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는 거리에서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코치의 ‘Tomorrow’s Vintage’ 팝업 스토어에서 스트리트 아티스트 요요진과 더즈니를 만났다.

 

요요진

요요진(YOYOJIN)은 어떤 작가인가?
두들링을 기본으로 라이브 드로잉, 애니메이션, 영상 등 여러 가지를 함께 하고 있다.

요요진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요요진은 아프리카 잠비아에 살면서 얻게 된 이름이다. 2010년 유네스코를 통해 아프리카 잠비아에 파견되어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9년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영상, 애니메이션, 두들링까지 다양한 작업을 같이 하는데 그래서 시너지가 엄청날 것 같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분야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다는 건 좋은 무기를 여러 가지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다.

두들링 작업이 정확히 뭔가?
낙서하듯이 자유롭게 완성하는 예술이다. 미스터 두들이라는 아티스트가 자기의 그림을 두들링이라고 명시하면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두들링 분야에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키스 해링이나 미스터 두들이라는 사람이 가장 유명하다.

두들링을 하면서 라이브 드로잉을 하고 있다. 라이브 드로잉이 무엇인가?
라이브로 그림을 그리는 거다. 벽이 있고, 아티스트가 있고, 관객이 있으면 아티스트가 관객에게 자기의 작업을 즉흥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작가의 그림 실력이나 전문적인 스킬을 공개적으로 마음껏 오픈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무언가 흥분되는 바이브가 있다.

라이브 드로잉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미술 쪽에 어떤 연결고리가 없었다. 커리어를 쌓기 위해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대중에게 허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택했다. 어느 정도 작품이 쌓이고 그 작품들로 다양한 개인전이나 기획전에 참여하며 조금씩 기회를 늘리고 있다.

예술 쪽에 접점이 없다고 했는데 전공이 미술이 아닌 건가?
청소년 교육상담학과를 전공하고 미디어 콘텐츠를 복수 전공했다.

신선한 이력이다. 전공도 아닌데 갑자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처음 아프리카 잠비아로 떠나 그곳 청소년들에게 스토리를 짜고 영화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벽화도 그리면서 다양한 작업도 했다. 그 작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는 데까지 오게 되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자기를 오픈하고 소통하려는 시도가 많이 보인다 이유가 있나?
작업물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재미 요소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표현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내 작품을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유명해지면 그만큼 기회가 많아지기도 하고.(웃음)

유명해지고 싶나?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나.(웃음) 명성이라는 것도 결국엔 내 활동이 공감을 얻었을 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반짝 떴다 지는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천천히 올라가서 오래 작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그렇게 모 스포츠 브랜드에 러브콜을 보낸 건가? 덕분에 코치와의 작업이 성사된 건지도.(웃음)
협업에 호의적이다. 내 작업을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니까. 그런데 이번 코치와의 작업에 마음이 더 끌렸던 이유가 있다. 그들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했고, 내가 그곳에서 해야 할 역할이 명확했다. 역사가 있는 아카이브에서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는 점과 장르를 벗어나 기존의 것을 다른 분야로 끌어오는 시도 등은 평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그럼 이번 코치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한 건가?
기존에 고객분들이 가지고 있던 가방에 나의 러브, 피스, 칼리지 심벌을 더하는 작업이다. 코치의 빈티지한 가방이 나로 인해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지는 작업이었다.

그것도 즉흥적으로 완성한 건가?
그렇다.

누가 작업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떨리지 않나? 즉흥적으로 손 가는 대로 캔버스나 벽을 채운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두들이라는 장르가 즉흥성을 요구한다. 뭔가 계획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즉각적인 감정을 그려낸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리는가?
보통은 사랑과 평화에 관한 것을 많이 그린다. 긍정과 부정, 평화나 평등 같은 모든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요진이 하고 있는 것도 스트리트 아트에 포함되나?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그래피티와는 다르지만 미술관에서는 벗어난 예술이기도 하다. 거리에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 운동으로서는 스트리트 아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요요진의 캐릭터에는 왕관이 많이 등장한다. 어떤 의미인가?
단순한데, 우리 모두 각자 세상에서 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안에 결정권이 있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우리 모두가 왕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거 말고 다른 숨은 모티프가 또 있나?
스케이트보드? 스케이트보드를 향유하던 문화가 힙합이 만들어진 시대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이 문화 자체는 화합과 화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NFT 로고 작품을 판매한다고 들었다.
클럽하우스가 유행하고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NFT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난 4월에 개인전을 열 때 함께 접목해봤고 실제로 작품이 완판되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NFT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작품은 웹상에 오픈되어 있고, 모두가 볼 수 있기도 한데,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있을까?
그 자체도 기존의 미술과 새로운 미술이 충돌되는 현상인 것 같다. 원화가 있고 원화를 프린트한 것에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 것이다

작가의 판화작품 같은 느낌일까?
그렇다. 또 하나의 디지털 피스를 만드는 것이고, 결국 그것도 오리지널이다. 디지털 자산의 형태가 NFT 아트로 표현되고 있는 과정이다. 앞으로 이 시장이 더 커질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외에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나?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그림을 조금 더 열심히 그리고 싶다.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이나 메시지 전달 등을 기술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가까운 미래의 계획은?
12월에 개인전과 기획전이 있고, 내년 4월쯤에는 중국에서 전시가 있을 예정이다.

