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온 줄 알았던 남윤수가 이미 저 앞에서 씩 웃고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호피무늬 벨벳 소재 셔츠, 레드 블랙 퍼 블루종은 리바이스(Levi’s).

2018년과 2020년, 2022년에 또 만나네요. 시간이 지나고 있구나. 어떤 시간을 거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모델에서 배우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2018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렸고요. <인간 수업> 이후 2020년 여름에 만났을 땐 좀 혼란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시기였어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2022년 지금은 달라요. 제가 가지고 있는 끼를 마구 터트리는 법을 알게 된 느낌? 막 터트리고 싶어요. 그 마음이 되게 강해요.

얼굴의 느낌도, 눈빛도 확 달라지긴 했네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자신감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자신감이 좀 가득한 상태거든요. 저도 그게 막 느껴져요.

촬영 시안 제목으로 ‘윤수 쟤가 왜 저런다니?’라고 썼어요. 오늘은 어떤 날이었나요? 무슨 마음을 먹고 그랬어요?
하하. 무슨 마음까지는 아니고요. 최근 들어 모델 활동하던 때 추억들이 자주 생각났어요. 그립더라고요. 작품을 할 땐 배우 남윤수로, 예능에서는 자연스럽게, 화보를 찍을 땐 모델 남윤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자신감 때문이겠죠?
뭐든 더 과감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래도 된다는 자신감이 확실히 붙었어요. 처음 모델 일을 할 때도 그렇고, 연기를 시작하면서 두려움 같은 게 있었거든요. 낯설면 다 그렇잖아요. 적응하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까 의욕이 앞서고요. 작품이 됐든 화보가 됐든 더 새롭고 신선한 일에 도전하고 싶어요.

체커보드 니트 톱, 체커보드 칼라 집업 카디건은 유쓰배쓰(Youthbath).

‘배우 이미지’라고 하죠. 애써 쌓은 그 이미지를 잃을까 봐 겁나진 않아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아직 잃을 거보단 득 될 게 더 많은 상태라고 생각해요. 제대로 마음먹고 딱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특유의 솔직함 같은 게 있었죠. 무서운 게 없는 사람처럼.
저는 뭐 그런 거 없죠. 솔직함이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웃음) 오늘 찍은 화보가 어떤 컷이 셀렉트될지, 어떤 형태로 어떻게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진지한 거 말고요. 남윤수가 되게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이런 것도 하는구나. 웃기다, 재미있다. 그렇게요. 저도 기대하면서 기다릴게요.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그냥 기다릴게요.

그동안 또 좀 달라진 게 있어요?
여우 같아졌어요. 제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여우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티가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선 그게 다 보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여우 같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정정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요.
별로? 여우 같다는 말에 어느 정도 부정적 의미가 있다는 거 알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분명 여우같이 굴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꾸만 나이를 잊어요. 올해가 몇 살이죠?
스물여섯 됐어요.

레오퍼드 재킷은 뮌(Munn). 스트라이프 터틀넥은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아이웨어는 젠틀몬스터.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다 자란 어른이라고 생각하나요?
지금은 살짝 끔찍해졌죠.(웃음) 겉모습도 변했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요. 어른스럽다는 말이 아직 좀 오글거리긴 한데 어른이죠. 남자다워진 면도 있고요.

어른이 끔찍해요?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 저를 보면 끔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자꾸 변하는 것 같아요. 사람 자체가요.

한결같은 사람은 끔찍하고 무섭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만.
맞아요. 어떻게 사람이 늘 똑같을 수가 있는지.(웃음)

지난 연말 2021년의 안부를 묻고자 소소한 질문을 문자로 보냈고, 답장했잖아요. 그때 뭐 하고 있었어요?
게임? 게임하고 있는데 회사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잠깐 멈추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보냈어요.

누구는 3박4일을 고민했대요. 사람이 이렇게 다르죠?
저는 뭘 막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연기할 때도 캐릭터 분석을 너무 자세하게 하지 않아요. 대본을 보면 제가 느끼는 게 있고 보이는 게 있을 거잖아요. 그걸 그대로 표현하는 편이에요. 그냥 저답게, 제 스타일대로 알아서 해요. 저는 연기를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레인보우 니트는 폴 스미스(Paul Smith). 시퀸 팬츠는 오브오티디. 컴배트 부츠는 펜디(Fendi). 진주 체인 네크리스는 허라디×아몬즈(Heradi×Amondz).

<인간수업> 이후 <산후조리원>, <괴물>, 최근의 <연모>까지 필모그래피가 쌓였네요. 돌아보면 어때요?
작품마다 너무 힘들었어요. 그건 익숙해지거나 무던해질 수 없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까지 만난 작품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들이 더 힘들 거로 생각해요. 제가 아닌 다른 인물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건 그런 일인 것 같아요. 그 무거운 걸 견디는 거.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좀 낫지 않을까요?
기술이나 요령은 생기겠죠.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노하우는 생길 거예요. 근데 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10년, 20년, 30년을 해도 힘든 건 힘들 거예요.

오늘 화보에서 그동안의 기술과 요령과 감정이 다 느껴졌어요. 그럼 된 거죠.
배우로 활동하면서 쌓인 경험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알게 됐고요. 오늘은 그렇게 해봤어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제 스펙트럼이 이만큼이었다면, 그래도 살짝 넓어진 것 같지 않아요?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2022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