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의 염기정과 배우 이엘, 김지현의 얼굴이 하나로 겹치고 흩어지는 순간 . 

코르셋 재킷은 YCH. 프린트 레깅스는 R13.

볼레로 재킷과 이어링은 지방시(Givenchy).

재킷은 모스키노(Moschino).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벨앤누보(Bell&Nouveau).

트위터 잘 보고 있습니다.
으하하. 트위터는 보지 마세요. 그건 반칙이잖아요. 거기서는 진짜 아무 말 대잔치인데.

트위터 자아가 불쑥 튀어나오는데, 애써 누르는 게 느껴진달까요?
맞습니다. 정확히 보셨어요. 막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성향 자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다가 말아요. 괜히 아무 말이나 하다가 실수할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나의 해방일지> 10화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네요. 모처럼 챙겨 보는 드라마가 생겼어요. 매주 추앙하고 있습니다.
아, 네. 추앙.(웃음) 10화를 기점으로 뭔가 확 달라졌죠.

서사도, 세간의 관심도, 시청률도 달라졌죠.추앙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맥락도.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한번 보기 시작하면 꾸준히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라는 확신은 있었죠. 구씨와 미정이의 서사가 본격적으로펼쳐지면 분위기가 달라질 거로 예상했는데 정확히 맞더라고요.

“날 추앙해요”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웃음이 터졌는데, 지금은 웃기지도 우습지도 않아요. 과연 저 힘은 무엇인지 궁금한 상태죠.
박해영 작가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나의 아저씨>로 유명해지셨는데, 그 작품을 끝까지 보지는 못했어요 .너무 힘이 들어서요. 아이유와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이런저런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이 얼마나 센서티브한 사람인지 느껴지는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역할을 하는 동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그게 전해져서 차마 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의 해방일지> 대본의 첫장을 열기가 참 어려웠어요. 막상 읽어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작가님이 모든 등장인물의 삶을 직접 살아보고 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사소하게 지나가는 말 한마디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어요. 이번에는 내가 진짜 염기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추앙은 기본이고 갈망, 갈구, 고갈이라는 단어가 글이 아닌 말로 선명하게 들리는데 거슬리지 않았어요.
사실 쉽지는 않았어요. 초반에는 저도 물음표를 가지고 있었고요. 극 중 인물 중에 그래도 가장 현실적인 말을 하는 인물이 기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기가 아닌 진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내 말처럼 나오지 않으면 공감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본을 진짜 많이 읽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젖어들기 시작하니까 어떤 확신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다죠. 오늘날은 상처 입은 마음이 잘 팔리는 시대라고. 어때요?
음, 다른 작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얹을 수는 없고요. 적어도 저희 드라마는 상처와 쓸쓸함이나 불행을 값싼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발 더 나아가지 않았나 싶어요. 살자. 그래도 한번 살아보자. 모두 힘든 현생을 살고 있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해방구와 돌파구를 찾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어요.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않고 가만히 제안해보는 거죠. 글쎄요. 저도 그렇고 함께한 배우 모두 작품을 찍으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리넨 하프 재킷은 자크뮈스 바이 무이(Jacquemus by Mue). 벨벳 부츠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입체적인 실루엣의 미니드레스는 준야 와타나베 꼼데가르송(Junya Watanabe Comme Des Garcons).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3피스 셋업은 모스키노.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벨앤누보.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얼굴이 참 오묘해요.
늘 얼굴이 오묘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요. 정작 저는 제얼굴에서 여러분이 말하는 그 오묘함을 찾지 못하고 있답니다.(웃음)

드라마 방영 전 공개된 클로즈업 포스터를본 다음 당신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어요.얼굴의 힘을 믿어요.
저도 그 사진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도 10년 넘게 작품활동을 했는데, 이제야 제 얼굴을 찾은 것 같아요. 그 얼굴을 보면 그래요. 이엘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탈을 쓰고 분주히 살았거든요. 이제 진짜 내 이름인 김지현을 꺼내도 될 것 같아요. 그러고 싶어요. 그즈음 기정이를 만난 거예요. 사진 속 이 얼굴은 기정이의 얼굴이고 지현이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닮았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나요?
산본 신도시 아세요? 저도 기정이처럼 경기도에 살았어요. 산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는데, 9시 수업을 들으려면 7시에는 전철을 타야 했죠.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잘 알아요.(웃음) 한동안 우울한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었거든요. 이유를 몰랐는데 이엘로 사느라 지현이를 다독여주지 못했어요. 맞아. 지금의 이엘을 키운 건 지현이지. 생수 한 병으로 하루를 버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 고생을 하면서. 이상하다. 나 왜 갑자기이런 얘기를 하고 있죠?

