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최초의 기록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레이든은 늘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의 음악은 더 넓고 새로운 곳으로 흘러들어 또 다른 처음으로 기억된다.

 

촬영 후 두 달 만이에요. 어떻게 지냈나요?
쭉 앨범 작업에 집중하면서 정신없이 일했어요. 그사이 드라마 OST도 한 곡 만들었고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너는 나의 봄> OST였죠. 첫 OST 작업이었는데 어땠나요? 
재미있었어요. 서현진 배우, 김동욱 배우, 정지현 감독님이 직접 작업실에 찾아와서 영상에 같이 맞춰보기도 했고요. 지금까지의 작업은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하면서 해왔는데, OST는 화면 전환에 맞춰서 드럼 킥을 넣는다든지 영상에 맞추며 연출하는 과정이 새로웠어요. 꽤 웅장한 느낌으로 작업해서 스릴러 장르인가 했는데 드라마를 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웃음)

DJ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 둘을 구분하는 편인가요?
프로듀서로서의 레이든은 음악만을 생각하고 그 음악세계를 표현하는 데 집중해요. DJ로서의 저는 그 음악을 토대로 공연과 퍼포먼스로 표출하고요. 제가 만든 음악을 새롭게 편곡해서 공연을 하기도 하니 사실 칼같이 구분되기보다는 연장선에 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개의 정체성인 셈이에요.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곡은 대중을, 공연은 관객을 생각하며 작업한다는 점이 달라요. 특히 퍼포먼스를 위한 디제이 음악을 만들 때는 전체적인 흐름을 가장 많이 고려해요.

퓨처베이스나 록을 섞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우스 기반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하우스에 매력을 느꼈나요? 
꼭 하우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제게 있어 가장 ‘DJ스러운 음악’은 역시 하우스예요. 춤을 추기에도 좋고 편하게 듣기에도 좋으니 DJ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아요. 하우스 내에서도 장르가 워낙 다양하게 나뉘니 새로운 걸 시도하기에도 좋고요. 요즘은 정통 하우스가 다시 트렌드가 되었던데 이런 변화도 참 재미있죠.

곳곳에 섞인 록음악의 흔적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전에는 기타를 쳤다면서요? 밴드나 기타리스트가 아닌 DJ로의 길을 선택한 것도 흥미로워요. 
일본 유학시절에 록밴드를 했어요. 당시 해외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이 막 뜨고 있었는데 크게 관심은 없었어요. 친구가 베니베나시처럼 유명한 DJ들의 곡을 들려줬는데 생각보다 록과 일렉트로닉 음악이 동떨어진 장르가 아니구나 싶은 거예요. 강렬한 사운드라든지 리프 같은 요소가 공통분모처럼 느껴졌어요. 이후 한국 클럽에서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현장에서 들었는데 이상하게 바로 느낌이 오던데요. 이거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디제잉을 배우고 일렉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예감이 맞았네요. 이미 해외에서는 유명한 DJ잖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외국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디제이를 시작하면서 음악을 많이 찾아 듣다 보니 좋아하는 해외 아티스트가 확고하게 생겼어요. 그들이 저마다 레이블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도전욕구가 생겼어요. 반드시 저곳에 들어가서 음반을 내겠다고,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뭔가 일을 내고 싶다고.(웃음) 그리고 당시 한국은 일렉 레이블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고, 있다 해도 영향력이 미미했기에 해외 진출을 자연스럽게 결정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니키 로메로의 레이블에서 첫 앨범 <Heart of Steel>을 냈으니 일을 내도 단단히 낸 거죠.
한 3년 정도 죽어라 고생한 것 같아요. 무대 퍼포먼스도 중요했지만 제 음악성을 증명하기 위해 정말 노력했고 운이 좋게도 유명 레이블에서 첫 음반을 낼 수 있었죠. 당시 스티브 아오키처럼 미국계 동양인은 있었어도 아시아인으로서 무대에 서면서 음반을 내는 건 제가 처음이었어요. 업계 내에서는 제 음반의 임팩트가 컸고, 덕분에 유명한 페스티벌에서 점점 저를 불러주기 시작하더라고요.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 뒤에는 힘든 일도 많았겠어요. 
인종차별 경험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클럽 공연을 하러 갔는데 제 이름을 알면서도 일부러 틀리게 부르고 이상하게 써놓는다든지 하는 식이죠. 한번은 크로아티아 페스티벌에 공연을 하러 갔는데 좀 작은 무대이긴 했지만 다들 ‘동양인이 얼마나 하나 보자’ 하면서 팔짱을 끼고 있는 거예요. 화나기보다 오기가 들어서 더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결국 그들을 춤추게 만들고 앙코르까지 나오게 했어요. 그런 순간순간의 뿌듯함과 희열 때문에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어요.

