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우면 게임 끝

귀여움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하이엔드 워치도 그렇다.

1 아폴로 13호가 우주로 떠난 지 50주년을 맞아 선보인 오메가의 ‘스피드 마스터 실버 스누피 어워드 50주년 에디션’.
2 제니스의 ‘크로노마스터 리바이벌 루팡 3세’ 두 번째 에디션.
3 워치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와 미키마우스를 기념하는 ‘제랄드 젠타 아레나 레트로그레이드 위드 스타일링 디즈니 미키마우스’ 워치.
4 영국의 뱀포드 워치 디파트먼트와 함께한 프랭크 뮬러의 ‘프랭크 뮬러×BWD 크레이지 아워 스누피’.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누피와 미키마우스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어릴 적 향수 속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뭐 요즘 친구들은 뽀로로나 잔망루피쯤?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에디터 세대까진 그렇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익숙한 이 캐릭터 친구들은 비단 만화 속 캐릭터로만 남아 있지 않고, 구찌, 코치, 리바이스 등 다양한 패션 하우스를 거치며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우리를 새로운 쇼핑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이 동심 어린 향수와 쿨함 사이를 오가는 협업 열풍은 손목 위에도 안착한다. 

하지만 콧대 높은 하이엔드 시계가 처음부터 이렇게 만화 캐릭터를 반겼던 것은 아니다. 하이엔드 워치 매거진 <GMT 코리아> 편집장 평은영은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는 사실 패션 브랜드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오메가 스누피 모델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품귀현상이 일지도 않았고, 제랄드 젠타 디즈니나 오데마피게 마블 히어로도 처음엔 혹평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곧 시계애호가들도 이들의 귀여운 매력에 열광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하며 하이엔드 워치가 캐릭터를 활용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는 단순히 캐릭터를 다이얼 위에 입히는 걸로 끝내지 않는다.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더하거나 시선을 압도하는 인그레이빙 기법 등을 동원해 차원이 다른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단순히 디자인에 치중한 것이 아닌 기술력을 제대로 결합했기 때문에 시계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는 것. 그 예로 1964년 미 항공우주국(NASA) DML 아폴로 계획을 통해 우주 미션을 함께 수행하게 된 시계로 유명한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는 지난 2020년 아폴로 13호가 우주로 떠난 지 50주년을 맞아 3번째 실버 스누피 어워드 ‘실버 스누피 어워드 50주년 기념 에디션’까지 선보였다. 이 시계는 9시 방향의 서브다이얼에 실버 메달리언으로 새겨 넣은 사랑스러운 비글, 우주복을 입고 있는 스누피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케이스백에는 미세 구조 금속화를 통해 구현한 달의 뒷면과 푸른 별 지구의 모습 그리고 우주선에 탑승해 움직이는 스누피까지 담았다. 스위스 럭셔리 워치 브랜드 프랭크 뮬러는 작년 연말, 영국의 뱀포드 워치 디파트먼트와 함께 ‘프랭크 뮬러×BWD 크레이지 아워 스누피’를 25점 한정으로 소개했다. 크레이지 아워라는 이름에 걸맞게 순서에 상관 않는 다이얼 숫자와 그 시간을 정확하게 따라가는 스누피의 두 팔로 점핑하듯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스누피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그런가 하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협업으로 덕후들을 조련하는 디즈니를 이야기할 땐 제랄드 젠타를 빼놓 수 없다. 디즈니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를 이용한 레르토그레이드 시계로 유명한 그가 지난 2021년 LVMH 워치 위크와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또 하나의 미키마우스 워치를 선보였는데, 바로 불가리가 전설적인 시계 디자이너의 브랜드 제랄드 젠타를 산하에 두고 다시 부활시켰다. 제랄드 젠타와 미키마우스 이 두 개의 아이콘을 기념하는 ‘제랄드 젠타 아레나 레트로그레이드 위드 스타일링 디즈니 미키마우스’는 활짝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가 시선을 사로잡으며, 기울어진 미니트 트랙을 따라 움직이는 미키마우스의 팔 모양 시곗바늘, 5시 방향의 점핑 아워 창 등으로 오리지널 워치를 완벽하게 이으며 워치 애호가들의 심장을 저격한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착용한 ‘그 시계!’라는 디테일한 설정을 반영한 제니스의 ‘크로노마스터 리바이벌 루팡 3세’도 이러한 덕후들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한 유니크한 피스다. 동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에 등장했던 주인공 다이스케 지겐의 시계다. 1969년 출시했던 제니스의 시계가 1971년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것에 이어 2020년 애니메이션 속 시계가 다시 실제 제품으로 재현되며 현실과 애니메이션을 오가는 보기 드문 업적을 이뤘다. 이 워치는 2019년 크로노마스터 리바이벌 루팡 3세를 리미티드로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고, 뒤이어 두 번째 에디션을 선보이며 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시계를 사랑하고 만화를 즐기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같은 협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시계를 보며 어릴 때 보던 만화를 떠올리고, 일요일 아침 눈 비비며 챙겨봤던 디즈니 친구들이 앞으로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 말이다. 귀엽고 앙증맞은 디자인에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손목 위에 점철시킨 작고 소중한 마스터 피스들이 끊이지 않을 이유.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나. 

    에디터
    이하얀
    포토그래퍼
    COURTESY OF FRANK MULLER, GERALD GENTA, OMEGA, ZEN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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