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샌더, 마틴 마르지엘라, 마르니가 소속된 OTB 그룹 후원 어워드에서 위너로 선정된 한국 출신 디자이너 태초이(Tae Choi). 그와 직접 인터뷰를 나눴다.

 

친환경 패브릭 소재 크바드라트로 만든 다운 베스트.

디자이너 태초이.

해외에서 이름을 먼저 알렸다. OTB 어워드에서 위너로 선정된 디자이너 태초이(Tae Choi)를 향한 관심이 크다.
한섬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6년 동안 일했고, 지난해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RCA)에서 패션 전공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운 좋게 졸업 컬렉션 ‘Tae Choi’가 질 샌더, 마틴 마르지엘라, 마르니의 모회사인 OTB 그룹과 ITS 플랫폼이 주최하는 ‘OTB 어워드’에서 위너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게 됐다. 현재는 졸업 컬렉션을 발전시켜 성별에 경계가 없는 브랜드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가을쯤 한국에서 새로운 이름을 단 패션 브랜드를 론칭할 예정이다.

어워드를 수상한 졸업 컬렉션의 콘셉트에 대해 설명하자면.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 남성인 내 DNA를 탐구해보자는 생각이 근원이 되었고 나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동안 동아시아 남성성에 대한 레퍼런스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많다. 자료 조사에도 한계가 있고 서구 사회에서 소비되는 동아시아 남성의 이미지도 단편적이다. 남성성은 시대를 반영하며 유연하게 진화하는 개념이기에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오직 내 관점으로 남성성, 더 나아가 여성성에 대해 새롭게 규정해보자는 목표를 가졌다. 몰론 내가 디자인한 옷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 동시에 다양한 시대와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평소 원형이 있는 상징적인 옷, 예를 들면 군복이나 워크웨어, 테일러링 슈트 등에 관심이 많은데 옷 역시 개인의 정체성처럼 시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진화한다 여기기 때문이다. ‘Tae Choi’ 컬렉션을 통해 평소 좋아하는 색과 소재, 옷의 형태를 켜켜이 매치했고 이를 통해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고 싶었다.

사진가 김형식이 촬영한 캠페인.

이탈리아 데님 업체 칸디아니와 협업한 리사이클링 셀비지 데님 소재 레디 투 웨어.

컬렉션 중에서 ‘Tae Choi’를 대표할 수 있는 몇몇 스타일을 고른다면.
화이트 코듀로이 소재로 만든 턱시도 슈트, 핑크 나일론 소재의 타입-1 재킷, 짧게 크롭트된 왁스 코튼 재킷과 와인 컬러 와이드 팬츠, 크바드라트(Kvadrat) 소재를 쓴 다운 베스트.

특별히 집중한 요소가 있다면.
이태원을 중심으로 미군 기지 주변에 미군, 외교관들을 위한 테일러 숍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 1990년에서 2000년대를 주름 잡던 NBA 선수들이 한국 테일러에게 옷을 맞추고 찍은 기념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슈트의 엄격한 규칙을 깨트린 새로운 비율과 커팅을 발견했는데, 이는 당시 슈트를 입어야만 했던 의무 규정에 선수들이 저항하며 탄생한 스타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의 독특한 스타일을 살려, 코듀로이와 실크 소재를 활용한 농구 쇼츠 실루엣의 턱시도와 네 개의 버튼이 달린 그린 컬러 배기 슈트를 만들었다.

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 문화 그리고 동시대 배경에 주목한 점이 흥미롭다. 그 시작은?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내 문화적 DNA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 안에 큰 영향을 받은 차갑고 균질한 신도시에서의 유년기, 미군 부대에서의 군생활, 유럽을 동경하며 일본 잡지를 즐겨 보던 패션 키즈 시절까지. 내 삶의 많은 순간이 직간접적으로 해외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 사실은 때때로 새로운 영감이 되었고, 결국에는 여기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주목하게 되었다.

프랑스 니스에서 사진가 최용준과 작업한 제품 이미지.

시대에 따라 옷이 갖는 의미가 달라진다면 지금 시대 패션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패션은 빠르고 직관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다. 현대의 패션은 계층, 인종, 성별, 종교 등 다양성을 포용하고 지속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플랫폼으로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OTB 어워드에서 위너로 선정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서 놀랍기도 하고, 온라인을 통해 수상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작업을 소개할 기회가 제한되어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많은 것을 보상받은 기분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많은 동료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상이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위너가 얻게 되는 혜택이 궁금하다.
OTB 그룹으로부터 2만 유로의 상금을 받는다. 또한 컴페티션을 주관한 이탈리아의 ITS(International Talent Support)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대한 서포트를 받는다.

사진가 신선혜와 작업한 프로젝트.

앞으로의 작업이 궁금하다. 최근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데님에 특히 관심이 많다. 졸업 컬렉션에서 이탈리아 데님 업체 칸디아니(Candiani)의 후원을 받아 리사이클링 원사로 재직된 셀비지 데님 원단을 사용했었다. 컬러와 표면감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또한 데님을 친환경적으로 마감하는 피니싱 방식에 관심이 있는데, 레이저를 통해 표면을 가공하고 물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워싱 기법도 시도 중이다. 결과적으로는, 윤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에만 치중한 지속 가능성이 아니라 매력적이고 소유하고 싶은 것을 만드는 작업에 도전하고 싶다.

Tae Choi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가치는 무엇일까.
모든 디자인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여부는 필수가 되었다. 패션 산업은 그동안 환경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디자인 프로세스 대부분을 디지털로 진행하고 있다. 스케치부터 패턴 커팅, 이후 샘플을 제작하는 것까지, 실물을 만들기 전에 필요한 대부분의 공정을 디지털상에서 해결한다. 이러한 작업을 벌써 2년 이상 지속해왔기 때문에 프로세스가 상당히 안정된 상태다. 실물 샘플을 만들기 전 디지털상에서 제작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샘플만을 제작하고 있다.

태초이는 여러 가지 책을 통해 채집한 파편을 기록, 분류하며 눈과 귀를 예민하게 유지하려 한다.

태초이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 남성성을 재해석한 ‘TAE CHOI’컬렉션을 선보였다.

같은 꿈을 꾸는 영 제너레이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스스로에게 냉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패션계는 생각보다 차가운 곳이다. 자신의 작업에 만족하는 순간 기회는 불현듯 찾아온다.

올해의 목표는.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브랜드 론칭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대중에게 컬렉션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태초이의 브랜드 라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