감탄하며 다른 하나를 집어들게 될 것이다.

 

피스타치오 체리 케이크 (Pistachio Cherry Cake)

피스타치오 시트에 싱싱한 체리와 부드러운 크림을 더했다.
낙관적 감정을 세상에 소리 내어 표현한다면 돌아오는 메아리는 어떤 맛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피스타치오 체리 케이크에 있다. 향기로운 피스타치오와 신선한 체리의 조화로움은 비단 맛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신선하고 검붉은 체리와 여린 연두 빛의 피스타치오 시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의 채도가 높아지니까. 삶에 대한 애정과 기쁨이 마구 샘솟는 날에는 견과류의 고소함과 체리의 향이 촘촘히 배어 있는 이 케이크를 추천한다.

 

올드패션드 도넛 (Glazed Old-Fashioned Doughnut)

케이크 식감을 가진 미국식 도넛. 튀킨 도넛에 글레이즈를 덮어 만든다.
디저트의 홍수 가운데 선두를 꼽자면 단연 미국식 도넛이 아닐까. 크림으로 속을 그득 채운 도넛은 먹을 만큼 먹었다면, 이제는 올드패션드 도넛을 맛봐야 할 때다. 클래식한 링 모양의 올드패션드 도넛은 빵이 갓 튀겨져 따뜻할 때 묽은 설탕 글레이즈로 코팅해 만든다. 글레이즈가 식어서 굳었을 때쯤 먹으면 되는데 케이크 같은 식감을 가지고 있어 재미있다. 봉긋하고 동그랗게 만들어진 크림 도넛과는 다르게, 튀기면서 표면이 갈라져 삐죽삐죽 불규칙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할 부재료도 없어 상대적으로 수수해 보인다. 친구와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며 맥주 한 캔을 나눌 때의 소소한 행복을 이 작은 도넛에서 느낄 수 있다.

 

까눌레 (Canelé)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수도원에서 탄생한 작은 과자. 진한 색이 나도록 구운 커스터드로 딱딱한 표면과 부드러운 속 식감이 조화롭다.
주름잡힌 기둥을 연상케 하는 까눌레는 계란 노른자와 럼주를 이용하여 만든 커스터드 과자다. 우아한 외모와는 달리 두꺼운 표면은 칼로 힘주어 잘라야 할 만큼 단단하다. 한입 베어 물면 와그작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고 풍부한 맛의 커스터드가 나타나는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식감의 차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어려움을 만나고 이겨내며 강해져가는 이들에게 단단하게 빛나는 표면과 폭신하고 달콤한 속을 가진 까눌레를 추천하고 싶다. 작은 성취일지라도 좋다. 크기와 정도를 떠나, 삶에서 뿌듯한 성장의 순간을 목도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반짝이는 까눌레 한두개를 선물하는 거다. 느리더라도 열심을 다해 매일을 살고 있다면 언제든 자신의 삶을 축복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 축복은 이 작은 까눌레 하나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