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고 더욱 단단해진 배우 정유미를 만났다. 가을의 문턱에서, 새로운 기대감을 잔뜩 안고. 

격자무늬 케이프와 네이비 컬러 니트 풀오버, A라인 스커트는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Weekend Max Mara).

격자무늬 재킷과 팬츠, 베이지 컬러 터틀넥, 플랫폼 부츠는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케이블 니트 스웨터와 더플코트, 체크 패턴 ‘파스티치노 백’, 블랙 레이스업 부츠는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여기 정선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네요. 원래는 혼자 운전하고 오려고 했다면서요? 보통 ‘연예인’은 그렇게 하지 않죠.
혼자 촬영장에 운전해서 갈 때가 가끔 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혼자 와볼까 했는데, 결국은 매니저님 차 타고 왔어요. <차우>를 정선에서 찍었는데, 그 이후에는 처음 온 것 같아요. 체력만 됐어도 제가 운전하는 건데.

<여름방학>도 강원도 고성이었죠?
강원도를 좋아해요. 심심할 때 지도를 보다가 여유가 생기면 가보는데, 강릉이나 속초는 번화하니, 고성 가보고 동해, 삼척까지 내려갔거든요. 아예 강원도에 집을 두고, 서울은 일하러만 올라가도 좋겠다 싶었어요. 어릴 때 그런 생각 많이 하잖아요. 고성의 집을 알아보면서 지인들과 이런 저런 생각을 공유하게 된 거죠.

지금도 생각해요, 저는. 속초에 집 하나 두고 싶다고요.
저는 부산 사람인데, 어릴 적 생각해보면 강원도를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강원도가 그렇게 멀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고성에서 예능을 하자고 했을 때도 너무 기뻤어요.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도 정말 좋으셨거든요.

최우식 씨와도 편하게 잘 지내더라고요. 다른 시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방송으로 보니까 저를 두고 가끔은 누나일 때도 있고, 가끔은 친구 같을 때도 있고, 가끔은 동생 같을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각자 하는 일이 있지만, 모르죠 또. 어쩌다 제가 예능인이 된 걸까요? 원래 우리 만나면 영화 얘기밖에 안 했는데.(웃음)

아직도 신기해요. 그 정유미가 이렇게 예능인이 되다니.
저는 이제 ‘윤식당 정유미’예요. 제가 이러고 있을 줄이야.(웃음) 괜찮아요, 근데.

그것도 정유미잖아요. 예능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친근해진 건 어때요?
그걸 바라고 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하면서 그런 친근함이 생기는 걸 알게 됐어요. 처음엔 회사도 저도 섭외 전화에 너무 놀랐죠. 연기하는 거 외에 다른 걸 보여주는 게 방해된다고 생각했던 ‘옛날 사람’이라서요. 예전에는 저를 노출하지도 않았고요.

그런 틀을 깨는 것도 도전이었죠?
‘예능을 해볼까?’라는 것보다 윤여정 선생님이 하신다고 하니까 한 게 커요. 하지만 ‘그 상황을 한번 즐겨볼까?’ 생각한 것 같아요. 뭐랄까, 시간이 좀 많이 지나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 나름 큰 용기를 낸 거죠. 왜냐하면 늘 저도 익숙한 사람들과 일하거나 하던 일만 하고,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로 인해 정유미의 세계가 넓어졌죠? 그런 게 느껴지거든요.
그건 확실해요. 저 스스로 느끼는 게 컸어요. 왜 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잘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르신들이 엄청 많이 알아봐주시는 거예요. 다양한 질문이 오가니까 내가 그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하게 되고요. 그런 것도 그 예능을 안 했으면 알지 못했을 것, 못 느꼈을 감정이었을 테니까요.

 

레드 컬러 니트 톱, 격자무늬와 프린트 디테일의 스커트, 가죽 부츠는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멀티컬러의 스트라이프 패턴 스웨터, 안에 레이어드한 데님 셔츠, 옐로 컬러 팬츠, 플랫폼 부츠는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클래식한 트렌치코트와 그레이 니트 톱, 페이즐리 패턴의 ‘베네치아 파스티치노 백’은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예전보다 뭐가 가장 달라졌어요?
그렇게 알려지면 못하게 되는 게 많아질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됐거든요. 훨씬 더 자유로워졌죠. 여러 평가를 받았는데, 그중에는 맞는 것도 아닌 것도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됐어요. 똑같이 했을 뿐인데 보는 사람들은 다 다르게 보니까요. 오히려 더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요.

‘케세라세라’가 된 거네요. 될 대로 되라고.
맞아요. 그런데 그게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됐어요. 이럴 때는 이래야 한다는 강박이 저도 어떤 부분에는 있었는데,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윤식당이) 세 번 지났잖아요. 언제까지 할까요. 하하.

나중에 한참 어린 후배들이 “정유미 선생님이 하신다고 해서 했어요”라고 할지도 모르죠.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돼요.
하하하! 그려지지도 않아요. 그런데 봐요, 기자님도 질문이 다르잖아요. 만나서 인터뷰할 때마다 진짜 좋았어요. 어떤 질문을 받느냐도 정말 중요한 것 같거든요.

우리가 처음 만난 게 2007년인데, ‘제가 스타성이 없다고요? 칫, 두고 보라고 해요’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정말 그 말대로 됐죠. 수없이 매거진 커버를 찍고요.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만 제가 광고를 찍거나 매거진 커버를 찍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애초에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조차 안 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이렇게도 가끔 얼굴을 보이게 되네요?