지금 약간 술 마신 염기정 같았어요. 와인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낮술은 어때요? 샴페인 한 병을 챙길까 말까 고민했거든요.
우와, 소름! 저도 집에서 나올 때 오늘 촬영은 한 잔 마시면서 해도 재밌을 거로 생각했어요. 한 병 챙길까 하다가 그래도 일인데, 좀 그런가 싶어서 말았어요.

지금이라도 구해보죠. 어떤 와인이 좋아요?
너무 좋네요. 특별히 뭐 하나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마시는 거죠. 어쩌다 보니 요즘 내추럴 와인을 자주 마셨어요. 다 좋죠. 저 안 가려요.

청와대 근처에 사는 것 같던데, 요즘 시끌벅적하겠어요?
별걸 다 아시네요. 맞습니다. 북악산 밑에 살아요. 어제 저녁에 소화도 시킬 겸, 산책도 할 겸 사직동에서부터걸었거든요. 좀 올라가면 인왕산 무무대라는 전망대가 있어요. 산책할 때 들러서 땀도 식히고 한숨 돌리는 곳인데, 거기서 청와대 쪽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더라고요.

서울 시내 한복판이지만 서울이 아닌 것 같기도 하죠.
맞아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서울을 뜰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자하문 터널을 기점으로 양쪽 분위기가 달라요. 제가 사는 곳은 조용한, 마을 같은 동네예요. 바깥의 소란이나 시간과 상관없이 멈춰 있는 것 같아요. 가만히 숨어들기에도 좋고요. 가까운 거리에 괜찮은 레스토랑과 카페, 편집숍도 많아요. 또 궁세권이잖아요. 경복궁에 자주 가는데, 저는 궁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효자동 두오모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당신의 소셜미디어를 본 다음 꼭 한번 먹어보고 싶어졌어요.
농부님들과 직거래하는 마켓이 있어요. 마르쉐라고. 두오모의 셰프와 거길 다니면서 제철 음식에 눈을 떴어요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렇다고 맛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두오모는 재철 식재료로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요. 기장멸치는 이번 주면 끝이고, 죽순 파스타도 진짜 맛있는데 이맘때만 잠깐 나와요. 저는 오늘의 메뉴를 추천해요.

 

슬리브리스는 렉토(Recto). 재킷과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칼라 티셔츠는 와이 프로젝트×휠라 (Y Project×Fila). 스웨트 팬츠는 네임세이크(Namesake). 힐은 지미추×뮈글러 (Jimmy Choo×Mugler).

비건을 지향하고 동물을 사랑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적극적인 실천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건 분명한 신념이 있다는 거겠죠?
내 침대에서 나랑 같이 잘 수 있는 동물의 기준을 생각했어요. 내 입에 넣을 수 있는 동물의 기준을 생각해봤어요. 그 기준과 분류는 누가 만든 거예요? 인간이거든요.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그런 의심을 하게 되더라고요. 동물과 교감을 나누면서 달라졌고요. 육식이 지구와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챙겨 보면서 공부하게 됐어요. 그런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아요. 어떤 특별한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염기정이 그랬죠. “내가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 걸까?” 꼭 더 나아져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고요. 어때요?
사실 너무 흔한 말이죠.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잖아요. 좋은 말이라는 건 알지만 코웃음이 나기도 하고요. 말은 쉬우니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하고 염두에 두면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다 알고 있어요. 음, 특별하고 거창한 거 말고요. 내 감정을 다독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 감정만큼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도 중요해요. 분노가 차오르면 남에게 막 휘두르고 싶잖아요.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휘두를 때도 많고요.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감정과 소리에 귀기울이는 노력을 하면 좋겠어요. 그 정도만 해도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건강한 제철 음식을 챙겨 먹고 꾸준한 운동을 해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맞아요. 저도 그렇고 에디터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나 한 몸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하는 게 다 일이에요. 이게 아주 엄청난 일이에요.(웃음) 내가 안 하면 그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으니까요. 스스로를 잘 챙겨야죠. 이렇게 날씨 좋은 날 잠깐이라도 햇볕쬐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훨씬 나아질 거예요 .밤에 잠도 잘 오고요. 그게 다 좋은 순환이죠.

이제 여섯 번의 해방일지가 남았네요. 아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주말에도 추앙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래도 스포일러는 안 돼요. 히히. 방송으로 봐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