최근엔 국내에서 K팝과의 크로스오버를 활발히 하고 있어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소녀시대 유리 씨와 첫 작업을 했을 때 이런 크로스오버가 한국에서 EDM을 대중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후 SM과 계약하며 본격적으로 음반을 내다 보니 K팝 내의 재미있는 요소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어요. 브리지가 두 번 나온다든지 제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구성이 많아서 신선한 느낌으로 작업하게 돼요.

그러고 보니 SM을 소속사로 고른 이유가 궁금하네요. 
해외에 있을 때도 SM의 행보를 눈여겨봤어요. 자체적으로 EDM 페스티벌을 한다든지, EDM 레이블을 만들어 해외 유명 아티스트와 SM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한다든지 국내 기획사 중에서는 EDM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곳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마침 스펙트럼 페스티벌에 놀러 갔을 때 이수만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이제 와야지~” 하시더라고요.(웃음) 농담으로 넘길 뻔했는데 문득 제가 음악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국내에선 아직 레이든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아쉽지는 않나요? 
제 개인의 인지도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아요. 다만 DJ에 대한 인식이나 EDM 업계 전반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확실히 이전에 비해 페스티벌이나 공연시장의 규모는 커졌지만 DJ음악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인 것 같거든요. EDM이 더 대중화되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EDM이 음반시장 내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아야 하고, DJ가 더 적극적으로 음반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과 음악의 대중화가 함께 가지 못하면 DJ에 대한 인식은 결국 클럽에서 음악을 트는 사람에 머무를 뿐이에요.

지난 1년 동안 무대와 뮤직비디오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인가요?
DJ 프로듀서가 대중적으로 인식되었으면 해요. 해외에서는 DJ가 카메라에 비춰지는 게 흔한 일이에요. 본인이 주인공을 연기하는 뮤직비디오도 많고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확실히 드문 일이죠.

기억나는 반응이 있나요? 
‘저 사람 뭔데?’(웃음) 하지만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왜 노래도 안 하는 사람이 나오지? 궁금해지면 찾아보게 되잖아요. 그럼 이제 DJ이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이야기하다 보니 새로움에 주저 없이 다가가는 사람 같아요. 아예 새로운 장르는 어떤가요? 
언젠가 영화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효과음까지 그 영화를 통으로 다 제 음악으로 채우는 거요. 몇 달 전에 영화 <소울>을 보는데 깜짝 놀랄 만큼 모든 음악이 좋더라고요.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누가 했는지부터 찾아봤는데 나인 인치 네일스가 뜨는 거예요. ‘그렇게 하드한 록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한다고?’ 음악적인 센스가 있으니 장르는 큰 문제가 아닌 거죠. 놀라우면서도 저도 그런 뮤지션이 되고 싶더라고요. 요즘은 넷플릭스를 볼 때도 음악을 어떻게 깔았는지 보게 돼요. 전에는 생각도 없이 보다가 이제는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요.(웃음)

10월에 새로운 앨범이 나오죠. 어떤 앨범인가요? 
‘Yours’ 이후 나오는 첫 음반인데 굉장히 오래 준비했어요. 지난 2년 동안의 제 모든 걸 모은 집합체 같은 미니 앨범이에요. ‘Yours’의 연장선인 곡, 인디 감성의 곡, 딥한 디스코 베이스의 곡 등 조금씩 다른 장르이지만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중점을 둔 곡들로 구성했어요.

이번 앨범에서 마지막까지 공들인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 피처링 섭외에 큰 공을 들였고, 덕분에 화려한 라인업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운드에 굉장히 신경 썼어요. DJ의 팝이라는 게 단번에 느껴지게끔요.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탁 전환되고, 이거 누구 음악이지? 하며 들여다보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 앨범이 그럴 거예요.

음악으로써 어떤 걸 해내고 싶나요?
DJ 프로듀서로서 영향력을 갖고 싶어요. 유행을 타기보다 누구든 언제든 들어도 좋은 음악을 내고, 국내에서도 EDM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도록요.

항상 DJ는 무슨 음악을 듣나 궁금했어요. 재생 중인 음악 좀 알려주세요. 
에드 시런의 <Shivers>와 이하이의 <4 ONLY>. 따끈한 신보들을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