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 보이다 / 박유림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박유림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좀처럼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박유림을 먼저 알아본 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다. 박유림은 자신의 첫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말 대신 수어와 얼굴의 힘만으로 잠복한 언어를 탐구한다. 그 시간 안에서 흔들리던 마음이 단단해졌다.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는 3월에 열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마음속으로요. 제가 출연한 영화라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영화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어요. 유튜브로 후보 발표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데 익숙한 제목이 들렸어요. 드라이브 마이 카. 지금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이에요.
전 세계 영화계가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지각변동을 주목한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모르게 “하마구치 감독님!”을 외치고 있더라고요. 저는 소속감이라는 걸 잘 못 느끼는 편이거든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찍으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현장을 경험하면서 처음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꼈어요.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최고다’ 그런 마음이 자꾸 들었어요.
소속감이 필요한 사람인가요?
배우도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 한 작품에 이렇게 긴 시간 참여한 건 처음이라서 더 소중해요. 첫 영화이기도 하고요. 현장에서 이렇게 보면 함께한 모든 사람이 이 영화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처럼 느껴지곤 했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이가 들더라도 계속 그렇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3월 27일 LA 돌비 극장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할 예정인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미 마음은 거기로 보냈어요.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비행기 탔어요.(웃음)
진짜로 그날 거기에 앉아 있다면 어떨까요?
저 아마 기절해버릴지도 몰라요. <드라이브 마이 카>가 호명되는 순간 기절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우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이 너무 보고 싶어요. 꼭 직접 만나서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함께한 게 마지막이겠네요. 어땠어요?
레드 카펫도 걷고 많은 관객도 만났는데 그게 꼭 꿈처럼 남았어요. 꿈도 안 꾸고 살았는데, 눈 떠보니 거기 있었어요.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어요. 황홀한 꿈이 깨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은. 너무 행복했어요. 자랑스럽고.
그동안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거예요?
꾸준히 오디션 보면서 살았어요. 몇 편의 드라마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경험하고요. 평범한 또래 친구들처럼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속 준비했어요.
배우가 되기 위한 시간이겠죠?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나기 전까진 그냥 그렇게 살았어요. 2020년 2월에 오디션을 봤고 촬영을 했고 여기까지 왔어요. 여전히 그 시간과 함께 사는 것 같아요.
작년 12월 23일에 국내 개봉을 했는데 아직 극장에 걸려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드물게 그래요. 점점 확장해가는 영화가 있죠.
관객과의 대화를 다니면서 되게 많이 느끼고 있어요. 열기가 그래요. 이 영화의 힘인 것 같아요. 겉에서 볼 땐 되게 조용한 영화처럼 보이잖아요. 그 안에 엄청 강한 뭔가가 버티고 있어요. 개봉 초기엔 영화를 깊이 좋아하는 관객 위주였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넓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제야 뭔가 일어나는 영화가 아닐까요?
맞아요. 극장에 불이 딱 켜지면 끝인 영화가 있잖아요. 재미있다 혹은 별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계속 옆에 머물러 있는 영화예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어요? 배우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연출 태도로 알려져 있어요.
1차 오디션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대사를 읽거나 연기를 하거나 하는 오디션이랑 달랐거든요. 감독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요. 처음 보는 경우였어요. 순간 어쩌면 내 알맹이를 알아봐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이상한 확신이 들었어요. 감독님은 그렇게 배우를 보세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를 그렇게 봐요.
그래서 그날 용기를 냈나 봐요?
저는 제가 정말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오디션장에 가면 무지개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 옆에 저처럼 심심한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누가 저를 바라봐주겠어요. 저도 무지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나서기도 했어요. 하마구치 감독님을 마주한 순간 그거 다 필요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결국 성공했어요.(웃음)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2022년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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