 

 

더즈니

더즈니(Doezny)는 어떤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인가?
길거리를 무대로 스프레이, 스텐실, 페이스트 기법을 활용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더즈니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본명 양도준을 영어로 편하게 발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엔 Doezn Yang(더즌 옝)으로 지었다가 자연스럽게 별명처럼 더즈니로 불리게 되었다.

스트리트 아트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우연히 뱅크시가 만든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순간 ‘아 이런 예술도 있구나! 이런 미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무작정 스텐실과 스프레이를 들고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너무 흥분되더라.

그렇게 바로 확신이 들 수가 있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렸을 땐 책이나 노트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중간에 운동으로 진로를 정했다가 운동을 그만두었다. 운동을 하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니 활동적인 게 필요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 작업한 건 어딘가?
일원동에 있는 벽이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다. 초반엔 픽토그램 러닝맨을 만들어서 쓰레기통이나 담벼락 같은 곳에 작업을 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그 달리고 있는 사람 말인가?
맞다. 지금은 로날드라고 부른다.

그 캐릭터의 얼굴이 두 개인 이유가 궁금했다.
내 작품의 코어 메시지이기도 하다. 달려가는 모양새는 해방을, 얼굴이 두 개인 건 평등을 의미한다.

주로 무엇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가?
출구(Exit)를 주제로 작업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출구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저항을 의미한다. 출구라는 큰 틀 안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아동인권, 인종 간의 갈등 문제도 다룬다.

이와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나?
내가 경험해왔기 때문 아닐까? 부유한 유년기를 보냈고, 또 엄청 가난한 20대를 보내며 빈부의 격차를 느꼈고, 특수 체육을 공부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차별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또 뉴욕에서는 인종차별까지 우리는 꽤 많이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걸 피부로 느꼈다.

자유와 평등이라… 쉽지 않은 주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의 방향이 다르다.
모든 문제를 한데 모아 초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수면 위로 올려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거다.

대중들은 어려워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엔 관객들이 어려워했다. 그래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을 땐 타이포를 많이 넣어서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예전 공산주의 선전물 ‘프로파간다’처럼 만드는 거다. ‘이건 이렇다’라고 정해놓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더즈니의 작업이 포스터처럼 느껴진 게 많았던 것 같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나 메시지를 담는 작업이다. 처음 작업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명확하게 글을 써놓고 디자인한다.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이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데 신경을 쓴다.

뉴욕에서의 경험은 어땠나?
길거리와 갤러리, 뮤지엄을 돌아다니며 미디어에서는 담을 수 없는 생생한 예술을 경험했다. 내가 몰랐던 규모의 세계를 많이 담아온 것 같다. 처음엔 뉴욕에서의 경험이 아무 소용이 없었나 싶었는데, 개인전을 치르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스스로 정리를 해보니 다양한 시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작업의 파이가 커졌달까?

이번 코치의 80주년 기념 팝업에 함께한 것도 뉴욕에서의 경험이 작용했을까?
한국의 길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코치가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치의 본고장인 뉴욕은 이미 크게 구축된 길거리 문화가 있고 코치는 그 문화를 이어서 한국의 길거리 문화에 접목하고자 한 의지가 있었다. 또한 그 감성을 살려줄 예술가를 뉴욕 아티스트가 아닌 한국의 로컬 아티스트와 함께하고 싶어 했던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뉴욕의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와 한국 아티스트가 만나면 또 다른 시너지를 내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코치를 위해 작업한 모티브는 무엇인가?
총 3개의 모티프를 준비했다. 시그니처 로날드와 성년의 날을 주제로 만든 장미 그리고 코치의 로고 패턴에 로날드의 손을 조합해 만든 ‘Touching Hands Pattern’을 준비했다. 이 모티프로 결과 이전에 ‘화합과 협동의 과정’을 표현했다.

더즈니는 얼굴 없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건 바밍(Bombing) 같은 밤 작업과 연관이 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땐 뭔지도 모르고 무차별적으로 바밍을 했다. 그로 인해 생긴 문제들도 많은데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단 회피하고 무엇이든 다 벌여놓고만 싶었다.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바밍에만 집중했었다. 그러면서 의미가 더해졌는데 작업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모습을 굳이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차차 조금씩 노출되지 않을까.

밤에 몰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바밍’이라고 한다. 바밍은 불법인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이유는?
바밍은 길거리 예술에서 가장 멋있는 장르다. 내 작업이 이 벽을 훨씬 더 멋지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나만의 확신이 드는 장소에 작업을 한다. 허락을 받기보다 용서를 구한다. 뱅크시가 한 유명한 말이다.(웃음)

벽에 그림을 남긴다는 건 보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작업 아닌가?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당연히 없어진 작업에 대해선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작업을 한 후에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사진으로 남겨놓는다. 언제 없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또한 길거리 예술의 일부다.

작가로서 스트리트 문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유롭다는 것.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갤러리를 가지 않아도 예술에 대해 전혀 몰라도 우연히 길에서 예술을 마주칠 수도 있다. 그렇게 거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앞으로 계획은?
첫 개인전을 통해 느낀 부분들을 다음 작품을 발전시키는 데 투영하고 싶다. 스스로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부족함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내가 어떤 대화를 시도할지 더 연구하고 연습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