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울 건 없다고, 쓰고 싶은 내 소설을 쓴다고 말하는 소설가 우다영. 

원피스와 네크리스는 에디터 소장품.

우다영

2014년 등단 이후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중편소설 <북해에서>를 썼다.

첫 소설의 기억이 궁금하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는데 대학교 정시 때 쓴 게 첫 소설이었다. 분량이 너무 짧아 이게 소설인가 싶었다. 그때 주제가 ‘다리 위에서’였는데 두 이야기를 교차해서 쓴 게 기억난다. 나름 복잡하게 쓰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나 싶다.(웃음)

우연한 계기로 소설가가 되었다고 들었다.
책을 쓰기 전에는 소설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뭔가 흘러가고 나서야 깨닫는 편인데, 소설 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쓰고 보니, 점점 생각할수록 어릴 적부터 늘 소설을 좋아해왔다. 요즘은 소설에 집중하는 동시에 좋아하는 걸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운동을 하면서 체력도 좀 챙기고.

소설이 잘 안 써질 때도 있나?
그럴 때는 모든 딴짓을 다 해본다.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괜히 혼자 새로운 걸 공부해보기도 하고. 이야기해보니 다른 작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더라. 그래서 소설 쓰기 전에 굉장히 바쁜 편이다. 최근에는 명리학과 점성술을 공부했다. 바빠서 글을 전혀 쓸 수 없는 일정일 때는 계속 메모를 한다. 걸어 다니다가도, 전철이나 버스에서도, 이야기를 하다가도 잠깐씩 소설에 접속했다 빠져나오는 식이다. 메모는 장면일 때도, 대사나 정황의 순서일 때도 있다.

등단 이후 꽤 시간이 흘렀는데 변화한 점이 있나?
소설에 대한 생각이 정말 많아졌다. 예전에 30% 정도였다면 지금은 93% 정도다. 이래도 되나 싶은데, 아무래도 이 직업이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직업이라 그런 것 같다. 갈수록 더 좋아하고 더 시도하고 싶고, 그렇게 생각할수록 재미있게 느껴진다.

소설의 주제로 ‘우연’을 자주 말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이 마냥 이상했다. 누군가 다치고 누군가는 위험을 피하는 일이. 그래서 그 일과 그걸 둘러싼 인물에 집중한 이야기를 첫 소설집에 썼다. 그 후에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원인과 결과를 고민했고, 그래서 시공간이 뒤섞인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지금은 인과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의 메커니즘으로 풀고 싶어 공상과학(SF) 소설을 쓰며 체계를 꾸리는 중이다.

최근 ‘긴 예지’라는 첫 SF 소설을 썼다.
너무 힘들었다. 보통 소설의 색채나 분위기를 정한 채로 썼는데 평소 방식과 다르다 보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SF는 어떤 세계의 설정에 기반해서 나아가는 이야기다 보니 쓰면서도 어색하고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솔직히 수십 번을 지우고 다시 썼다. 쓸 때는 힘들었지만 쓰고 나니 이 다음에 쓰고 싶은 SF는 이렇게 쓰면 되겠다는 감을 잡아서 기쁘다.

독자 반응도 찾아보는 편인가?
하루 한 번씩 검색하고 있다.(웃음) 만약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으면 내 이름이나 소설로 해시태그를 달면 된다. 좋게 보는 분도 있고, 의도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읽는 분도 있는데 모든 반응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내 소설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약간 충격이었다. 왜 어려운지 전혀 이해되지 않아서 그 부분을 계속 생각했는데 이제는 받아들였다. 누구나 사고하는 방식,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그 차이가 난해함으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다.

몽환적이고 신비롭다는 평도 자주 나온다.
그럴 의도로 쓴 게 아니었는데, 처음에 그런 표현을 들었을 때 좀 놀랐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더 구체적으로 써도 계속 그런 평이 나오길래 그냥 ‘이게 내 스타일이구나’ 싶었다. 오히려 이제는 그런 인상을 받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하면서 내 소설에 대한 분석을 한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나를 통과해 나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비슷하다. 일종의 필터라고 할 수 있다. 컵 하나를 보더라도 컵이 있다는 사실 외에 컵을 둘러싸고 교차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편이다. 이 컵이 여기 놓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고 컵에 그려진 캐릭터가 나온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 식이다. 생각이 많고 난잡한데(웃음), 그게 소설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유의미할까?
의미가 있다. 분리해야 이해하기 쉬운 것이 있는데, 문제는 그걸 구분할 용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순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는 것 같다. 순문학도 장르문학도 그 안에서 세분화되는 것이 워낙 많으니 단어만으로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예창작과 출신 소설가 하면 순문학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그 이미지가 분명 실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웃기지만 작가들은 모두 제각각의 근거로 자신이 소설가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웃음) 소설가 하면 골방에서 읽고 쓰는 고정 이미지가 있는데, 내 소설이 시작되는 지점은 대부분 일상이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 소설을 쓰러 갈 때 소설가의 상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90년대생 작가로 호명되는 건 어떤가?
이해하기 위해 편의상 나눈다고 생각한다. 나누시겠다면 나눠라 하는 마음이고(웃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신기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분석한 특징을 역으로 대입해 읽으니 이런 게 이상했다는 거구나,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도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에게 익숙한 집단 밖은 늘 신기하고 관찰 대상이 된다.

문학에도 트렌드가 있을까?
하나의 시장이다 보니 주도하는 흐름이 있는 건 맞다. 그런 흐름이 있는 건 재미있지만 그 흐름에서 벗어난 다른 소설을 촌스럽다고 여기는 건 단순한 평가가 아닐까. 유행이 도는 건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하지만 유행의 바깥에 있는 소설을 대하는 방식은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일은 어떤가?
10~20년 전에 작품을 써온 작가라면 괴로웠을 수도 있을 거다. 독자가 사라지고 시장이 작아지는 걸 죽 지켜봐야 했으니 박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이미 졌다고 완전히 인정하고 시작한 세대다. 어차피 진 상태에서 시작해 이제 더 질 수는 없지 않나.(웃음) 어떤 분야든 이렇게 점점 좁아지면 더 돈독해지고 마니아적인 커뮤니티가 생성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곳을 보러 왔을 때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튼튼한 인프라를 잘 만들어 놓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그냥 하던 걸 열심히 하려고 한다.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받나?
가끔 내 소설로 위로받았다는 독자가 있는데, 나도 소설을 완성하며 위로를 받는다. 내 안에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던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 분명한 형태나 색으로 완성되며 끝나는 걸 보면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느낀 게 비슷하게라도 전달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지 않나. 이게 문학이다. 모두 문학을 하면 좋겠다.

우다영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는 작품을 고른다면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추천하고, 처음부터 아주 혼란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해변 미로’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