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좇아 채워 넣던 필러는 시간이 흐르면 골칫덩이가 되기도 한다. 필러 제거 시술 전, 알아두면 좋을 정보와 에디터의 필러 제거 경험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괜찮아, 필러나 맞으러 가야겠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가 갑작스레 일이 생겨 시간을 미루자고 하자, 들은 말이다. 미안하다며 사죄하는 나에게 대수롭지 않게 필러를 맞으러 가면 된다고 하더라. 아니, 집 앞 편의점에 들르는 것도 아니고, 필러를 이렇게 갑자기 쇼핑하듯 맞는다고? 결국 친구의 쿨내 나는 시술은 인생 큰 실수로 남았다. 그때 맞은 필러를 녹이느라 여간 고생한 게 아니었다고.
사실 이렇게 충동적으로 맞은 필러 때문에 고생하는 건 비단 내 친구만의 일은 아닐 듯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에는 애굣살 필러 후기, 입술 필러 비포&애프터, 코 필러 리뷰 등 온갖 부위의 필러 시술에 대한 영상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 이제는 턱 필러 녹이기, 이마 필러 제거 시술 등 맞았던 필러를 다시 제거하는 내용의 영상으로 교체됐다. 필러는 개인의 얼굴형이나 생김새와 어우러지는 맞춤 시술이 필요한데, 그저 유행만 좇아 필러를 맞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유어클리닉 서수진 원장은 “특정 유행이 지나가면서 필러를 제거하러 오는 분이 있어요. 기존에 시술한 필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녹이려는 분도 있고요. 필러를 맞는 부위가 다양한 만큼 제거하려는 욕구도 그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필러로 만든 통통한 애굣살, 터질 듯한 입술, 뾰족한 턱이 아름다운 불변의 미는 아니다. 미의 기준을 획일화한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지만, 온갖 SNS와 미디어의 차고 넘치는 시각 공격을 받는 지금 내 눈에 익숙한 미가 자리 잡을 수는 있다. 중요한 건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당장 머릿속에 각인된 이 아름다움을 흡수하는 대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내다봐야 한다. 

필러 제대로 녹이기

필러는 그 종류가 다양하고 성분과 배합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크게 인체 피부 구성 성분과 유사한 히알루론산(HA) 필러, 칼슘 필러, 혼합 필러로 나뉜다. 그에 따라 녹이는 방법도 달라지는 것. 하지만 필러를 녹이러 병원에 방문했을 때 이런 필러 종류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는 경우도 많다. 필러를 언제 맞았는지, 얼마나 맞았는지에 대한 질문만 오갈 뿐. 대부분 히알루론산 필러를 맞았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상담이다. 물론 외형적 디자인을 위해 주입하는 필러는 히알루론산 필러가 가장 대중적이고 이는 히알라제 주사로 녹일 수 있으나, 히알루론산 외 다른 성분을 결합한 필러거나 칼슘 필러, 반영구 필러일 때는 레이저나 수술적 방법을 통해서만 제거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필러를 맞을 때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필러를 얼마나 맞았는지 알아둬야 한다.
히알루론산 필러를 녹이기 위해 사용하는 히알라제 주사는 하이알루로니데이스라는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필러를 주입한 부위에 히알라제가 들어가면 히알루론산 사이 가교 결합이 끊어지면서 큰 분자가 작은 분자로 쪼개져요. 작은 분자의 히알루론산은 우리 몸속에서 쉽게 분해되면서 사라지죠. 하루 이틀이 지나면 필러가 거의 녹아 효과를 볼 수 있고 히알라제가 흡수, 배출됨에 따라 길게는 일주일까지도 시간이 걸려요.” 보스피부과 김홍석 원장의 설명이다. 히알라제의 주입 용량도 중요한데, 이전에 시술했던 필러의 양과 거의 동일하지만 필러를 주입한 병원과 녹이는 병원이 다를 때는 이를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환자가 주입 용량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 경우 초음파를 이용해 필러가 들어간 위치를 확인하고 그 부위에 히알라제 주사를 정확하게 주입해 제거할 수 있다. 다만 필러 시술을 같은 부위에 여러 번 반복했다면 2차, 3차 시술로 이어지기도 한다. 필러 양이 많고 부위가 넓기 때문에 적당한 양의 히알라제로 상태를 체크하면서 횟수를 나눠 시술하는 게 안전하다. 히알라제 주사의 농도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간혹 농도 높은 히알라제로 필러를 한 번에 다 녹여준다는 병원도 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니 주의하기 바란다.
히알루론산 필러와 다르게 칼슘 필러나 혼합 필러는 레이저로 제거한다. 약 1mm의 작은 관을 탑재한 레이저를 피부 진피층에 직접 조사해 필러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두 가지 파장을 가진 레이저가 1470nm 파장으로 필러를 녹이고, 이후 980nm 파장으로 필러가 빠지면서 늘어진 피부에 리프팅 효과를 부여한다. 끝으로 메델라 석션 기기를 활용해 세밀한 이물질까지 깨끗하게 흡입하면서 마무리된다.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고 효과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필러는 흔적을 남긴다

피부 속에 빵빵하게 채워놓은 필러를 녹여버리면 부푼 풍선에 바람이 빠진 것처럼 살이 늘어지지는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필러 주입으로 꽉 차 있던 부위에 볼륨감이 사라지면 순간적인 압력차로 주름이 생기거나 피부 조직이 처져 보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작은 병변보다 넓은 이마에서 주로 보이므로 링클 케어, 리프팅 등 꼼꼼한 사후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 레이저 제거 시술에 리프팅 파장이 포함된 이유다. 또 히알라제 주사가 때로는 우리 몸에 존재하는 히알루론산까지 분해해버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탄력이 떨어지기 쉬우나 피부는 섬유세포에서 다시 히알루론산을 생산하기 때문에 2주에 걸쳐 점차 복구된다. 가장 위험한 건 애초에 맞은 필러 양보다 과도하게 히알라제를 주입해 해당 부위가 꺼지는 것. 이때는 앞서 말한 것처럼 초음파를 통해 필러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한 뒤 재시술을 해야 한다.

필러, 나도 녹여봤다

약 3년 전, 턱 필러 시술로 만든 뾰족한 턱은 만족보다 후회가 컸다. 턱 주변에 트러블이 생겼고 부자연스럽게 날카로운 모양에 그저 이 필러가 빨리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턱에 뭔가 만져지고 묘하게 변한 모양도 그대로인 거다. 6개월이라던 필러의 생명력이 왜 이리 질긴 건지. 결국 필러를 녹이기로 했다. 필러는 개인의 피부 타입이나 종류에 따라 종종 유착되거나 캡슐화 및 섬유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필러를 주입했거나 입자가 균일하지 못한 필러로 시술했을 때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턱 트러블 역시 필러로 인해 피지선이 자극받아 생긴 것이라고 했다. 히알라제 주사가 아프다는 말을 들어온 터라 긴장했는데, 마취 크림을 발라서인지 몇 번 따끔한 뒤 시술은 금방 끝나버렸다. 신기하게도 주사를 놓자마자 필러가 바로 녹으면서 원장이 문지르는 손길에 따라 턱 끝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시술 후 약간의 부기가 있었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석 달이 지난 지금, 수일에 걸쳐 필러가 더 녹을 거라는 말은 체감하지 못했고, 시술한 직후의 모습만큼 제거된 듯하다. 아직도 턱 모양이 예전처럼 완전히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 나만 아는 미세한 이물감이 있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턱 트러블과 이별을 고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곧 초음파 필러 제거를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