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몸과 목소리를 바꾸며 전혀 다른 장르를 노래하는 가수 유채훈. 그는 여전히 불러본 적 없는 노래를 상상한다. 

톱은 프레드 페리(Fred Perry).

톱은 리바이스(Levi’s). 재킷과 쇼츠는 우네리(Uneri). 슈즈는 닥터마틴(Dr.Martens). 네크리스는 실크(Sylk).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은 오베이(Obey). 재킷은 기호(Kyho).

올해는 여름에 만나네요. 지난겨울에 라포엠으로 만났을 때는 무척 바빴잖아요.
요즘은 좀 더 바쁜 것 같아요. 팀 활동도 하고 이제 개인 활동도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더 바빠졌어요. 문화콘서트 난장 MC도 보게 됐고, 라디오와 방송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바빠서 감사한 일이죠. 

그사이 라포엠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가 열렸어요. 두 번째는 어땠어요?
첫 번째 콘서트 때는 사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처음이니까 부담감도 있었고요. 두 번째 콘서트는 확실히 더 즐기면서 한 것 같아요. 당시에 함성이 안 되고 자리 띄우기를 해야 했던 건 좀 아쉬워요. 

유독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나요?
이번에 저희가 춤을 췄어요. YGX 이삭 님한테 배웠는데 모자를 던지는 안무가 있었어요. 저희가 어설프니까 무대 위에서 다른 멤버 얼굴에 던지고 난리가 난 거죠. 그래도 재밌었어요. 저희는 진짜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했는데, 팬들은 귀엽게 보시더라고요. 재롱 잔치처럼요. 서로 생각하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웃음)

춤추는 라포엠을 또 볼 수 있을까요?
막내는 다시는 하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춤을 잘 못 춰서 민망하고 부끄럽대요.(웃음) 그런데 전 추진하고 있어요. 다음 콘서트 때는 아예 이삭 님과 함께 무대에 제대로 서보자며 밀고 있는데, 멤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정엽과 듀오 콘서트도 했죠. 어떻게 같이하게 된 건가요?
같은 회사에서 선배님으로 처음 만났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음악적 취향도,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MBTI도 똑같아요. 둘다 ENFP거든요.

빠르게 친해졌어요?
회사에서도 둘이 너무 잘 맞다 보니 같이 공연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듀오 콘서트까지 기획하게 됐어요. 학창 시절 얘기를 하다 공통적으로 모타운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도 자연스럽게 모타운 음악을 중심으로 흘러갔어요. 정엽 형님은 워낙 잘하는 레퍼토리였고, 저는 너무 좋아하는데 한 번도 무대에서 할 일은 없었던 장르였죠. 그래서 부담스러웠는데 그냥 편하게 하라며 많이 도와주셨어요. 

해본 적 없는 장르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자유롭게 했어요.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하고 싶은 마음에 집중했거든요. 무대에서 막 뛰어다니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율동도 하고 관객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요. 관객과 제대로 함께하는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신선하더라고요. 사실 원래 공연은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 2년 넘게 활동하면서 처음 경험한 거죠. 아, 이 맛에 공연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블로그도 열심이고요.
서른 넘어서까지 음악으로 잘 안 풀리니까 아예 진로를 바꿀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워낙 예전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사진 찍는 작가님들과 어울리다 보니 정말 사진작가를 해볼까 싶었거든요. 블로그에 올리는 건 주로 일상 사진인데, 그것 외에 인물 사진도 자주 찍어요.

사진의 어떤 면이 좋아요?
사진은 ‘내 거’ 같아요. 음악은 제가 작곡을 하는 창작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곡을 받은 보컬리스트이고 퍼포머잖아요. 사진은 내 마음에 드는 걸 내가 찍고 내가 만드는 거라 좋아요. 그리고 취미라서 더 즐길 수 있는 것도 있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잖아요. 힘들 때 사진을 찍으면 좀 해소되는 것 같아요. 저만의 도피처 같은 거예요. 

