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소설, 에세이, 그리고 단어가 된 이달의 신간 8. 

| 아라의 소설 |
작가에 따르면 ‘아라’는 가장 과감한 주인공에게 자주 붙이는 이름이다. 이 소설에는 수많은 아라가 등장한다. 어떤 아라는 소설가이고, 다른 아라는 고민이 있다. 모두가 아라로서 존재한다. 그 아라를 따라서 세계를 유영하고 또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다. 동시대에 사랑받는 소설가 정세랑 최초의 ‘미니 픽션’ 속 아라는 또 그만큼 사랑스럽다. 등단 초기인 2011년부터 몇 개월 전의 작품까지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짧은 소설을 모았지만, 언젠가 긴 이야기가 될지도. 정세랑 지음, 안온북스 

| 햄닛 |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의 작가 매기 오패럴의 신작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주인공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아내(애그니스) 사이에는 딸 수재나와 쌍둥이 남매 햄닛과 주디스가 있었고, 이중 아들 햄닛은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그로부터 4년 후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발표했다는 단서로부터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애그니스가 소설의 또 다른 중심이 되며 더없이 생생한 셰익스피어가 탄생했다. 매기 오패럴 지음, 문학동네 

 

| 주식회사 르브론 제임스 |
NBA 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이름을 붙인 나이키 한정판이 값비싸게 거래된다는 건 알 거다. 당연히 부자겠지 싶지만, 그의 자산이 약 1조3천억원에 달하는 건 잘 모른다. 자산 중 연봉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을 사업을 통해 벌었다. 워런 버핏마저 그의 수완에 감탄했을 정도. <주식회사 르브론 제임스>는 농구선수인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따라간다. 모든 선택은 비즈니스가 됐고, 그것이 지금의 가치를 만들었다는 것. 브라이언 윈드호르스트 지음, 사람의 집 

| 산책의 언어 |
돌비알, 너설, 서벅돌, 바위츠렁…. 모두 바위에 대한 단어다. 오보록하다, 메숲지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숲을 설명하는 말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대박!’ ‘미쳤다!’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세대에게 단어의 힘을 일깨우는 책이다. 하늘, 땅, 물, 식물, 동물, 시간, 계절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것에는 모두 합당한 이름이 있었다. 사전과 에세이를 합친 형식으로, 작가의 말처럼 아무 페이지를 펴서 읽어도 좋다. 우숙영 지음, 목수책방 

 

| 나, 프랜 리보위츠 |
<도시인처럼>으로 OTT 팬에게 존재감을 알린 프랜 리보위츠의 칼럼을 엮었다. 대체 프랜 리보위츠가 누구냐고? 택시 운전기사, 청소부, 포르노 작가를 거친 <인터뷰>와 여러 매체의 칼럼니스트다. 촌철살인을 탑재한 그의 매서운 눈초리에 걸리면 바로 말감, 글감이 되고, 그에 대한 만평은 다트처럼 콕콕 날아와 박힌다. 뉴요커의 시니컬함은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다.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취향에 맞는다면 세상에서 제일 웃긴 책이 될 것. 프랜 리보위츠 지음, 문학동네 

| 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 |
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인생을 살아봐>는 대학교 졸업식 후 친구와 하룻밤을 보낸 나탈리의 두 가지 ‘인생극장’을 보여준다. 임신한 나탈리는 미혼모 엄마가 되어가고, 임신하지 않은 나탈리는 꿈을 향해 달려간다. <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의 주인공 로즈 앞에는 9가지 삶이 있다. 남편과 임신과 출산 문제로 갈등을 빚는 로즈의 선택에 따라 삶은 변화한다. 책을 읽으면 내내 그런 생각이 들 거다. 우리나라와 똑같네? 여성의 삶은 이렇게나 닮았다. 도나 프레이타스 지음, 문학동네 

 

| 타인의 집 |
숙박 공유 업체에서의 범죄나 분쟁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개인 윤리에 의존해야 하고, 언제든 범죄자에게 악용될 수 있는 공유 플랫폼의 한계를 스릴러의 소재로 삼았다. 남자 친구 존과 헤어진 로렌은 친구들과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난다. 공유 숙박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숙소에서는 낯선 사람이 집에 출입한 흔적이 보이고, 존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스토킹 범죄와 불법 침입, 가스라이팅, 안전 이별 등 여성을 노린 범죄의 이면. 제시카 발란스 지음, 황금가지 

| 소설 만세 |
소설가 정용준이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에세이를 썼다. 이 사람, 정말 소설에 진심이다 싶다. 정용준은 2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바벨>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정용준 아니면 쓸 수 없는 소설이었다. 그의 책은 사춘기 소녀, 질풍노도의 회사원, 환갑을 넘은 엄마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소설은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는 일”이라는 구절에서는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따스함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소설가 만세다. 정용준 지음,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