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승자는 ‘내 청춘의 영원한’에서 이렇게 토해낸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어떤 때, 우리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길 원한다.

 

이제는 누구나 마지막 여행을 기억할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소한 감각을 남겼다. 언제고 떠날 수 있는 게 여행이었던 때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여행은 새로운 시간 속에서 마치 신기루처럼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말았다.

마지막 여행은 코펜하겐이었는데, 보다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건 마지막 출장이다. 그 출장이 좋았나 하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남아공의 자연은 스펙터클하고 아름다웠지만, 거대한 땅덩어리인지라 이동이 너무 많아 쉽게 지쳤다. 또한 노골적으로 아시아 지역을 무시하는 미국 저널리스트는 똑같이 무시하려고 해도 매번 묘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항공사 담요의 질을 줄 세울 수 있을 만큼 자주 떠났던 출장이 멈춰지면서 그 출장의 기억만은 매번 선명해지니 아이러니다. 남아프리카에만 자생하는 식물들이 뿜어낸 진한 향기. 마지막 밤, 남아공의 리조트 호숫가에 앉아 바라보던 석양과 이름 모를 이국적인 새들의 노래가 몇 번이고 기억에서 재생된다.

바이러스가 전 지구를 점령한 후 나는 조금 불행해졌는데, 더 이상 새로운 감각으로 나를 채울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복해도 지겨워지지 않았던 유일한 취미는 낯선 곳을 걷는 일이었다. 기후도 사람도 언어도 달라서 모든 것이 낯설수록 좋았다. 폐허를 걸으면서 인생이란 결국 소멸하는 과정임을 생각한 제프 다이어와 반대로, 나는 낯선 곳을 걸으면서 인생이란 결국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면, 다음에 써야 할 원고, 어느 달의 화보, 어떤 협업 같은 걱정이 사라지고 오직 나만을 생각할 수 있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존재할 수 있는 그때면 비로소 내 자신도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전 국민의 스트레스 해소제라는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 내게는 그런 여행과 출장이야말로 최고의 리트리트였다.

그렇다고 새로운 곳에서 대단한 일을 하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예컨대 출장지에서 잠시 주어지는 시간이면 되었다. 3시간의 자유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수영장으로 향할 때 나는 플립플랍이나 스니커즈를 신고 호텔 밖으로 향했다. 주변 거리를 걷거나, 가게 유리창에 닿을 듯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일이면 족했다. 한 달 동안 방콕에, 또 홍콩에 머물 때에 내가 마음먹은 유일한 목표는 하루에 새로운 한 곳을 가보는 것. 그것만으로 하루가 기쁘고 충만해졌다. 그렇게 내 발로 찾은 많은 곳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노란 별이 가득한 구글 맵을 연다. ‘오전에 영업 시작’이라는 말에 안도하고, ‘폐업함’이라는 글자에 슬퍼진다.

모두가 자신의 공간을 지켜야 하고, 활동 반경을 줄이고, 한 번의 외출이라도 줄여야 하는 지금은 여행은커녕 새로운 카페를 방문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오래된 한 호텔에 숨어 들었다. 오래된 호텔의 가격은 미안할 정도로 저렴했다. 문을 꼭 닫고, 비가 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낯선 풍경이 거기 있었고, 나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밖을 바라보았다. 까만 밤이 내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모두의 안부를 생각하며.