창작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음악도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멜로디 같은 게 진짜 막 좀 떠오르더라고요. 나중에 작곡을 좀 해보고 싶기는 해요. 블로그를 쓰면서 느꼈는데, 글을 쓰는 건 어렵지만 멜로디는 좀 더 익숙한 것 같거든요. 

뭔가를 남기고 기록하는 걸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네요.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자주 시청하는데, 볼 때마다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좋아하는 스타의 다큐멘터리만 봐도 활동했을 때부터 기록한 것이 다 남아 있더라고요. 나중에 봤을 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은 것도 있어요. 인연이라는 게 지금은 다 좋고 평생 갈 것 같다가도 이유가 있든 없든 멀어지고, 과거의 것이 되고,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예전 기록을 보다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나요?
너무 많은데 하나를 꼽는다면 고등학생 시절, 10대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금의 나도 좋지만 그때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삶을 사는 내가 궁금해요. 

다시 음악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인가요?
음악 하면서 괴로운 일을 너무 많이 겪었거든요. 지금은 물론 너무 좋지만 그 과정을 다시 겪으라고 한다면 힘들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할 것 같아요. 원래 미술 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진짜 좋아했어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보여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처음 말하는 건데, 전 공연을 하면서 같은 걸 반복할 때가 제일 힘들어요. 같은 무대, 같은 노래를 계속하는 것도 괴롭고요. 저는 집중해서 준비한 걸 한 번에 쏟아내고 나면 신선도와 흥미가 확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음악을 하다 보면 어쨌든 반복해서 활동해야 하는 건 불가피하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새로운 거, 해보지 않은 거를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다양한 음악 장르를 시도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되든 안 되든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보니 음악에서도 여러 장르를 해온 것 같아요. 스스로를 좀 괴롭히는 스타일이죠. 일주일 전에 클래식 공연을 하더니 며칠 있다가 팝 공연을 하고 그래요. 이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준비하는 동안 엄청 부담되고 헷갈려요. 소리 길이가 바뀌고, 몸이 바뀌어야 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도 재미없는 것보다는 몸이 지치는 게 나아요.

첫 개인 미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어떤 유채훈을 볼 수 있나요?
준비 단계부터,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말을 계속했어요.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쪽으로 모험하는 건 욕심인 것 같았거든요. 라포엠에서는 파트가 정해져 있었고 제 역할이 분명했는데 이제 저 혼자 노래 한 곡을 다 불러야 하니, 문득 내 보컬의 매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내 목소리가 대중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 질문을 따라가며 준비했던 것 같아요.

의문 끝에 확신을 갖게 되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70% 정도예요. 아직 당연히 만족은 안 되고 방향만 잡은 거죠. 에코브릿지 선배님과 작업하면서 제가 한 번도 내지 않은 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생소하니까 제 목소리 같지 않고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잘 이끌어주셨어요. 아마 저를 아는 사람이 듣는다면 좀 놀랄 것 같아요. 모두 처음 듣는 유채훈일 거예요. 

크로스오버 그룹, 팝페라 가수, 성악가 등 유채훈을 수식하는 말이 많아졌어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어요?
그래도 가수라는 말이 가장 좋아요. 그냥 노래하는 사람. 가수는 어쨌든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잖아요. 가수 유채훈이 성악도 하고 록도 하고 크로스오버도 하고. 이게 맞는 것 같아요. 테너는 제가 전공했기 때문에 붙는 거니까요. 결국 테너도 가수인 거고요.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노래를 한창 배울 때는 노래 부르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요. 대학생 때까지는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하루 종일 부를 정도로요. 이후 직업으로서 노래를 하게 되니까 노래 자체보다는 무대가 좋아졌어요. 저는 무대 체질이라는 말 되게 많이 듣거든요. 연습할 때나 리허설할 때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그림을 그리는데 텐션 자체가 낮아요. 근데 무대 위에 서면 갑자기 어디서 그런 정신이 나오는지 정신줄을 놓고 해요. 

음악을 언제까지 하고 싶어요?
아직 음악에는 호기심이 남아 있어요.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나중에 이걸 다 쓰면 미련 없이 떠날 거예요. 왜냐하면 이제 다 했던 거니까요. 제 성격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