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령이라는 낯선 이름에 깃든 어딘지 익숙한 얼굴.

 

그간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저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어요. 눈에 잘 띄지 않았겠지만, 여기저기에 얼굴을 비추면서요. 배우가 제 직업이잖아요, 저 정말 살기 위해서 열심히 했어요. 지금껏 그렇게 해왔어요. 이것저것 역할 가리지 않고 주어지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하면서요.

필모그래피를 보니 이렇게 프린트를 해와야 할 정도로 빼곡하더군요. 지난 20년간 20여 편의 드라마, 30편에 가까운 영화, 10편에 가까운 연극과 드라마까지. 주연, 조연, 단역, 특별출연, 우정 출연까지 다양합니다.
네, 참 뭐가 많죠. 남편 유학 때문에 잠깐 미국에 머문 시절도 있고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한 시간도 있지만 쉬지 않고 연기를 해왔던 것 같네요.

그간 인터뷰를 잘 안 했죠? 화보 촬영은 더더욱.
음, 제대로 된 매체 인터뷰는 오늘이 처음이에요. 화보 촬영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 지금 너무 긴장되고요. 어제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걱정이 돼가지고. 이래도 되나 싶어요. 아직 사진 찍는 건 어렵더라고요. 편하지가 않아요.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큽니다. 머릿속으로 그림이 잘 안 그려져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지금 그 맨 얼굴과 지금 그 눈이면 충분합니다. 그게 좋아요. 요 며칠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주시하고 있는데 시시각각 팔로워 숫자가 달라지고 있네요. 어때요?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400명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200만에 가까워졌더라고요. 최근 며칠 오르는 속도가 좀 주춤하긴 해요.(웃음) 뭐, 너무 놀라운 일이죠.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숫자도 숫자지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면 뭐라 할 말이 없어져요. 전 세계 언어로 응원을 해주세요. 제가 그걸 다 보는데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아이고, 저 어떡하죠? 눈물이 막 나요.

블랙 이너 톱은 드래곤블루스 (Dragon Blues), 화이트 니트 드레스와 팬츠는 노프라미스(No Promise), 반지는 르이에(Leyie), 이어커프는 그늘(Geneul).

울고 싶을 땐 울어야죠. 기쁨의 눈물이잖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나름 공부도 잘했고, 저 공부 진짜 잘했거든요.(웃음) 그래서 칭찬받는 게 익숙한데 배우가 되고 그 경험을 못했어요. 이렇게 갑자기 너무 큰 응원과 칭찬을 해주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날을 상상해본 적이 없거든요. 전 세계에서 너무 좋은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세요.

어떤 응원과 칭찬의 메시지인지 들려줄 수 있나요?
“주령, 당신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요. 다들 저보고 ‘프리티’하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돼요? 정말?(웃음) 미의 관점이 다른 건지 뭔지 살다 살다 그런 말은 처음이에요.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배우가 되려고 했나요?
글쎄요. 제가 왜 배우가 됐을까요?(웃음) 그냥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뭘 하는 걸 좋아하는 애였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제가 쓴 글을 무대화해서 학교 축제 같은 데 올리고 그랬거든요. 나서서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역 배우 같은 것도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제가 공부를 잘해가지고.(웃음) 모범생이었거든요. 부모님 입장에선 기대를 좀 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공부를 했죠.

그래도 대학에선 연극영화를 전공했어요. 
원래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로 입학했어요. 2학년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전과 제도라는 게 생긴 거예요. 그 순간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구나. 그랬죠.(웃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라니. 절차와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전과가 안 되면 자퇴할 결심을 하고 교수님들 앞에서 이것저것 뭘 막 했어요. 딱 저 한 명만 받아주시더라고요.

배우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한 직업이잖아요. 졸업 후인 2000년 곽지균 감독의 영화 <청춘>으로 주목받은 후 오늘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졸업하자마자 영화 <청춘>에서 꽤 큰 역할로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다 잘될 줄 알았어요. 공부도 1등이었으니까 배우로서도 잘 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모든 배우는 다 그럴 거예요. 주인공이 되고 싶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어요. 그게 배우죠.

늘 1등만 하던 당신의 세계에서 난생처음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셈이겠네요.
그래요. 공부는 하면 되거든요. 제가 한 만큼 결과가 나와요. 정답이 정해져 있고요. 근데 연기는 아니더라고요. 늘 열심히 하죠. 저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근데 연기에는 100점이 없어요. 정답이 없어요. 근데 재미있더라고요. 힘든데 재미있었어요. 그게 참 막연한 건데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겠지. 그런 희망 같은 게 늘 있었어요.

지브라 패턴 셔츠와 화이트 코트는 쏜지크(Songe Creux), 이어링은 르이에.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장건재 감독의 <잠 못 드는 밤>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 영화의 주연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 작품 좋게 보신 분들이 참 많아요. 저도 그렇고요. <오징어 게임>에서도 그렇지만 제가 주로 좀 세고 튀는 역할을 많이 했거든요. <잠 못 드는 밤>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연기를 했어요. 그래서 못 알아보신 것일 수도 있어요. 시나리오에는 상황에 관한 큰 울타리만 있었고요. 디테일한 대사는 두 배우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주고받은 거예요. 그런 경험은 참 귀하고 신선하죠.

하나의 이미지와 컬러로 국한되지 않는 건 배우에게도 유익한 일일 것이고요.
배우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하나의 이미지로 계속 가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거든요. 갈증이 생겨요. 김주령이라는 배우의 좀 다른 면을 찾아내고 그걸 부각해서 보여주는 작업자를 만나는 건 언제나 고맙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경험한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보고 배운 것이 많을 거로 생각해요. 작품 보는 눈도 포함해서요.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봤어요?
대본을 딱 받았는데요. 카페에 앉아서 단숨에 끝까지 읽었어요. 솔직히 그렇게 읽어 내릴 수 있는 시나리오가 많지는 않거든요. 저 화장실도 안 갔어요.(웃음) 소재도 소재지만 저는 배우니까 우선 인물을 바라보거든요. 제가 연기한 미녀를 포함해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가 맨 먼저 와 닿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글만 읽은 상태인데 충격적으로 좋더라고요. <오징어 게임>이 말하는 건 결국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더 나아가 인간애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예요. 그냥 이거는 무조건 대박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좋아할 거다.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