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길어지는 샴푸가 있다?

머리카락을 빨리 자라게 한다는 패스트 샴푸, 진짜 효과가 있는 걸까? 전문의 의견과 솔직한 제품 후기를 준비했다.

길어져라 머리머리

줄곧 길러오던 머리를 자르고 10년 만에 똑단발이 됐다. 처음엔 괜히 차도녀가 된 것 같았고 지옥 같던 드라이 시간이 줄어든 것에 마냥 행복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금세 긴 머리가 그리워졌다. 얼마 되지 않아 붙임 머리를 하고, 가발을 써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다시 긴 머리로 돌아가겠다고 발버둥쳐봤지만 얻는 건 두피 뾰루지뿐. 그 후 깨달았다. 시간이 답이라는 걸. 그저 잊고 살다 보면 내년쯤 머리카락이 쇄골에 닿겠지. 마감 12번만 더 하면 1년 금방이겠지. 신경 쓰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는데 틈날 때마다 머리 길이를 확인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샤워를 하고 나면 꼭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쭉 잡아당겨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본다. 목 가운데 길게 자리 잡은 목주름 하나를 기준으로 하면 나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목주름이 요긴할 때가 다 있다. 문제는 분명 한 달 전에도 목주름에 닿지 않아 한 달 뒤면 닿겠지 생각했는데 도통 머리카락이 자라질 않는 거다. 왜 내 털은 제자리걸음인지, 아무리 성장 속도가 더디다고 해도 이렇게 뒤처질 수가 있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머리카락 빨리 기르는 법’을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에 ‘패스트 샴푸’가 줄지어 뜬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근데 이 패스트 샴푸, 정말 효과가 있을까?

진짜 자라요?

머리카락은 한 달 동안 약 1cm, 1년이면 12cm 정도가 자란다. 그 속도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환경, 영양 상태, 계절, 나이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 각자의 모발 성장 주기에 따라서 성장기, 퇴행기, 휴지기가 달라 모발이 자라다가 빠지는 시기적 차이가 있으므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도 제각각인 것.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은 밤보다는 낮에, 겨울보다는 봄, 여름에 더 빨리 자란다. 20대에 성장 속도가 가장 활발하며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 그렇다면 패스트 샴푸가 이런 환경적 요인을 바꾸거나, 모발의 성장 주기에 영향을 줘 머리카락을 빨리 자라게 하는 걸까? 아쉽지만 그런 마법 같은 효과는 아니다. 대부분의 패스트 샴푸 제품은 두피 깊숙한 곳에 직접적인 영양을 공급함으로써 모발 성장을 촉진하는 원리라고 한다. 영양 성분을 이온화시켜 아주 미세하게 담았거나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했다는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리로 머리카락의 성장 속도가 확연히 빨라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패스트 샴푸가 두피 각질을 제거하고 모낭과 모근에 영양분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서 모발이 빨리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줄 순 있지만, 아직 입증된 자료는 없습니다. 샴푸의 성분이 두피 속 깊이 침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요. 단백질이 풍부한 고영양 패스트 샴푸를 꾸준히 사용하면 아주 미량이라도 두피에 흡수될 순 있으나 눈에 띄는 효과를 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와인 피부과 김홍석 원장의 설명이다. 모제림 성형외과 박재준 원장 역시 패스트 샴푸가 모발 성장과 탈모 완화에 도움을 주지만, 갑자기 모발의 성장 속도를 앞당긴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발 성장이 원활해지도록 하는 역할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발의 성장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이며 이 주기를 거슬러 머리카락을 빨리 기르다 보면 영양 상태에 문제가 생기기도 쉽다. 늦더라도 건강한 두피에서 튼튼한 모발이 나도록 나에게 맞는 샴푸를 찾아 3~4개월 정도 꾸준히 사용할 것을 권한다. 이때 비누거품 유도 세제인 황산염이 들어간 샴푸는 민감한 두피를 자극해 모발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브러싱을 할 때도 엉킨 머리를 힘으로 당겨 펴는 습관은 모발을 끊어지게 하고 성장을 방해하니 주의할 것.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 두유, 콩을 섭취하고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모발 성장 대사에 도움을 주는 것이 머리카락을 기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쉽게도 정석은 이렇다. 야속하지만 우리가 가진 유전적 성장 주기를 앞당길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이를 거스를 지름길도 없다. 지금 어깨에 찰랑대는 이 소중한 모발을 더욱 아끼고 보듬어주기 바란다. 안녕을 고할 땐 신중한 자세로 다시 한번 고민하자. 자르는 데 10분, 기르는 데는 1년이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진짜 자랐어요?

믿거나 말거나 일단 써봤다. 헤어 전문가와 에디터의 패스트 샴푸 사용기.

D사 패스트 샴푸
“시원한 쿨링감과 민트 향이 열감을 내려줘서 두피 케어가 가능할 듯하다. 적은 양으로도 풍성한 거품이 만들어지고 노폐물 세정력도 우수한 편. 기존에 사용했던 패스트 샴푸는 샴푸 후에 머리카락이 푸석하거나 뻑뻑해졌는데, 이 제품은 마무리감이 부드럽다. 모발 영양감과 유수분 밸런스에도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진다. 머리카락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 건 모르겠지만 꾸준히 사용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
– 고야(제니하우스 프리모 실장) 

T사 패스트 샴푸
“평소 패스트 샴푸는 알칼리 성분으로 모발을 늘려 손상시킨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제품은 약산성이라 손상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젤리 같은 제형이고 세정력도 만족스럽다. 거품도 풍성하게 생성되나,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거품은 오히려 자극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연 샴푸와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머리카락 길이가 길어진 것보다는 단백질을 채워서 튼튼해진 느낌이다.”
– 박규빈(프리랜스 헤어스타일리스트) 

N사 패스트 샴푸
“거품이 상당히 조밀하고 미세하게 만들어져서 놀랐다. 그러나 샴푸 후 모발이 뻣뻣해진 느낌이었고, 저녁만 되면 건조해져 정전기가 올라왔다.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나, 미세한 거품으로 두피 사이사이의 노폐물을 완벽하게 세정해서 머리카락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 수는 있을 듯하다.”
– 황혜진 (<얼루어> 뷰티 에디터) 

에디터
황혜진
포토그래퍼
JUNG WON YOUNG
도움말
박재준(모제림 성형외과 원장), 김홍석(와인피부과 대표원장), 고야(제니하우스 프리모 실장), 박규빈(프리랜스 헤어스타일리스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