옛날에는 화보 찍을 때 어색하다고 등 뒤에 숨고 그랬는데!
지금도 그래요. 잘 아시잖아요. 화보는 수십 장 중에 하나가 나오는 거예요.(웃음)

요즘 화보는 힘을 뺀 담담함이 제일 중요한데, 너무 잘하잖아요.
그건 엄홍식(유아인)한테 간접적으로 배운 거 같아요. 예전에 한 번 화보를 같이 찍었는데, 걔가 혼자 계속 움직여요. 숨을 스읍~ 하~ 하고. “뭐지 저건?”(웃음) 그랬죠. 1년에 한두 번 화보 촬영하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자주 나오면 보는 분들이 질릴 수도 있으니까.(웃음)

지금 촬영을 마친 작품이 세 작품이나 있죠. 곳간에 쌓아둔 곡식처럼 이제 세상에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요. 든든해요?
예전에는 저도 ‘농사 지어 놓은 게 좀 많아서’라고 얘기했는데, 요즘은 코로나19 이슈도 있으니 정말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이건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는 굳이 묻지도 않아요. 이렇게 누가 물어보면 ‘아, 맞다. 세 개 있었지’ 해요. 세 개나 있더라고요.(웃음)

세 작품을 말해보면,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영화 <원더랜드> <잠>이 있죠. 언제 볼 수 있어요?
정말 몰라요. 제 작품뿐 아니라 영화사나 소속사 창고에 밀린 작품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을 거예요.(웃음)

생각난 김에 골동품을 여기 가져왔어요. <사랑니> DVD. 배우 정유미의 시작이죠.
와, 대박. 이거 명작이잖아.(웃음) 이거는 너무 시대를 앞서간 영화예요. 와우. 제 첫 작품. OST도 진짜 좋고요.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사랑니>도 OTT로 다 볼 수 있어요. 필모그래피를 쭉 보면, 정유미의 행보가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몇 년 전까지는 일하는 것도 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장에 가도 재미있고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쉴 때는 쉬어야겠다 싶어요.

 

멀티 패턴 카디건과 데님 셔츠는 위크엔드 막스마라.

카키 컬러 하프 점퍼와 그린 니트 톱, 카고 스커트, 레이스업 부츠는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다른 배우도 허리나 목 아픈 사람 많거든요. 저도 그런 게 온 거죠.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해보니까, 아쉽더라고요. 몸이 회복되어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겠다….

지금은 푹 쉬고 있나요?
네. 쉬는 게 더 바쁘던데요?(웃음) 저도 주말밖에 안 쉬어요. 운동하고 재활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푹 자고요.

이런 낯선 곳에서도 잘 자요?
낯선 곳에서 되게 잘 자요. 호텔도 좋아하고, 호텔 침구가 좋고요. 여기 침대 어디 거냐고 전화한 적도 있어요. 좋은 침대를 사려면 비싸니까 좀 고민했는데, ‘수면의 질이 연기와 직결된다’는 친구 말에 혹해서 샀어요.

가장 최근에 촬영한 영화 <잠>이 수면 중 이상행동을 다루죠? 무서운 영화 같던데요?
사람들이 저를 무서워하겠죠.(웃음) 문제를 해결하는 부부의 이야기예요. 저랑 선균 오빠 둘만 나오고 집 안에서만 일이 일어나거든요.

무서운 영화 좋아해요? 그동안 호러 작품을 한 적은 없잖아요.
저도 잘 못 봐요. 그런데 저희 영화는 달라요. 감독님을 만나서 이 영화는 뭐냐고 물어봤더니 “저는 공포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포영화에 바탕을 둔 러브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하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표현 방식이 다른 영화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언제 볼 수 있나요?
모르죠.(웃음) 보면 작품도 모두 운명이 있는 거 같아요.

확실히 그런 태도가 생겼네요. 이제 내 손을 떠났다는.
그냥 공 던지면 끝내는 스타일이에요. 던졌다! 맞았다! 오케이! 안 맞았다? 어떡하지?(웃음)

득점왕이 되고 싶어요?
주어진 시간 안에서 감독님들 혹은 작가님이 원하는 걸 하고 싶어요. 특히 이경미 감독님과 할 때는 감독님이 원하는 게 너무 명확해서 좋았어요. 디렉션 주시는 그걸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어요. 그게 딱 맞아떨어졌을 때는 너무 좋은데 안 됐을 때는 아쉽게 집에 돌아가고는 해요.

현장에는 어떤 마음으로 나가요?
어쩔 때는 운동선수 같기도 해요. 끝나면 항상 아이싱을 15분 하고. 촬영할 땐 맨날 김밥 먹고 스트레칭하고. 집에 장비가 엄청 많아요. 살아야 하니까, 해야 하니까.

커리어를 이어가는 건 선택의 연속이잖아요. 고민을 아직도 많이 해요?
참 신기한 게 하고 싶은 게 동시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여전히 너무 고민이 돼요.

그때는 누구 손을 들어줘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사람?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게 변했지만, 직업이 배우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잖아요. 어떤 거 같아요? 직업으로서의 배우.
일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운 일이잖아요. 거기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은 거고요. 그 안에서 ‘무조건, 죽어도 잘해야 해’ 하는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런 시기는 지나가니까요.

그런 정유미가 <얼루어> 9월호의 얼굴이죠. 여름은 가고, 이제 가을이에요.
여름을 아직 못 즐겼는데요. 수영복만 잔뜩 사놓고!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